"성수동 인쇄소 경험 그때의 분노 영화에 녹이고 싶었다"[MD인터뷰]

무명 배우 시절의 설움을 담은 ‘컷’으로 세계 무대 데뷔한 손민준 감독

[마이데일리 =클레르몽(프랑스) 김윤경 통신원]손민준 감독의 단편영화 ‘컷(CUT)’이 단편 영화제의 칸 영화제로 불리는 제45회 끌레르몽 페랑 국제 단편 영화제에서 ‘국제 경쟁 부문’에 선정되었다. 무명 배우로서 감독 자신이 겪었을 설움을 장르 영화로 풀어내 세계의 주목을 받는 손민준 감독을 끌레르몽 페렁 영화제에서 만났다.

- ‘컷’으로 프랑스에 초대받았다. 이번 단편 영화제에 온 소감이 어떤가.

“꿈같은 일이다. 원래 배우였고, 또 배우를 하고 싶은 사람인데, 감독으로 이곳에 와있는 게 정말 꿈같고 어안이 벙벙하다.”

- 프랑스 관객과의 대화 중에 인상적인 질문이 있었다면?

“상대 여배우를 가격할 때 마음이 어땠는지. 왜냐면 대부분의 영화제에서는 어떻게 찍었는지 원 테이크 숏 같은 영화의 기법을 물어봤는데 마음을 물어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 혹시 관객과의 대화 상영뿐만 아니라, 본인 영화 상영을 계속 찾아보는가?

“그렇다. 일반 상영에도 계속 가서 챙겨 보고 있다. 영화 속에서 몇 부분 정도가 괜찮은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부분을 관객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보고 싶었다. ”

- 어떤 부분인지 궁금하다. 장면 하나만 꼽는다면?

“마지막 사운드가 완전히 뮤트되는 순간이 있다. 이 장면에 모든 사람이 숨도 안 쉬고 가만히 있더라. 꼭 관객 수가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만든 영화가 관객들이랑 소통이 잘 되는지 궁금해서 자꾸 찾아가게 된다.”

- 이번 영화제 전에, 영화 ‘컷’이 작년 제39회 부산 국제 단편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다. 그때 사연이 특별하다고 들었다.

“친구가 운영하는 제주도 우도의 짬뽕집에서 설거지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다른 영화제들에 모두 떨어져서, 영화는 길이 아닌가 해서 짬뽕을 배우고 있었다. 그렇게 1년 3개월간 일하다, 부산 국제 단편영화제에 초청이 돼 부산에 갔다 조금 전까지 짬뽕집에서 일하다가 영화의 전당에 가는 순간 비로소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컷’을 연출한 계기가 특별하다고 들었다. 무명 배우였던 경험을 담았다고 들었는데, 설명해 줄 수 있나.

“서울 성수동 인쇄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슬픈 음악을 들으며 전철을 타고 가는 길이었다. 영화와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생계유지를 위해 알바를 계속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충돌이 있었다. 마침 한강을 지나는데,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나만 동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때, 내 마음속의 결핍과 불편함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감정을 들여다보니 분노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제일 잘 아는 장소인 촬영 현장에서 그 분노를 다뤄보고 싶었다. 그때는 분노라는 감정에 집중했던 것 같다.”

- 배우에서 감독으로 단편 영화를 연출하는 게 싶지 않았을 것 같다.

“8년간 배우로서 일이 많지 않았고, 극단 신인류에서 최무성 배우님과 함께 연기하고 배웠다. 연기를 하고 싶은데 아무도 뽑아주지 않으니, 이렇게 될 것 같으면, 내가 직접 찍어보자고 생각했다. 양익준 감독님과 같이 작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나도 용기를 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한국 예술인 복지센터에서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었고, 그 돈과 내가 갖고 있던 돈을 전 재산을 모두 털어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예술 계통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인하는 마지막 노선이었다.”

- 연기로 무명 배우였을 때의 경험을 설움과 한으로 표현하는 기분이 들었다. 연기하며 기분이 어땠나?

“현장에서 스텝들이 주는 불편함은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것 같다. 그들은 나를 무시한 적이 없고, 그들은 각자의 일을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화는 내가 만든 것 같다. 실제로 영화를 찍을 때는 감정이 없었고 피곤하기만 했다. 소품, 의상, 피, 망치까지 모두 혼자 만들고 구하러 다녔다. 빨리 찍고 싶었고 아무 감정이 없었다.”

- 현재 계획하고 있는 다른 연출작이 있다면? 배우로서 연기도 계속할 생각이 있는지?

"프로젝트 월간 000을 하기로 했다. (숫자 0을 세 번 쓴 것) 제작비 0원으로 월간 단편 영화팀을 꾸렸다. 12명의 팀원이 모두 배우다. 매달 트리트먼트를 하나씩 쓰고 읽어보고 가장 좋은 작품을 한 달에 한편씩 만들 예정이다. 연출을 하는 게 배우로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다같 이 모여서 글도 써보고 영화도 찍어보고, 연기와 연출 등 다양한 경험을 같이해보기로 했다. 단 제작비는 0원. 모두 부담을 갖지 않고 하기로 했다. 당장은 안 좋을 수 있지만, 내년, 내후년에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 아직은 ‘컷’ 만큼의 느낌이 오는 글이 없어서 서로 영감을 받기로 했다. "

[사진=김윤경 통신원]

이석희 기자 goodluc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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