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달’,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MD칼럼]

[곽명동의 씨네톡]

사에키 후미(마츠자카 토리)는 어린 소녀 카나이 사라사(시라토리 타마키)를 집으로 유인해 납치했다는 혐의로 체포되고 소아 성애 범죄자로 낙인 찍힌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사라사(히로세 스즈)는 자꾸 결혼하자고 달려드는 남자 친구 료(요코하마 류세이)와 동거 중이다. 어느 날 직장 동료와 함께 커피숍에 간 사라사는 가게 주인이 후미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옛 감정이 되살아나 마음이 요동치는 가운데 결혼식을 빨리 올리자는 료의 압박은 계속된다. 사라사는 어린 시절의 유괴 경험 때문에 자신을 불쌍한 사람 취급하는 료에게 점차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지독한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며

이상일 감독의 ‘유랑의 달’은 지독한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면서도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에 가 닿으려는 두 남녀의 로맨스영화다. 영화가 시작하면 어린 사라사가 그네를 타는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 다음에 바로 앞모습이 연결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어떤 사람의 한쪽 모습만 보지 말라고 처음부터 선언한다. 이 사회가 누군가를 단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마련이니까. 뒤에서 누군가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그 사람의 앞모습을 똑바로 응시하고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대로 보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한 노력은 더욱 간절하게 필요하다.

뿌리 뽑힌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

언제나 올바른 말만 하는 후미의 어머니는 집 안 마당에 있는 나무를 땅에서 뽑아낸다. 어린 후미와 눈이 마주친 어머니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고개를 저으며 뿌리에 달라붙어 있는 흙을 털어내고 나무를 어딘가로 가져다 치운다. 이상일 감독은 어린 후미에게 깊게 각인된 이 모습을 느린 호흡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유랑의 달’과 연결된다. ‘유랑’의 사전적 뜻은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님’이다. 언제나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태양과 달리, 달은 매일 형태를 달리하며 지구 주위를 떠돌아다닌다. 오해와 편견의 시선 탓에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는 후미의 존재를 비유하는 제목이다.

너는 너만의 것이야

이상일 감독은 2007년 ‘훌라 걸즈’ 내한 인터뷰 당시 “작은 인간이 시대 흐름에 휩쓸리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내 영화의 일관된 주제와 통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대 흐름에 휩쓸리지만, 정체성을 놓지 않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품는다. “너는 너만의 것이야. 아무도 마음대로 하게 두지 마”라는 대사는 유랑의 삶으로 떠밀리는 인물이 꼭 붙잡고 의지해야할 삶의 모토처럼 들린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흘러가는 삶을 살아야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줄 때, 누군가는 “그 촉감의 힘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감독은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이들이 구원받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과연 그렇다.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 영화엔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얼론(Alone)’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로 시작해 “그런 신비에 마음이 이끌린 것이다”로 끝나는 시는 ‘유랑의 달’의 핵심 주제를 요약한다. 극중에서 두 번이나 반복되는 이 시는 ‘다름’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다. 힘든 상황에 처한 주인공들에게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도 울림이 크지 않을까.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당신의 상상력에 자기를 내맡기고 기러기처럼 그대에게 소리쳐요. 격하고 또 뜨겁게…” 정처 없는 삶을 살아야하는 후미도 “세상 만물이 이루는 가족” 속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게 될 것이다.

[사진 = 영화특별시]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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