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키키 브라더스’ 임순례 감독, 故 이얼 추모 “늦둥이 아들 넘 걱정마시고 편히 쉬기를”[전문]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이 26일 세상을 떠난 배우 이얼을 추모했다.

임순례 감독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인터넷뉴스를 보다가 이얼씨의 부고기사를 보았다. 이얼씨와의 첫인연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찍기 훨씬 전인 1992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로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이어 이문열 원작의 ‘들소’로 인연을 맺어 천신만고 끝에 다시 연락이 닿아 영화 ‘와키키키 브라더스’에 캐스팅하게 된 과정을 회고했다.

임 감독은 “나는 얼씨에게 한달 정도의 시간을 주면 10킬로 정도 감량이 가능할지 물었다. 대본을 건네받아 읽은 그는 연기를 쉰지 오래되었고 주연의 부담감이 있으며 결정적으로는 자기가 음치라며 고사했다”고 했다.

이어 “나는 이얼씨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우울함의 표정을 믿었고 그에게 나를 믿고 함께 해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썼다. 설득당한 그는 한달만에 10킬로를 빼고 ‘와이키키 브라더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가 표현한 품격있는 좌절감 그리고 내성적인 순수함이 있었기에 영화는 분에 넘치는 평가를 받을수 있었다”고 썼다.

마지막으로 그는 “암투병 사실도 몰랐던 나의 무심함을 탓하며...인생은 꼭 이런다. 굴곡 많고 힘든 인생을 살다가 이제 좀 자리가 잡힐만 하면 ...살만하면... 부디 사랑하는 늦둥이 아들 넘 걱정마시고 편히 쉬기를”이라고 마무리했다.

한편 이얼은 26일 식도암 투병 끝 이날 오전 별세했다. 향년 58세.

이얼은 드라마 '라이브', '스토브리그', '사이코지만 괜찮아', '보이스 시즌4' 등에 출연했다. 또한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화려한 휴가', '82년생 김지영', '제 8일의 밤', '경관의 피' 등 스크린에서도 활약한 바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8일이다.

임순례 감독 추모글 전문

프랑스유학에서 돌아온 나는 이문열 원작의 ‘들소’라는 작품에서 스크립터로 일하고 있었는데 당시 잘 나가던 박중훈/변우민/신은경등이 캐스팅 되었었고 이얼씨는 얼굴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카리스마가 있는 배역으로 연극계에서 스카웃되었다. ‘들소’는 일주일간의 촬영 후에 결국 엎어지고 말았고 우리의 인연도 일단 거기서 중지되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시나리오를 완성한후 적당한 주연배우를 찾지못해 고심하던 중 ‘들소’ 연출부를 같이했고 당시 모작품의 조감독을 하고 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진행하고 있는 영화에서 신비한 분위기의 킬러를 찾고 있는데 이얼씨 생각이 난다며 연락처를 알고 있냐고~?

얼씨의 이름을 듣는 순간 ‘와이키키’의 주인공으로 적역이라는 감이 왔고 우리 둘은 최선을 다해 그를 찾아보자고 약속을 했다.

연극판/영화판을 떠나 태국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파편적 얘기 이외에 연락처 찾기가 지지부진하다가 천신만고끝에 연락이 닿았고 우리는 의정부 전철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근 10년만에 본 얼씨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이가 둘 딸린 가장으로 부동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그는 후덕한 복덕방 아저씨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애타게 이얼씨를 찾았던 조감독 친구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고 나는 얼씨에게 한달 정도의 시간을 주면 10킬로 정도 감량이 가능할지 물었다.

대본을 건네받아 읽은 그는 연기를 쉰지 오래되었고 주연의 부담감이 있으며 결정적으로는 자기가 음치라며 고사했다.

나는 이얼씨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우울함의 표정을 믿었고 그에게 나를 믿고 함께 해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썼다. 설득당한 그는 한달만에 10킬로를 빼고 ‘와이키키 브라더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가 표현한 품격있는 좌절감 그리고 내성적인 순수함이 있었기에 영화는 분에 넘치는 평가를 받을수 있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이후 그는 몇편의 다른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주목을 이어가진 못했다. 중국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겪으면서 또다시 영화판과 멀어진 그와 다시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2015년 강정마을에 갔다가 그가 제주에 살고 있다는 얘길 들었고 다시 십여년만에 그를 만날수 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소식을 주고받으며 그가 출연한 ‘82년생 김지영’ ‘스트브리그’ ‘경관의 피’ 등을 보며 누구보다 반갑고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었는데 부고사진을 보고 있자니 아직 실감이 나지않아 이렇게 긴 글을 주절대고 있다.

작년말 와이키키 개봉 20주년 행사때 얼씨가 몸이 안좋아서 불참한다는 얘길 듣고도 대수롭지않게 여겨 연락도 못해본것이 마음에 너무 걸린다.

암투병 사실도 몰랐던 나의 무심함을 탓하며...

인생은 꼭 이런다. 굴곡 많고 힘든 인생을 살다가 이제 좀 자리가 잡힐만 하면 ...살만하면...

부디 사랑하는 늦둥이 아들 넘 걱정마시고 편히 쉬기를.

[사진 = 마이데일리 DB, 임순례 감독 소셜 미디어]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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