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 시대에 만난 산울림과 신중현[김성대의 음악노트]

첫 곡 '무지개꽃 피어있네'를 듣는다. 어깨를 쫙 편 베이스 톤. 보컬과 기타가 주고 받는 블루스풍 전개. 무심한 가사. 어느새 들어선 오르간. 아무래도 요즘 세대를 노리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이 막연한 느낌은 '이슬방울'에서 더 뚜렷해진다. 노래 전반(全般)을 책임진 기타 리프와 과장된 드럼 연주 위로 흩뿌리는 후반 기타 릭은 언뜻 방금 밤무대를 끝낸 밴드가 지친 몸을 이끌고 스튜디오로 와서 녹음한 듯 들리는 것이다. 노랫말 "피어"와 "피어" 사이에 "아!" 하고 피어나는 짧은 탄식은 또 어떤가. 조덕배의 그것('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 마냥 '바람 불어오면'에 굳이 '은'을 붙여 옛 감성을 건드리는 것도 이 앨범이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달아난 음악을 들려줄 것인지를 예고하고 있다. 일단 제목들부터가 복고적이다. '무지개꽃 피어있네', '이슬방울', '미워요', '바람 불어오면은', '봄날', '그대 그리고 또 그대', '정말 모르겠네'. 당장 우리 부모님에게 보여드려도 납득할 만한 순수함으로 똘똘 뭉친 타이틀들이다.

텍스트와 정서로 빚은 표면적 배치만이 아니다. 악기와 연주, 소리 톤에서도 밴드 콩코드는 과거를 향하고 있다. 가령 녹음에 20~30만 원대 기타와 마이크를 동원한 일, 그 녹음은 다시 산울림과 김정미의 앨범을 참고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재킷 사진에서 손으로 날리는 '초음속 여객기'가 얼마나 느린 속도로 극단적인 후진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또한 밴드 스스로 자신들 음악을 '사이키델릭 록'으로 규정하고 있을뿐더러, 뿌린 보도자료에서도 이들은 "옛스러운 공간감"과 "환각과 현실"이라는 사운드 차원의 시공 설명을 착실히 전하고 있다. 다 떠나서 오프라인 발매 수단을 카세트 테이프로 고른 것, 80년대 '각그랜저' 다음으로 '있는 집'의 상징으로 군림한 국내 자동차 업계의 대표 모델인 '콩코드'(밴드 측은 피천득의 수필집에서 발견한 단어라고 했지만)를 앨범 제목으로 쓴 사실로도 이 음반의 레트로 지향은 자체 증명되고 있다.

기타와 목소리를 언급하고 가야겠다. 심수봉의 히트곡과 제목이 같은 '미워요'의 클래식 기타 전주는 이 음반이 레트로 음반 뿐 아니라 기타 음반임도 강조하기 때문이다. 멤버 오지호는 자신의 재즈 트리오까지 이끄는 실력파 기타리스트로, 장기하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정말 모르겠네'의 엔딩 기타 솔로는 그걸 뜨겁게 증명한다. 그는 '미워요'와 '정말 모르겠네' 외에도 작품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신중현 반 김창완 반' 기타 프레이즈를 열심히 썰어넣는다. 그런 오지호는 노래도 부르는데, 그 옛날 김창완이 잘하던 다정한 서글픔이 그의 목소리에 낙엽처럼 잠들어 있다. 스산한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 덤덤한 가사와 노래, 기쁘지 않은 기쁨의 목소리. 벚꽃 피는 따뜻한 봄날도 콩코드의 음악을 통과하면 쓸쓸한 가을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오지호다. 사실 콩코드는 곧 오지호였다. 콩코드의 데뷔 앨범에서 메인 보컬과 코러스, 기타, 베이스, 드럼(미디)과 스트링, 오르간과 브라스는 모두 오지호 혼자 한 것이다. 심지어 믹싱과 마스터링도 오지호 스스로 했다. 콩코드는 오지호의 원맨 밴드였던 것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자살한 이등병이 실은 그 영화의 감독이었다는 것에 버금가는, 이 음반의 작은 반전이다.

사실 모든 걸 혼자 하면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장점은 자신이 의도한 바를 거의 백프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부대낄 필요도 없다)일 것이고, 단점이라면 결과물의 객관적 퀄리티를 담보할 수 없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음반은 놀랍게도 둘 다를 잡은 듯 보인다. 창작자가 의도한대로 나온 것 같고(그랬으니 발매를 했을 터) 나온 음악은 완성도 면에서 제법 설득력도 갖췄다. 바야흐로 뉴트로 시대. '초음속 여객기'는 콩코드 자동차를 모르는 세대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작품이다.

[사진제공=지호기타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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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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