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파스트’,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말대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이 말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처음 언급한 뒤 봉준호를 거쳐 이제 ‘벨파스트’의 케네스 브래너 감독에게 당도했다. 그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셰익스피어 전문가’다. ‘헨리5세’ ‘헛소동’ ‘햄릿 만들기’ ‘햄릿’ ‘오델로’의 필모그라피가 그의 존재를 설명한다. 셰익스피어 외에도 그는 주로 원작을 각색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프랑켄슈타인’ ‘마술피리’ ‘토르:천둥의 신’ ‘신데렐라’ ‘오리엔트 특급살인’ ‘나일강의 죽음’은 모두 원작을 스크린에 옮기는데 주안점을 둔 작품이다. 이제 그가 “가장 개인적인 것”으로 돌아왔다. 그는 영화 ‘벨파스트’를 통해 자신의 고향인 북아일랜드 벨파스트를 배경으로 유년시절의 추억을 길어올리며 폭력의 시대를 성찰한다.

맑은 날이면 골목에 나와 음악과 함께 춤을 추고 해질녘엔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불러 저녁을 먹는, 모두가 서로의 가족을 알고 아끼던 1969년의 벨파스트. 9살 소년 버디(주드 힐)는 돈을 벌기 위해 런던을 오가는 아빠(제이미 도넌), 두 아들을 끔찍하게 챙기는 엄마(케이트리오나 발피),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할아버지(시아란 한즈)와 할머니(주디 덴치)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 해 8월, 개신교도 무리가 천주교 신자들의 집을 습격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평화로운 벨파스트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마을 입구에는 바리게이트가 세워지고 군인과 자경단은 주민들을 검문한다. 아버지 친구는 자기 편에 들어오라며 협박을 일삼고, 목사는 천국과 지옥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겁박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현대의 벨파스트 전경을 컬러 화면으로 보여주다 자연스럽게 1969년 벨파스트 골목길 풍경을 담아내는 흑백 화면으로 전환된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에서도 알 수 있듯,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데 흑백이 잘 어울린다. 흑백엔 따뜻하고 포근한 감성이 스며있다. 브래너 감독은 직감적으로 흑백을 떠올렸다고 밝혔다. 극중 버디는 브래너 감독의 분신이다. 그의 시선으로 벨파스트의 평화로운 일상과 폭력적인 사건이 펼쳐진다. 컬러가 선명한데 비해, 흑백은 모호하다. 애매하고 분명하지 않은 세상이 서로의 마음을 내어주고, 보듬어주며 살아가는데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아군과 적군을 칼같이 나누는 이분법은 9살 소년의 눈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폭력이다.

젊은 시절 탄광에서 일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어낸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삶의 지혜를 넌지시 일러준다. 긴 나눗셈을 하느라 힘겨워하는 버디는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숫자를 헷갈리게 써봐. 틀린 답을 썼어도 맞게 처리될지 모르잖니”라고 귀띔해준다. 경주마가 두어 마리 있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손자가 “그건 속임수 아녜요? 답은 하나만 있잖아요”라고 묻자, 현명한 노인은 “답이 하나면 이 동네 사람들이 저렇게들 자폭하겠니?”라고 말한다. 벨파스트를 공포로 몰아넣는 종교인들을 꼬집는 말이다. 수학은 하나의 답만 존재하지만, 현실은 다양한 답이 존재하는 곳이다. 세상은 언제나 하나의 답만 옳다고 주장하는 이상주의자들에 의해 무너진다.

“너는 어느 쪽이냐”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버디 가족은 버텨낼 재간이 없다. 버디는 틈 날 때마다 TV 또는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한다. 서부영화 ‘하이눈’부터 뮤지컬영화 ‘치티치티 뱅뱅’에 이르기까지 ‘벨파스트’에 등장하는 영화는 모두 떠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브래너 감독은 “어떤 면에서는 모두 탈출에 관한 영화, 모두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들이었다”고 말했다. 버디 가족이 극장에서 본 영화는 ‘치티치티 뱅뱅’인데, 극중 주인공이 차를 몰고 가다 낭떠러지로 떨어진 뒤 하늘을 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떠날 수 밖에 없는 버디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폭력을 피해 도망가다 위기를 만날 수 있겠지만, 가족의 힘으로 다시 비상한다는 꿈이 담겨있다.

버디 가족은 종교 폭력이 불타오르는 와중에 학교 운동장에서 멀리뛰기 놀이를 한다. ‘멀리’ ‘뛴다’는 행동이 벨파스트 탈출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 편으로 들어와 저들과 싸우자고 선동하는 야만의 시대에 영화를 사랑하고. 첫사랑 소녀와 결혼을 꿈꾸는 9살 소년의 소소한 일상은 설 자리를 잃는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다른 종교를 갖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라는 아들의 말에, “소녀가 다른 종교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존중해줘야한다”는 아빠의 대답은 브래너 감독이 이 시대에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이다. 그는 제94회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소감에서 “‘벨파스트’는 아름다운 도시에 바치는 영화”라고 했다. 아름다움은 어느 쪽 편을 들 것이냐고 강요하지 않는 세상에서 피어오른다. 일찍이 폴 발레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적이라는 건 각자 안에 모두가 있고, 모두 안에 각자가 있다고 막연히 느끼는 것이다. 내가 이쪽에 속할지 혹은 반대쪽에 속할지는 그 무엇도 입증해주지 못한다.”

[사진 = UPI]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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