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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율리의 경희를, 잊지 못하리 [이승록의 나침반]
22-01-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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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저 혼자만의 약조를 지키지 않았을까 싶어요. 덕임이가 좋아했던 먹을거리, 책 같은 것들을 구비해 놓고 그렇게 경희의 인생을 마무리하지 않았을까요."



제조상궁이 된 경희는 덕임이 죽은 뒤 고독한 삶을 보내던 정조가 "너도 혼자 남았느냐" 묻자 "소인은 혼자가 아니옵니다"라고 했다. 경희는 "예전에 동무들과 약조를 했지요. 반드시 다시 만나자고. 하오니 제 동무들은 소인을 기다려줄 겁니다. 의빈 역시 그러하겠지요"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정조의 마음은 불타올랐고, 경희는 "의빈을 잊으셨다 생각하였습니다. 하오나, 아니셨군요"라고 했다.

그 도발적이면서도 당돌한 눈빛으로 경희를 연기한 배우가 하율리다. 마지막회에 시청자들이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였는데 "서상궁(장혜진) 마마께서 연기를 봐주셨다"고 고마워한 하율리는 경희로서 작품 안에서 보여준 자신의 연기를 "욕심이 많아서 100% 만족하진 않는다"고 말하며 경희가 아닌 하율리의 눈빛으로 웃었다.



2018년 단편영화 '이기적인 것들' 주연으로 데뷔한 하율리는 지난해에만 JTBC '시지프스', SBS '홍천기', MBC '옷소매 붉은 끝동' 등의 작품에 연달아 출연, 높다랗게 비상하기 위한 도움닫기 중에 있다.

데뷔 후 처음으로 언론사들을 돌며 기자들을 만나 인터뷰 중이라는 하율리는 경희보다 풋풋했고, 또래들처럼 호기롭고 싱그러운 목소리였다. SNS 계정이 아직 초보 티가 나길래, 직접 운영하는 건지 묻자 맞다면서 "제가 셀카를 잘 못 찍어요"라며 민망해하며 웃었다. 집에 있는 걸 워낙 좋아해 취미가 '나노블럭 조립'에 뜨개질이고,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집에서 런닝머신을 하거나 줄넘기를 하는 거였다. 셀카를 못 찍는 것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란 이유였다.

다만, '그럼 촬영장 카메라 앞에 설 때는 두렵지 않나?' 묻자 "연기는 달라요"라고 했다. "연기는 제가 제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율리가 경희처럼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잖아요. 제가 그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주체'가 되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의 삶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거든요. '홍천기'도 같은 사극이었는데, 기생이 어떤 제스처를 하고, 어떤 말투를 쓰는지 공부했어요.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요. 아마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심리 전공 분야에 나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선택을 하고 그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거든요."



아직 대중에겐 미지(未知)의 배우인 하율리다.

하오나, 만일 하율리의 삶에 조금이나마 호기심이 생겼다면 29분짜리 단편영화 '이기적인 것들'을 추천한다. 하율리에게 홍성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긴 이 작품에는 '옷소매 붉은 끝동' 경희의 삶과는 전혀 다른 여고생 승희의 삶이 담겨 있다. '이기적인 것들'의 승희가 되었던 하율리가 "아니에요, 그건"이라고 말하던 장면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하율리. "강이름 하, 흐를 율, 이로울 리"라고 했다. "학창시절에는 필기를 엄청 좋아하는 아이였어요"라고도 했다. 그리고 하율리가 오디션장에 들어서던 순간, '옷소매 붉은 끝동' 감독은 "책속의 경희가 나와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하율리가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승희의 굴곡진 삶을 깎고, 경희의 깊은 삶을 헤쳐, 새로운 누군가의 삶을 향해 하율리가 유유히, 하지만 확고히 흘러가고 있다.



[사진 = 스타하우스엔터테인먼트, MBC '옷소매 붉은 끝동' 제공, MBC 방송화면]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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