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용 PK 선방→취소...“알고도 엇박자에 속았다”는 포항 GK 이준

[마이데일리 = 이현호 기자] 올해 K리그 데뷔전을 치른 신예 골키퍼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4강 승부차기에 섰다. 떨릴 법도 한데 긴장한 모습이 없었다.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청용 선수의 슛을 막을 수 있었는데...”라며 자신을 되돌아봤다. 포항 스틸러스 이준 이야기다.

포항은 지난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1 ACL 8강 울산 현대전에서 극적인 드라마를 썼다. 후반 7분 윤일록에게 선제골을 내줬으나 남은 시간 동안 이를 악물고 동점을 노렸다. 그 결과 후반 45분에 수비수 그랜트의 헤더골이 나왔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포항쪽으로 기울었다.

연장전 30분 동안 양 팀 모두 추가골을 넣지 못했다. 결국 승부차기에서 최종 승자를 겨뤘다. 포항 골문을 지킨 1997년생 이준은 2019년에 포항에 입단했지만 올해 K리그 데뷔전을 치른 신예다. 리그 기록은 2경기 출전 4실점. 주전 골키퍼 강현무는 부상을 당해 뛸 수 없었다. 상대 울산 골문을 지킨 조현우는 K리그만 269경기나 뛴 국가대표 베테랑이다.

승부차기 선축은 울산이었다. 울산 1번 키커 불투이스의 페널티킥(PK) 슛이 포항 골문 위로 벗어났다. 이어서 울산 2번 키커 이청용의 PK 슛은 이준이 몸을 날려 막았다. 그러나 주심은 이청용의 슛 전에 이준이 골라인에서 발을 뗐다며 다시 차라고 선언했다. 이청용의 두 번째 슛은 골문 중앙을 갈랐다.

이 순간을 돌아본 이준은 “토너먼트라서 승부차기를 미리 준비했다. 특히 이청용 선수와 김지현 선수의 슛 패턴을 잘 분석했다. 둘의 슛 방향을 모두 알았다. 그런데 제가 이청용 선수의 슛에 너무 성급하게 반응했다. 슛 동작을 두 박자로 나눠서 엇박자로 찼다. 타이밍에 속아 골라인을 넘고 말았다. 정말 아쉽다. 조금만 더 기다리고 뛰었다면 막을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울산은 1번 불투이스를 제외한 이청용, 김지현, 김기희, 박용우가 PK를 성공시켰다. 포항은 1번부터 5번 키커까지 임상협, 권완규, 김성주, 전민광, 강상우가 모두 골을 넣었다. 승부차기 결과 포항의 5-4 승리. 마지막 키커 강상우의 골 직후 모든 포항 선수들이 얼싸안고 뛸 때 이준은 옆에서 무릎을 꿇고 울었다. 그의 옆으로 후배 골키퍼 조성훈이 달려왔다.

이준은 “승부차기에서 이긴 다음에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세상이 하얘졌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조)성훈이가 가장 먼저 달려와 안아줬다. 혼자서 뭐라고 소리 지르더라. ‘사우디(결승 개최지) 가자!’ 이랬나? 기억은 잘 안 나는데 혼자 막 소리쳤다. 너무 기쁘고 팀원, 감독님, 코치님, 팬 모두에게 고맙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남겼다. “승부차기를 포항 서포터스 앞 골대에서 했다. 제 뒤에서 포항 사투리로 ‘준아, 네가 뛰고 싶은 곳으로 뛰어라. 자신 있게 해라’라고 격려해주셨다. 든든했다. 팬분들 응원 덕에 떨지 않고 경기를 마쳤다. 추운 날에 먼 곳까지 응원하러 와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포항이 ACL 결승에서 알 힐랄(사우디아라비아)까지 꺾으면 FIFA(국제축구연맹) 클럽월드컵에 나가게 된다. 각 대륙 챔피언이 모이는 클럽월드컵에서 유럽 챔피언 첼시를 만날 수도 있다. 설레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준은 “아직 클럽월드컵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결승에서 알 힐랄을 이겨야 그 다음 클럽월드컵이 있고, 첼시가 있고, 루카쿠가 있다. ACL 결승이 사우디에서 열린다. 알 힐랄 팬들의 응원이 엄청나다고 들었다. 기세에 눌리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끝으로 이준에게 롤모델을 물었다. 이준은 “프로 오기 전 롤모델은 김동준(대전하나 시티즌) 형이었다. 당시 저는 고등학교 3학년에서 연세대로 올라갈 때였다. 겨울에 미리 연대 축구부에 합류해 2주간 동준이 형과 함께 훈련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동준이 형은 대단했다. 아우라가 있다. 모든 걸 보고 배우려고 했다”라고 들려줬다.

지금은 롤모델이 바뀌었다. 이준은 “프로 와서는 당연히 강현무 형이 제 롤모델이다. 같은 팀 선배라서 빈말로 하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제 롤모델이다. 정말 대단한 선배다. 골키퍼치고 키가 크지 않은데 존재만으로 안정감을 준다. 선방은 물론이며 수비 리딩, 킥력, 노련함 등 배울 게 너무 많다. 현무 형이 같은 팀 선배여서 좋다. 형의 빈자리를 잘 채워서 ACL 우승컵을 들겠다”라고 답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포항 스틸러스 제공]

이현호 기자 hhhh@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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