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력자들이 한국야구에 준 조명탑과 프로야구...90세 원로의 마지막 꿈은?

[마이데일리 = 장윤호 기자]한국프로야구를 설계하고 창립을 주도한 이용일(90)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 총재대행(이하 총재)는 1960년대와 80년대 군부 정권의 최고 권력자들이 한국 야구에 두 번의 큰 성장과 도약의 기회를 줬다고 회고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군부 독재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었겠지만 한국야구가 처음으로 조명탑 시설을 하고 야간 경기를 할 수 있게 된 것과 국민 소득 2000달러에 불과한 나라가 프로야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최고 권력자들의 힘이 아니었으면 어려웠다고 한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가면 오세훈 서울 시장 재직 시절 사라진 동대문야구장의 흔적으로 ‘조명탑’이 보존돼 있다. DDP 뒤쪽 녹지 한 켠 에 있는데 우리가 지금 쉽게 볼 수 있는 스타디움 외벽 조명탑과는 달리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두 받침대에 설치돼 있다. 오랜 야구팬이면 동대문구장에 야구 보러 갔다가 조명탑 아래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조명탑이 한국야구 뿐 아니라 국내 최초의 조명탑이다. 그것이 1963년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국민재건최고회의 박정희의장 지시에 의해 탄생하게 됐다.

이용일 총재는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1963년 9월 제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가 서울 동대문 구장에서 열렸다. 한국과 일본, 대만, 필리핀 등이 참가했는데 한국은 그전까지 한 번도 우승을 못했다. 그래서 서울에서 반드시 일본에 이겨 우승을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일본과 우승을 놓고 두 번을 붙었는데 박현식, 김응용의 수훈으로 우승을 차지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기록 상 해방 이후 18년 만에 일본에 거둔 첫 승리였다.

그 경기 후 한국대표팀은 당시 동대문야구장 근처인 장충동 외무부 장관 공관에 있던 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관저를 방문했고 이 자리서 박정희의장이 기뻐하면서 무엇을 해줬으면 좋겠냐고 물어서 나온 것이 ‘조명탑’ 시설이었다. 박정희의장은 흔쾌히 약속했고 3년 후에 예산이 집행돼 1966년 서울 동대문운동장에 조명 시설이 설치돼 야구팬들이 퇴근 후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이용일총재는 이어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1년 7월 청와대가 이상주 교육문화수석 주도로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출범을 준비했을 때도 조명탑이 문제가 됐다고 밝혔다.

프로축구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조명탑 시설을 정부에서 지원해줄 것을 요구했고, 프로야구는 참여 재벌 그룹이 주축이 돼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서 프로야구가 먼저 출범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배경에는 처음에는 청와대가 반대했던 지역연고제와 고교야구, 그리고 실업야구의 저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6개 재벌 기업의 참여가 최종 확정된 후 내무부, 재무부에 지시해 구단 선수 세금도 면제해주고 구장 사용도 무료로 하게 해주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해 한국프로야구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1931년생으로 90세인 이용일총재는 “현재 코로나 사태에서는 그 누구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금은 준비를 해야 한다. 코로나로 어쩔 수 없이 침체된 한국야구를 살릴 방안을 모두가 나서 강구해야 한다. 정부도 스포츠를 도와줘야 한다.”며 “꼭 한국야구가 자립해 1000만 관중 시대를 여는 것을 보고 싶다”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당신의 꿈을 밝히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사진=마이데일리 DB]

장윤호 기자 changyh21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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