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비주류 히어로들의 유쾌한 ‘냠냠’[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잭 스나이더 감독이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 ‘저스티스 리그’로 DC를 수렁으로 밀어넣은 이후, DC의 미래는 암울해 보였다. 경쟁사인 마블은 케빈 파이기의 진두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거대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간 반면, DC는 이렇다 할 청사진 없이 ‘DC 확장 유니버스’라는 애매모호한 깃발을 들고 좌충우돌하다 영화팬의 외면을 받았다. 마블은 스파이더맨(소니), 헐크(UPI), 엑스맨·울버린·판타스틱4(20세기폭스) 등 인기 캐릭터를 다 잃은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을 내세워 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DC는 미국 최고 코믹북 캐릭터인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을 갖고도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했다. 양사의 경쟁은 일찌감치 막을 내리는 듯 보였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DC는 ‘변화’를 받아들이며 반격에 나섰다. 감독의 창의성을 존중하며 작품마다 뚜렷한 개성을 갖도록 했다. 먼저, 패티 젠킨스 감독이 솔로무비 ‘원더우먼’으로 부진 탈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속편 ‘원더우먼 1984’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어 ‘쏘우’ ‘분노의 질주7’의 제임스 완 감독은 ‘아쿠아맨’으로 1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토드 필립스 감독에게 ‘조커’ 메가폰을 맡긴 것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외로운 광대가 분노의 괴물로 ‘변해가는’ 아프고 섬뜩한 탄생기를 담았다. 슈퍼히어로 장르의 사회적 현실 버전을 탁월하게 그렸다. '조커'는 R등급 영화로서는 역대 최초로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워너브러더스 영화로는 '아쿠아맨'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이후 역대 4번째로 달성했다.

부적절한 트윗으로 디즈니에서 퇴출당한 제임스 건 감독을 영입한 것도 ‘신의 한 수’였다. 워너브러더스는 그에게 ‘전권’을 부여했다. 마블 히어로 무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로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던 그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뽐냈다. 자살 특공대를 데리고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영화를 만들었던 데이빗 에이어 감독과 달리, 그는 ‘19금 히어로 무비’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쭉쭉 밀고 나간다. 머리가 댕강 잘리고,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B무비 감성으로 무장한 그는 비주류 캐릭터에 강렬한 개성을 불어넣으며 왜 이들이 자살 특공대인지를 흥미롭게 증명했다.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몇몇 주요 캐릭터를 죽이고 시작하는 대담한 발상은 제임스 건 감독이기에 가능했다. 관객이 “이건 뭐야?”라고 놀라기도 전에, 그는 반미주의 성향의 코르토 몰디즈라는 가상의 섬나라로 직진한다.

폭주하는 액션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게하는 할리퀸(마고 로비)도 매력적이지만,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히어로는 킹 샤크(실베스터 스탤론 목소리)와 피스메이커(존 시나)다. 적군과 아군 가릴 것 없이 ‘냠냠’으로 입맛을 다시는 킹 샤크의 엉뚱한 행동은 제정신이 아닌 비주류 히어로의 매력을 발산한다. “진실을 아는 것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피스메이커는 ‘과연 애국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를 제공한다. ‘가오갤’의 욘두(마이클 루커)를 데려와 극 초반부 ‘서번트’라는 이름으로 써먹은 그는 중후반부에는 맨티스(폼 클레멘티에프)를 슬쩍 등장시켜 마블과 DC의 경계를 가로지른다(실베스터 스탤론도 ‘가오갤2’에 등장했다). 마블에 비해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가 강한 DC는 ‘유쾌한’ 제임스 건을 내세워 DC 확장 유니버스의 경직된 분위기를 일순간에 바꿨다.

제임스 건 감독은 ‘가오갤3’를 끝으로 마블을 떠난다. 감독의 창의력을 존중해주는 DC에 호감을 느낀다고 밝힌만큼, 그는 이후에 DC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그는 지난달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DC 멀티버스에서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재미있다”고 밝혔다. DC필름스의 월터 하마다 사장은 할리우드 리포터와 인터뷰에서 “언제 돌아와도 환영”이라며 “비전이 탁월한 최고의 파트너”라고 극찬했다. 제임스 건은 현재 내년에 HBO맥스에서 방영될 ‘피스메이커’ 8부작 드라마를 촬영중이다. ‘더 배트맨’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던 그는 마블만큼이나 개성 넘치고 독특한 캐릭터가 즐비한 DC월드에서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훨훨 날아오를 것이다.

마블과 DC의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진 = 워너브러더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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