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 진화한 재난 블록버스터를 보고 싶다면 [양유진의 클로즈업]

[마이데일리 = 양유진 기자] 영혼까지 끌어모아 마련한 내 집이 지하 500m 싱크홀에 빠진다면? 이러한 기발한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해 스펙터클은 물론 인간애, 유머까지 갖춘 영화 '싱크홀'(감독 김지훈)이 올여름 유일무이 재난 블록버스터로 관객과 마주할 채비를 마쳤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둔 동원(김성균)은 비가 맹렬히 쏟아지던 어느 날 청운빌라 501호에 이사 온다. 11년 만 서울 자가 마련에 성공한 동원은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것도 잠시 한쪽으로 도르르 굴러가는 구슬이나 뻑뻑한 창문, 주차장 바닥에 난 금을 보고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그러나 빌라 주민 대다수는 '집값 내려간다'며 외면하고 쉬쉬한다.

영화는 각 캐릭터의 전사에 적절한 시간을 할애한다. 동원과 첫 만남부터 사사건건 부딪치며 티격태격하는 401호 주민 만수(차승원)가 트레이닝 센터, 사진관, 대리운전까지 '쓰리잡'을 뛰는 이유가 하나뿐인 아들(남다름)에 있었다는 것, 또 집도 사랑도 포기한 김 대리(이광수)와 명절 선물조차 못 받는 짠내 폭발 인턴사원 은주(김혜준)의 모습을 차례로 비추며 설득력을 생기게 한다.

등장인물에 감정 이입해 언제 땅이 꺼질지 조마조마하던 바로 그때 최악의 재난이 펼쳐지는데 기대 이상의 기술적 완성도가 스크린 가득 묘사된다. 지반이 점차 가라앉으며 하늘을 뒤덮는 흙먼지, 순식간에 건물을 집어삼키는 웅장한 싱크홀, 전깃줄이 끊겨 튀는 스파크, 무자비하게 찌그러지는 자동차 같은 디테일이 살아 움직인다.

제작진은 20여 채의 건물과 대규모 암벽 세트, 진동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짐벌 위에 빌라를 짓는 대규모 프로덕션을 진행했다. 여기에 '연평해전', '명량', '더 테러 라이브' 등의 시각특수효과(VFX)에 참여한 서경훈 감독이 합류해 고차원의 스펙터클을 완성해냈다. 차승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돈 들인 티가 나는 영화"인 셈이다.

장르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곳곳에 흥미로운 변주를 더했다. 발랄한 유머가 여타 재난 영화와 가장 큰 차별점이다. 코미디 대표 흥행 보증 수표 차승원을 필두로 이광수, 김혜준이 극한의 긴장감 속 유쾌한 티키타카로 웃음을 준다. 싱크홀 탈출을 궁리하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 우물에 빠진 기억을 꺼내놓거나, 생사의 갈림길에 서서 셀카를 찍는 식이다. 보통의 소시민 동원으로 분한 김성균은 아들을 향한 절절한 부성애로 영화를 풍성하게 채운다. '충무로 대세' 김재화와 고창석, 김홍파, 권소현 등 화려한 조연진은 뒤를 탄탄하게 받친다.

현실을 반영한 예리한 풍자도 인상적이다. 빌라 한 칸을 위해 소위 '영끌', '빚투'까지 한 가장과 고급 아파트를 '오르지 못할 에베레스트'라고 일컫는 청년의 자조가 씁쓸한 감상을 남긴다.

오는 11일 개봉. 러닝타임 113분.

[사진 = 쇼박스 제공]

양유진 기자 youjinya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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