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늦게 뽑힌 클로저, 일탈 후 나온 ‘신의 한 수’ [도쿄올림픽]

[마이데일리 = 최창환 기자] 전화위복이었던 걸까. 가장 늦게 대표팀에 선발됐던 오승환의 존재감이 예사롭지 않다. 덕분에 한국은 벼랑 끝으로 몰릴 뻔한 위기에서 벗어났다.

한국이 지난 1일 2020 도쿄올림픽 야구 남자 녹아웃 스테이지 첫 경기에서 따낸 역전승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한국은 1회말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린 후 7이닝 연속 무득점에 그쳤지만, 1-3으로 맞이한 9회말에 응집력을 발휘해 도미니카공화국에 4-3 역전승을 따냈다. 한국은 이날 승리로 2일 이스라엘과 격돌, 4강 진출을 노리게 됐다.

오승환은 끝내기안타를 터뜨린 김현수 못지않은 수훈선수였다. 오승환은 1이닝 무실점 투구를 펼치며 이번 대회 2번째 승을 챙겼다.

과정도 극적이었다. 1-3으로 뒤진 9회초 무사 1루. 김경문 감독은 박세웅을 오승환으로 교체하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오승환은 1루 주자를 견제하는 과정서 실책을 범해 순식간에 무사 3루 위기에 몰렸다.

타구가 외야로 향하면 더 말할 것도 없고, 내야 깊은 타구만 나와도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 상황. 하지만 오승환은 침착했다. 오승환은 찰리 발레리오-후안 프란시스코-예프리 페레스를 모두 내야 땅볼 처리하며 임무를 완수했다. 한국이 따낸 대역전승의 시발점이었다.

오승환의 위기관리능력은 이미 이스라엘과의 조별예선에서도 발휘된 바 있다. 오승환은 비록 9회초 라반웨이에게 동점 솔로홈런을 허용했지만, 승부치기에 돌입한 10회초 무사 1, 2루에서는 이스라엘 타선을 ‘KKK’ 처리했다. 숱한 위기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했던 ‘끝판왕’의 모습을 도쿄올림픽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오승환은 6월 16일 김경문 감독이 최종엔트리를 발표할 당시만 해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발표 전까지 오승환의 2021시즌 기록은 28경기 2패 20세이브 평균 자책점 3.08. 세이브 1위였지만, 마무리투수 가운데에는 고우석(LG)과 조상우(키움)만 선발됐다. 당시 평균 자책점 1.88이었던 고우석이 대표팀의 새로운 마무리투수를 맡을 것으로 예상됐다.

오승환은 이후 일어난 변수로 인해 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됐다. 한현희(키움)가 방역지침을 위반하는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밝혀져 도마에 오른 것. 결국 한현희는 스스로 대표팀에서 하차했고, 이때 김경문 감독이 택한 카드가 오승환이었다.

일탈 없이 올림픽에 출전했다면, 한현희가 어떤 경기력을 보여줬을지 장담할 수 없다. 선발투수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마운드 운영에 큰 힘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떤 가정도 가정에 그쳤을 뿐이라는 점이다. 한현희의 자리를 채울 투수로 오승환을 선택한 것은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오승환은 김현수, 강민호와 더불어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3명 가운데 1명이다. 당시 2경기에서 1승 1세이브 평균 자책점 0.00을 기록했던 오승환은 13년이 흐른 후에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대표팀으로선 그야말로 전화위복 아닐까.

[오승환. 사진 = 마이데일리DB]

최창환 기자 maxwindo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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