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4번타자'는 15년 전부터 야망을 품고 있었다 [MD스토리]

  • 0

[마이데일리 = 고척돔 윤욱재 기자] '조선의 4번타자'는 15년 전부터 '야망'을 품고 있었다.

시계를 2006년 2월로 돌려보자. 한국야구는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승엽, 박찬호, 구대성, 이종범 등 한국야구의 간판스타들이 총출동해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내로라하는 야구 강호들을 쓰러뜨렸다.

이들을 보며 국가대표의 꿈을 키운 사나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대호였다. 당시 WBC 대표팀은 일본 후쿠오카에서 훈련을 소화하며 대회를 준비했고 롯데와 연습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이대호는 대표팀의 '스파링 파트너'로 낙점된 팀의 소속 선수일 뿐이었다. 롯데에서 중심타자 역할은 하고 있었지만 기량이 만개한 시점이 아니라 국가대표와는 거리가 멀었다.

WBC 대표팀 코치였던 류지현 LG 감독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대호가 했던 말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저도 가고 싶습니다"라는 한마디였다. 언젠가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열망을 표출한 것이다.

류지현 감독은 "대표팀이 후쿠오카에서 훈련을 할 때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모여 있었고 이대호가 '나도 일원이 되고 싶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4번타자가 됐다"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공교롭게도 이대호는 2006년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우뚝 섰다. 미완의 거포였던 그는 타격 3관왕을 차지하면서 완성형 타자로 '폭풍 성장'을 했다.

이대호는 2006시즌을 마치고 열린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의 꿈을 이뤘고 이를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09년 WBC,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3년 WBC, 2015년 프리미어12, 2017년 WBC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제대회에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다.

특히 2015년 프리미어12에서는 일본을 격파하는 역전타를 날리며 '조선의 4번타자'라는 닉네임의 진가를 드러냈다. 2006년 WBC 대표팀을 보면서 국가대표의 야망을 키웠던 것이 오늘날 이대호를 만든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이대호. 사진 = 마이데일리 DB]

윤욱재 기자 wj38@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