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의심하는 천용성의 "분하고 더러운 팝"[김성대의 음악노트]

천용성을 들었다. '김일성이 죽던 해' 이후 2년 만이다. 존재와 죽음을 번갈아 부르는 그의 음악은 여전히 어둡다. 따뜻하지만 외롭다. 뒤틀려 있고 그을려 있다. 그의 음악에선 상상과 일상이 부대끼고 자조와 냉소가 치받는다. 과장 대신 긴장이, 설명 대신 압축과 생략이 그의 노래를 지배한다.

말이 싫어 선택했다는 천용성의 노래는 때로 어리숙하게 들린다. 그런 그의 목소리엔 모종의 분노도 서려있다. 한편으론 순진하게 들리는 그 목소리는 '개새끼',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노랫말도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세상 삐딱한 의심의 분비물이다. 그는 늘 물과 불을 함께 말한다. 물과 불의 공존은 야누스 같은 천용성의 음악적 이념이자 심리적 체념이다.

천용성은 자본과 브랜딩을 비웃지만 지금 그에겐 자본과 브랜딩이 필요하다. 그가 계속 음악을 해나가기 위해선 비대중적 작법으로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수몰'은 정말로 그의 "유작"이 될지 모른다. 그의 음악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건 꼭 가사 내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앨범엔 총 열 한 곡을 실었다. 거기엔 지난 앨범의 '김일성'보다 더 현실적인 '안철수'라는 이름도 포함될 뻔했다. 하지만 해당 곡은 천용성의 멘토인 단편선이 "모독죄와 명예훼손죄의 형량"을 찾아본 끝에 누락되고 말았다. 아쉽다. 어떤 곡이었을까.

간간이 초대 손님들 이름도 보이는데 특히 시옷과 바람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있다'와 '식물원'에 등장, 쓸쓸한 천용성 음악에 넉넉한 숨결을 보탰다. 천용성 스스로 "내가 먼저 교제를 요청한 몇 안 되는 사람"이라고 한 시옷과 바람은 천용성에게 "적게 말하기에 관심을 두게 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번 작품에서 그의 표현들이 유독 압축적이고 추상적이었던 건 시옷과 바람 때문이었다.

앞서 말했듯 이것은 데뷔작 이후 2년 만의 앨범이다. 그런데 겨우 2집이 놀랍도록 침착해졌고 또 깊어졌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슬픈 협주를 담은 '붉은 밤'이 대표하듯 한 장이 아니라 이미 앨범 몇 장 내어본 사람에게나 찾아올 법한 여유와 사색이 천용성의 두 번째 작품엔 그득하다. 아마도 발매 자체가 목표였던 1집에 비해 2집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을 추구한 "세 배 큰 기획"이었기에 그랬을 테다. 이는 천용성이 더 좋은 녹음실, 음악가들의 참여를 추진한 배경이기도 하다.

그가 연주와 녹음, 편곡에 공 들인 흔적은 곡들을 들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트랙들은 웅장하게 흘러가다가도 한 악기에 집중할 순간이 오면 그대로 줌인해서 그 연주만을 우리 앞에 비춰낸다. 플루트와 클라리넷, 그랜드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과 핸드퍼커션, 드럼, 그리고 이설아의 노래에 서너 명의 코러스까지 녹인 타이틀 곡 '수몰'은 전자의 좋은 예다.('수몰'의 원제는 일본 만화가 우루시바라 유키의 작품 제목 '수역'이었다.) 후자의 디테일은 세상의 부당, 부조리에 맞선 친구를 추모한 '거북이'와 함께 천천히 걸어가는 최규민의 트럼펫 솔로와 강말금의 노래 곁에 바짝 붙어 흐르는 박기훈의 클라리넷 솔로, 그리고 7분대 곡 '중학생'을 반으로 가르는 하드록 기타 솔로(단편선의 솜씨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특히 "영심이가 부르면 어울릴 것 같은 노래"이자 자신의 이중적이었던 중학생 시절을 떠올린 '중학생'은 "분노가 맡아둔 자리에 부러움이 들어선" 천용성의 성인 시절과 교차 편집되며 앨범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들려준다. 죽음이라는 어린 시절 고민을 노래로 옮겼다는 '어떡해' 역시 동요를 "슬픈 노래"라 말하는 천용성의 지론이 시나리오 형식을 빌려 표현된 곡으로, 과연 평소 음악을 "철학의 한 갈래"로 본다고 한 그 다운 트랙이다.

언젠가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장이머우의 '홍등' 리뷰에 이렇게 썼다.

"'홍등'은 엄청난 자신감을 갖고, 타협했다는 증거는 조금도 내비치지 않으면서 너무나 직접적이고 아름답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여기서 '홍등'을 '수몰'로 바꾸려 한다. 단편선이 "'어떤 식으로 존재하겠다'에 관한 노래"라고 설명한 '반셔터'가 더는 천용성이 모던 포크라는 장르에만 가둘 수 없는 아티스트라는 걸 천명하고 있을 때 그의 "엄청난 자신감"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가 "분하고 더러운 팝"이라 자평한 그것은 결국 천용성이라는 사람이 기어이 오르려 한 음악 산(山)이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두 번째 내역서에서 "고집이 완전히 꺾이거나 고집만이 남았을 때 사람들이 들어간다"라고 말한 바로 그 산.

[사진제공=오소리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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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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