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뒤집힌 원칙.."이럴 거면 매뉴얼 왜 만들었나" [MD포커스]

[마이데일리 = 박승환 기자] "이럴 거면 매뉴얼은 왜 만들었나?" 한 야구 관계자의 말이다.

KBO는 12일 서울 도곡동의 야구회관에서 10개 구단이 참여한 긴급 이사회를 개최해 리그 중단 여부에 대해 논의했고 "오는 13일부터 18일까지 편성된 30경기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순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코로나19의 영향은 NC 다이노스로부터 시작됐다. 지난 9일 NC 선수 2명이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KBO리그에 비상이 걸렸다. 이후 6~7일 NC와 경기를 치른 두산 베어스 선수단도 즉각 검사에 착수했고, 2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또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NC에서 재검사를 받은 선수 1명이 추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KBO는 지난 11일 긴급 실행위원회에 이어 12일 이사회를 통해 올림픽 브레이크 약 일주일을 앞두고 리그 진행 중단을 결정했다.

KBO리그에서 선수단 내 코로나19 확진자 및 밀접 접촉자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한화는 신정락이 2군에 머물던 중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한화는 2군 선수단 모두가 자가격리를 했고, 한동안 선수 수급에 차질을 빚었다. 올해 KT에서는 1명의 코치가 확진, 롯데는 래리 서튼 감독이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면서 자리를 비웠지만, 리그는 정상적으로 진행했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시즌을 성공적으로 치른 KBO는 올 시즌을 준비하며 '구단 내에 확진자가 발생해도 인원수와 상관없이 대체 선수를 투입해 리그를 진행하겠다'는 원칙을 세웠고 이는 계속 지켜져왔다. 원칙대로라면 두 팀은 2군에서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충원해 계속 경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상적인 경기 진행이 어렵다'며 원칙 자체를 바꿔버렸다. NC와 두산에 대한 '봐주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리그 중단은 모든 구단이 찬성한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의 이해 당사자인 NC와 두산은 당연히 리그 중단에 동의했지만, KIA를 시작으로 롯데, SSG가 리그 중단에 부정적인 뜻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구단의 A 관계자는 "올림픽 브레이크가 없었다면 룰대로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하지만 룰은 룰이다. 경기를 치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경쟁을 하는 팀 입장에서는 리그 중단을 반대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시즌 개막 전 매뉴얼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당시에도 확진자가 발생하면 많은 밀접 접촉자가 생기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며 매뉴얼의 허술함을 꼬집었다.

이어 다른 구단의 B 관계자는 "리그 중단은 말도 안 된다. 이럴 거면 매뉴얼은 왜 만들었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질병관리청에서 '리그를 진행하지 말아라'라고 지침이 내려온 것도 아니다"라고 리그 중단에 대한 부정적인 뜻을 드러냈다.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비슷한 반응이었다. 또 다른 구단의 C 관계자 또한 "매뉴얼이 무색한 결정이다. 속 마음은 다르지만 현재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리그 중단 반대를 강력하게 말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안전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하지만, 원칙도 그만큼 중요하다. 원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믿고 따를 수 있어야 하는 것. 원칙이 상황에 따라 바뀐다면 리그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끝까지 지키지도 못할 원칙을 만들고 결국 뒤집은 KBO는 다시 신뢰를 잃고 있다.

[KBO,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르고 있는 잠실구장. 사진 = 마이데일리 DB]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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