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나온 한국 힙합 책 '힙합코리아'[김성대의 음악노트]

토리이 사키코가 쓴 '힙합코리아'는 나온지 5년 된 책이다.(초판이 2016년 9월 1일에 나왔다.) 분량은 192페이지로, 2년 뒤 같은 날 나온 '데스메탈코리아'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비슷한 콘셉트인 미즈시나 테츠야의 '데스메탈코리아'가 흑백인데 비해 '힙합코리아'는 올컬러로 제작돼 보기에 좀 더 낫다는 점은 짚어둘만 하다.

저자는 2011년 빅뱅의 탑(T.O.P)이 부른 솔로곡 'Turn It Up'을 계기로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에까지 관심을 뻗쳤다. 이전까지 그는 한국 힙합에 문외한이었고 록, 재즈, 팝, 포크, 헤비메탈 등을 들어온 평범한 리스너였다. 당시 그가 알았던 래퍼란 고작해야 에미넴 같은 '초유명' 스타 밖엔 없었다. 참고로 토리이 사키코는 한국 힙합의 매력을 한글의 어감, 가요(歌?)적 요소 덕분에(일본인도) 친해지기 쉬운 음악성을 꼽았다. 그는 여기서 '한글 어감' 쪽에 비중을 두고 한국 힙합을 따로 듣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일본인들에게 한국 힙합을 알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장 한국 힙합에 관한 일본어 자료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역기를 돌려가며 자료를 모았고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한국 힙합을 자국 음악 팬들에게 소개해나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그의 블로깅에 조금씩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그는 차곡차곡 쌓아온 자신의 블로그 콘텐츠를 거쳐 한국 아티스트를 일본으로 초청해 라이브 공연을 열 수 있었고, 한일 아티스트의 협업에서 가교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또 힙합엘이 같은 힙합 전문 사이트에서 뮤직비디오 일본어 자막 작업도 했을뿐더러 재즈 뮤지션 키쿠치 나루요시가 진행하는 TBS(일본 간토지방을 가청권역으로 하는 TBS 홀딩스 산하 민영 TV방송사. 한국의 교통방송(TBS)이 아니다.) 라디오 프로그램 '키쿠치 나루요시의 순수한 야전파(夜電波)'에 나가 한국 힙합을 말하기도 했다. 지금 내가 소개하는 책 '힙합코리아'는 그러한 저자의 '한국 힙합 전문가'로서 자국내 이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은 크게 세 카테고리로 나뉜다. 먼저 도끼로 시작해 랍티미스트에서 끝나는 아티스트/프로듀서 소개가 첫 번째이고 한국 힙합 역사, 딥플로우의 떡볶이 레시피, 한국어 랩 가사에 관한 고찰이 포함된 칼럼 10편이 그 두 번째이다. 그리고 인터뷰 네 편인데,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와 버벌진트, 딥플로우와 '탈북 래퍼' 강춘혁이다.

서문을 지난 책은 곧바로 '용어해설'에 들어간다. 여기엔 레코드 레이블과 벌스(Verse), 리프(Riff) 등 음악/음악업계 용어를 비롯해 라임(Rhyme), 플로우(Flow), 턴테이블리즘(Turntablism), 믹스테잎(Mixtape)을 설명한 힙합/랩 용어들이 포함된다. 또한 에스앤피(SNP) 등 한국의 옛 힙합 PC 동호회와 한국대중음악상, 컨트롤 대란, 쇼미더머니, 아이돌래퍼 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내용을 다룬 한국 힙합 용어, 그리고 이스트/웨스트코스트 및 서던 힙합 등 지역형과 올드스쿨/뉴스쿨 등 시대형, 붐뱁/뉴잭스윙/갱스타랩/지-펑크/트랩/재지힙합 등 힙합의 서브 장르들도 이 챕터에서 간략하게나마 모두 다룬다.

무엇보다 책에서 가장 비중있는 영역인 '아티스트/프로듀서 소개'에선 해당 인물들과 관련한 전반적인 소개 글과 더불어 추천곡(들) 미니 리뷰를 실었고 글 꼬리엔 정규앨범, 미니앨범, 프로젝트앨범, 믹스테잎 목록을 꼼꼼히 기록했다. 예를 들면 사이먼 도미닉과 이센스 경우엔 슈프림팀 앨범들까지 언급되고 다이나믹 듀오 페이지에선 씨비매스와 개코의 솔로 앨범까지 다루는 식이다.

'한국 랩 역사'와 '힙합 레이블/크루' 칼럼은 13년 전 한울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맥락을 비슷하게 따르고 있지만, 이 책은 그 책이 다루지 못한 이후 한국 힙합 8년 역사를 더 다루었다는 점에서 나름 가치를 갖는다.

또 하나 이 책에서 흥미로운 건 한국어 랩 가사를 스타일별로 나눠 분석한 칼럼이다. 저자는 한국 래퍼들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각각 스토리텔링계, 언어유희계, 스웨그계, 팔러시(Policy)계, 대중계로 거시 분류한 뒤 각 계파별로 다시 세분화해 주요 래퍼들의 가사 성향을 조망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난 래퍼들이 포함된 스토리텔링계에서 문학적인 영역은 타블로와 키비(Kebee)가, 철학적 영역은 타블로와 피타입, 버벌진트가, 그리고 자전적 가사는 이센스와 딥플로우가 대표 아티스트로서 채웠다. 라임과 언어 다루는 솜씨가 탁월한 언어유희계에선 라임 쪽에 피타입과 버벌진트, 라임어택이, 언어유희 쪽엔 빈지노와 라임어택, 타블로와 블랙넛이 포함됐다. 또 부자와 성공자만, 실력과시로 나뉘는 스웨그계에선 전자에 도끼와 더 콰이엇이 들었고 후자엔 스윙스와 씨잼, 오케이션이 나열됐다. 인생관이나 활동 스탠스, 정치/사회비판 등을 가사에 싣는 팔러시계에선 전자에 팔로알토와 마이노스, 이보와 제이통이, 후자엔 제리케이와 허클베리 피가 들어갔다. 끝으로 대중이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주로 쓰는 대중계는 러브송 쪽에 버벌진트, 기리보이, 산이, 크루셜스타가 포진했고 파티 쪽에선 다이나믹 듀오와 기린이 다뤄졌다.

일본 힙합에 관한 우리의 분석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미 5년 전에 한국 힙합에 관심을 가진 일본인이 내놓은 조촐한 보고서. 이 책은 내용의 깊이와 질을 떠나 그런 타국 힙합을 향한 저자의 열정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사진제공=PUBL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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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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