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소울’의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와 생전 영혼 22(티나 페이)는 ‘존재의 무거움’에 허덕인다. 먼저, 조 가드너는 ‘인생의 목적’이라는 덫에 걸렸다. 중학교 음악교사인 그는 정규직 발령이 나도 시큰둥하다. 그는 전문 재즈 뮤지션으로 ‘하프 노트’에서 연주하는 게 삶의 목표다. 목적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뜨거운 사막을 건너는 꼴이다. “그렇게 해야한다”는 당위에 빠져 사는 인물이다.

22의 이름은 조세프 헬러의 소설 ‘캐치-22’에서 따왔을 것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위험한 전쟁 임무를 피하려 정신이상을 주장하지만, 그의 정신이상 주장이 오히려 미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내용과 관련된 이야기다. 흔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뜻한다. 지구에 가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가기 싫다고 버티는 영혼의 이름으로 잘 어울린다. 22는 “그렇게 해보았자”라는 허무에 발이 묶인 영혼이다.

우연한 기회에 조 가드너의 몸으로 지구에 도착한 22는 피자를 먹고, 자유롭게 걷고, 떨어지는 낙엽에 아름다움을 느끼며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그러나 조 가드너는 그것은 그냥 사는 것이지 삶의 목적이 아니라고 다그친다. 너만의 불꽃을 찾아야한다고 강요한다. 그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가치를 둔다. 22는 삶의 불꽃이 뭔지 모른 채 다시 생전 세계에 돌아가 지구통행증을 조 가드너에게 건네준다.

‘소울’은 인생의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바꾸라고 조언하는 영화다. 그리고 삶을 긍정하라고 가르친다. 이 영화와 가장 잘 어울리는 철학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다. 실제 피트 닥터 감독은 외신 인터뷰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주의, 허무주의와 니체의 사상, 실존주의와 사르트르 등을 공부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소울’은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다양한 철학에 기반을 둔 인문학 영화다.

인생의 목적에 집착하는 조 가드너는 본질주의, 시니컬한 22는 허무주의, 수의사를 꿈꿨지만 이발사의 삶에 만족하는 테즈는 실존주의를 각각 대표한다. 이 세 가지 철학이 서로 얽혀 들면서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지는데, 영화는 영원회귀의 가르침 속에 순간의 삶을 즐기는 ‘생의 긍정’을 예찬한다. 니체는 “의미와 목표도 없는, 그렇지만 피할 수 없이 회귀하는, 무에 이르는 피날레도 없는, 존재하는 그대로의 실존:영원회귀”라고 했다.

영원히 반복되는 일상이 곧 삶이다. 재즈 뮤지션 도로시아가 조 가드너에게 들려주는 우화는 영원회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기가 있는 곳이 물이라고 생각하는 어린 물고기가 나이 든 물고기에게 바다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었다. 나이 든 물고기는 “지금 네가 있는 곳이 바다야”라고 답한다. 매일 밤마다 재즈를 연주하는 것이 바로 삶이라는 것. 그렇게 영원히 돌아오는 일상을 긍정하는 것이 인생이다.

삶에 어떤 의미와 목표가 없으니 무엇이든 생성할 수 있다. 니체는 “다시 생겨날 수 있기 위해서는 소멸하기를 원해야한다. 그것이 너의 삶, 너의 운명이 되도록 하라”고 했다. 조 가드너는 ‘인생의 목적’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22 역시 시니컬한 태도를 버렸다. 테즈는 과거(수의사)를 잊고 현재(이발사)에 만족한다. 세 명은 모두 “마치 네가 수도 없이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라”는 니체의 가르침을 따랐다.

그들은 모두 다시 태어났다.

[사진 = 픽사]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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