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적생→최고 믿을맨' 이승진, "2020년 내게 기적이 일어났다"

[마이데일리 = 이후광 기자] 만일 2020시즌 두산에 이승진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가 두산 뒷문에서 힘차게 뿌리던 강속구가 아직도 생생하다면 이는 상상하기 싫은 가정이다. 두산에게 이승진 트레이드는 신의 한 수가 됐다.

SK 소속이었던 이승진은 지난해 5월 29일 트레이드를 통해 두산으로 둥지를 옮겼다. 처음에는 2군에서 선발 수업을 받으며 부상이었던 크리스 플렉센의 대체 선발로 기회를 얻었지만, 플렉센의 복귀와 함께 필승조로 보직을 바꿔 정착에 성공했다. 이승진은 지난해 후반기 김태형 감독이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는 투수였다.

이승진은 최근 전화인터뷰에서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던 시즌이었다. 선발로 시작해 마무리투수까지 했다”며 “지난 시즌이 끝나고 주변에서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부모님은 자식을 자랑스러워하셨다. 내게 기적이 일어났던 것 같다”고 화려했던 2020시즌을 되돌아봤다.

트레이드는 이승진에게 큰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2019년 17경기(19이닝) 평균자책점 8.05의 부진 이후 2군에만 머물렀던 그는 두산으로 이적해 33경기(51⅓이닝) 2승 4패 5홀드 평균자책점 5.61을 기록했다. 여기에 포스트시즌 9경기 등판이라는 돈 주고도 못 살 귀중한 경험을 했다. 한국시리즈서 5경기 1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2.70으로 호투하며 큰경기에도 강한 면모를 뽐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이승진은 “그 동안 야구하면서 열심히 안 한 적은 없다. 항상 꾸준히 하는 게 목표”라며 “두산에 와서는 감을 찾기 위해 공을 더 많이 던졌다. 물론 팔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그랬다”고 밝혔다.

등판 횟수와 투구수가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책임감이 생겼다. 이승진은 “뿌듯한 한 시즌이었다. 팀이 필요로 하는 중요한 순간에 올라가다 보니 긴장감, 중압감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무조건 잘 던져야겠다는 책임감도 생겼다”고 덧붙였다.

반등 요인으로 잠실구장 및 두산의 견고한 수비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이승진은 “잠실구장이 아무래도 크다보니 넘어갈 것 같은 타구가 펜스 앞에서 잡힌 적이 몇 번 있었다. SK에서도 수비 도움을 받았지만, 두산 야수들 역시 끝까지 공을 따라가서 잡아줬다. 그러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 한국시리즈였다. 그 중에서도 3차전 마무리 등판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이승진은 1⅓이닝 무실점으로 팀의 클로저 고민을 해결했다.

이승진은 “쫄깃했던 기억이다. 7-6으로 앞선 9회 2사 후 모창민 선배를 내보냈는데 동점 위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긴장을 즐겼다. 맞고 나니 더 재미있었다”며 “정규시즌 KT전 3연투(10월 9~11일)도 기억이 난다. 그동안 연투를 하면 공이 느려졌는데 그 때는 갈수록 빨라졌다. 3경기 모두 잘해서 뿌듯했다. 연투에 따른 구속 저하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처음으로 발전을 느꼈다”고 흐뭇해했다.

다만, 호투에도 두 번째 우승반지는 찾아오지 않았다. 이승진은 데뷔 시즌이었던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SK의 우승을 함께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상대팀은 지금의 소속팀 두산이었다.

이승진은 “시리즈를 하면서 우승할 수 있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6차전이 끝나고 NC가 ‘위 아 더 챔피언스’ 노래와 함께 서로를 끌어안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며 “2018년 SK 우승을 보고 있던 두산의 심정이 이랬을 것 같아 뭉클했다. 많이 아쉬웠다”고 전했다.

기적이 일어났던 2020년이 끝나고 새해가 밝았다. 이승진은 2021시즌에도 뒷문에서 강속구를 뿌리기 위해 잠실구장에서 꾸준히 개인 운동을 하고 있다. 두산에서의 첫 풀타임 시즌을 향한 각오가 남다르다.

이승진은 “캠프 때 포크볼을 더 연습해야 한다. 한국시리즈 때 포크볼이 좋지 않았다. 일단 던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는데 상대가 노림수를 갖고 쉽게 못 들어왔다”며 “아무래도 내가 직구 위주의 투수라 투구수가 늘면 한도 끝도 없다. 포크볼을 연마하면 투구수 조절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시즌을 통해 회복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감을 찾기 위해 많이 던진 결과 큰 소득을 얻었다. 이승진은 “선배들이 많이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회복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던지고 회복하는 루틴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새 시즌 특별히 원하는 보직은 있을까. 이승진은 “그런 생각은 없다. 사실 전병두, 김태훈 선배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쉽지 않다”며 “그래도 중간투수가 잘 맞는다. 최대 2이닝 정도 던질 때 집중을 잘할 수 있다. 짧고 굵게 던질 때 잘 된다”고 말했다.

새해 목표는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부상 없는 시즌이다. 올해는 두 번째 우승반지도 꼭 끼고 싶다. 이승진은 “제발 부상만 없으면 좋겠다. 아프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며 “최선을 다하다보면 시즌 끝날 때 자연스럽게 좋은 기록이 나올 것이다. 이와 함께 우승에 꼭 이바지하고 싶다”는 각오를 전했다.

[이승진. 사진 = 마이데일리 DB]

이후광 기자 backligh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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