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로 만나는 전설의 싱어송라이터 '유재하, 피아노로 노래하다'[김성대의 음악노트]

“아들아, 네가 있는 곳에도 음악은 있겠지? 우리는 그 곳에서라도 네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계속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 엄마의 생각이 부질없는 짓일까?”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리마스터반에 동봉된 고 유재하 모친의 편지 내용 중)

1987년 11월. 급작스레 아들을 떠나보낸 한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썼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쓴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였다. 유재하. 요절한 팀 버클리의 아들 제프 버클리처럼 앨범 한 장을 남기고 전설이 된 뮤지션. 대학에서 전공한 서양 클래식 음악을 대중음악에 가장 따뜻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이식한 그의 이름은 언젠가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인디’로 바뀐 국내 비주류 대중음악 신(scene)과 통상 ‘발라드’로 묶여 불리는 80~90년대 한국 주류 대중음악의 심장이 되었다.

조용필과 활동했을 당시 밴드 이름처럼 한국 가요계에서 그런 유재하의 등장은 그야말로 ‘위대한 탄생’이었다. 그의 음악은 기일이 같은 김현식(김현식은 유재하가 떠나고 정확히 3년 뒤 유재하의 뒤를 따라 갔다)과 인연을 만들어준 팀 이름 마냥 ‘봄여름가을겨울’ 언제 들어도 아늑하고 쓸쓸한 음표들의 소행성이었다. 가장 낯선 스타일로 가장 낯익은 멜로디를 직조해낸 그는 작곡가로서 “한국 팝의 뉴 패러다임”(평론가 이경준)이었고, 한국 “팝 송라이팅의 새로운 전범”(평론가 박은석)이었다.

책 ‘유재하, 피아노로 노래하다’는 출판사 ‘그래서, 음악’이 ‘우리가(歌) 사랑한 뮤지션’을 전제로 내놓은 그의 33주기 정식 추모 악보집이다. 그동안 들어서만 알았던 유재하를 이제는 보(고 연주하)면서 추억하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과거 조용필에게 먼저 건넸던 ‘우리들의 사랑’, 영화 ‘살인의 추억’의 정서를 지배한 ‘우울한 편지’ 친필 악보와 더불어 유재하의 유작이자 유일작인 ‘사랑하기 때문에’ 전곡, 그리고 이문세가 부른 ‘그대와 영원히’, 한영애가 부른 ‘비애’까지 고인이 만든 11곡 악보가 오롯이 담겼다. 악보는 3박자 고전 유럽 춤곡 ‘미뉴에트’를 제외하고 모든 곡을 반주와 연주로 나누어 실었는데, 연주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페이지 왼쪽 상단에 모범 가이드 연주 영상을 QR코드로 따로 새겨두었다.

유재하가 생전 작곡 때 쓴 기타, 피아노, 베이스 사진과 유치원 졸업 사진, 아울러 그가 묻힌 묘까지 볼 수 있는 이 악보집의 편곡은 김현정이라는 인물이 했다. ‘유재하 콩쿨’ 1회 장학생 헬렌 킴의 본명이 김현정이니 아마도 같은 인물인 것 같다.

한양대학교 작곡과 출신인 유재하는 1984~87년까지 단 4년간 프로 활동을 했다. 기교 없이도 사람들이 노래에 취할 수 있게 만들 줄 알았던 그를 당시 방송계는 ‘가창력 미달’로 꺼려했고, 음악을 평론하는 자들조차 “이상한 노래”라며 그의 음악 세계를 곡해 했다. 하지만 세월은 결국 그의 편이어서 김동률, 박정현, 신승훈, 유영석, 유희열, 윤종신, 이상은, 이적, 조규찬 등이 공공연히 그에게 음악적 빚을 졌다고 고백했다.

30여 년 전 20대 청년이 공들여 쓴 단 30여 분 음악이 이후 한국 대중음악 30여 년 세월을 물들였다. 이제는 우리가 그를 연주할 차례. 이 책이 도와줄 것이다.

[사진제공=그래서,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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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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