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의 공룡 밴드, 본 조비 신작 '2020'[김성대의 음악노트]

본 조비의 열 다섯 번째 앨범이다. 제목은 ‘2020’. 본 조비의 2020년이라. 80년대를 정복하고 90년대를 무사히 빠져나와 2000년대에도 그럭저럭 살아남았던 공룡 밴드의 현재는 과연 어떤가. 한마디로 처참하다. 나이가 들었으니 과거의 에너지는 바라지도 않는 바, 적어도 음악에서 관록 만큼은 살아있어줘야 하는 것 아닐까. 지금의 본 조비에겐 그 무엇도 없다. 그저 김 빠진 맥주요, 식어빠진 전복죽일 뿐이다.

데뷔작 ‘Runaway’ 이후 처음으로 존 본 조비 혼자 등장한 앨범 커버 사진은 1950~60년대 록 역사를 사진으로 남긴 마이클 옥스가 1962년에 찍은 존 F. 케네디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존의 선글라스 안에선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고 케네디의 선글라스엔 캘리포니아 군중이 담겨 있다는 사실 뿐, 전체 분위기는 흡사하다. 본 조비는 이로도 모자랐는지 사진 우측 상단에 있는 숫자 ‘2020’의 ‘0’들에 따로 별까지 새겨 넣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래서 본 조비의 신보는 주력 홍보 대상으로 작금 새 대통령을 맞을 기로에 있는 미국인들을 특정한 작품이다. 그러나 현지 평단의 냉담한 반응을 봤을 땐 이마저 안이한 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진심이 진심으로 전해지지 않는, 그야말로 ‘위기의 본 조비’인 것이다.

그나마 휴머니즘이 담긴 메시지는 들어줄 만하다. 팬데믹으로 번진 코로나19에 망연자실한 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Do What You Can’과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지지하는 ‘American Reckoning’은 늘 상식과 정의의 편에 서 온 본 조비의 가장 바람직한 현재다.

하지만 음악으로 오면 얘기가 다르다. 앨범 전체로서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고 변변한 싱글 한 장 찾아보기 힘들다. 코드 진행은 삐걱대고 멜로디는 증발했다. 원년 멤버인 티코 토레스와 데이비드 브라이언은 과연 이 앨범에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일 정도로 과거 그 펄떡이던 그루브는 지금은 숨죽은 배추 마냥 매가리(脈)가 없다.

물론 이 모든 부조리는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그가 밴드를 떠나고(작곡자 명단엔 아직 남아 있었다) 나온 2015년작 ‘Burning Bridges’부터 이번 앨범까지 내리 석 장을 낭비한 본 조비는 더는 추락할 곳이 없어보이는 늙은 독수리가 되고 말았다. 내가 살면서 'Have A Nice Day'를 그리워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 했다는 말이다.

어쨌든 지금 필 엑스라는 기타 연주자는 그저 리드 기타가 없는 본 조비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한 존재 정도로 밖에 내 눈엔 보이지 않는다. 비록 앨리스 쿠퍼를 거쳤다 한들 확실히 그의 기타는 본 조비보단 앤드류 W.K.나 롭 좀비에 더 맞다. 연주와 백킹 보컬, 작곡 어떤 면에서도 필 엑스는 리치 샘보라일 수 없고 리듬 기타 치며 존 본 조비의 작곡을 돕는 존 쉥크스 역시 제아무리 몸부림을 쳐본들 데스몬드 차일드를 따라 잡을 수 없다. ‘Beautiful Drug’과 ‘Blood In The Water’에서 기타 솔로가 불을 뿜어도, ‘Limitless’가 제법 강렬하게 앨범을 열어 젖혀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 와중에 존 본 조비의 영웅 브루스 스프링스틴도 스무 번째 앨범을 냈다. 제목은 ‘Letter To You’. 본 조비가 내건 2020년을 대표할 이 작품의 타이틀은 마치 뉴저지 고향 후배에게 정신 차리라고 써 보낸 ‘보스의 편지’의 다른 이름 같다. 부디, 멸종위기를 맞은 공룡의 건투를 빈다.

[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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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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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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