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 "'부산행'과는 다른 '반도'…극장서 '나들이' 즐겨주시길" [MD인터뷰](종합)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반도'를 극장에서 즐기는 축제처럼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연상호 감독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자신이 연출한 영화 '반도'(감독 연상호) 개봉 기념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 작품에 대한 각종 이야기를 털어놨다.

'반도'는 '부산행' 그 후 4년 폐허가 된 땅에 남겨진 자들이 벌이는 최후의 사투를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이자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국내 최초 아포칼립스 세계관 영화다. 국내에서 11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세계에서 K-좀비 신드롬 주역으로 인정받은 '부산행'(2016)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서울역'에서 '부산행'으로, 그리고 '반도'까지 이어진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 세계관 확장에 일찌감치 전 세계 영화인들이 집중했다. 2020년 칸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되는가 하면, 국내 개봉 전 185개국 선판매, 아시아 국가 동시기 개봉까지 확정지으며 저력을 제대로 과시했다.

강동원, 이정현, 권해효, 김민재, 구교환, 김도윤, 이레, 이예원 등 강한 캐릭터 및 탄탄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과 함께 여름 극장가 대전 첫 주자로 나선 '반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 속 침체된 극장가를 살릴 구원투수로도 평가받는다.

이와 관련해 연 감독은 이날 "1년 전부터 7월에 개봉을 하겠다는 플랜을 가지고 지금까지 왔다. 개봉일을 변경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다 보니 '반도'가 재기의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제 시사회를 하고 나니 실감이 났다. '반도'가 극장 산업과 밀접하고, 책임감을 지닌 영화라는 걸 느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부터 OTT 시장 산업 등의 이슈도 붐이었지 않나.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반도'는 그런 고민의 결과이기도 하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더해지면서 '반도'가 더 부각된 게 아닐까 싶다"고 생각을 밝혔다.

'반도'라는 제목을 짓게 된 비화를 묻자 그는 "운이 되게 좋다. 한국에서 살고 있어서 자연스레 '반도'라는 제목이 나왔다. 사실 '반도'를 리메이크하면 그 느낌을 살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지역적 특성이 있지 않나. 이건 한국만의 특성이다. 바다에 갇혀있지만 또 완전히 섬처럼 갇힌 것도 아니다. 국가적인 이유로 막혀있는 것과 다름없는 것, 이런 애매모호한 게 있다. 그렇다고 탈출을 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게 '반도'다. '부산행'과는 다른 영화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주인공인 정석(강동원)은 탈출 후 다른 곳에서 사느니 돌아가보겠다는 느낌으로 반도로 왔잖아요. 탈출한다고 해서 비전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서 대위(구교환)는 간절히 반도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인물이죠. 정작 주인공은 나갔다 다시 돌아왔는데요. 나가봤자 별 다를 거 없는 걸 아니까요. 이런 지점들이 재밌어요."

'부산행'이 모두에게 친숙한 KTX를 배경으로 해 접근성을 높였다면 '반도'는 익숙한 공간이 폐허로 바뀌면서 오는 이질감을 더해 긴장감을 안긴다. 평소 일상처럼 느껴졌던 공간이 생경한 비주얼로 담기며 실제 전대미문의 재난을 경험하는 듯한 체험을 선사한 것이다. 달리던 기차에서 광활한 도심으로 배경을 확장한 만큼 압도적인 비주얼과 타격감 있는 액션을 자랑한다. 그 중 단연 쾌감을 안기는 부분은 이레와 이정현이 주도하는 카체이싱이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카체이싱에 '매드맥스' 시리즈를 떠올리게 된다. 연 감독은 "액션 장면을 굉장히 고민했다. '부산행' 속 기차라는 공간 자체가 너무도 강력했다. 그래서 후속작을 만들면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내가 보고 싶어하는 쾌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생각하다가 카체이싱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린 소녀가 덤프트럭 같은 걸 운전하고 가는 이미지에서 시작했다. 두툼한 차를 운전하며 활약할 수 있는 장면을 그렸다. 무술 감독님, CG팀, 촬영 감독님이 회의를 굉장히 오래하며 만들었다. 카체이싱 설계만 세 달 이상 걸렸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3D 애니메이션으로 다 작업했다. 음악까지 다 깔아놨다. 촬영은 그것만 따랐다"고 설명했다.

서사적으로도 심도 있게 발전시킨 '반도'다. '부산행'에서 좀비의 출현과 인간과 좀비의 대립을 조명했던 연상호 감독은 '반도'로 넘어와 인간 생존으로 눈길을 돌렸다. 다양한 인간 군상과 그들의 민낯, 밑바닥까지 파고든다. 그럼에도 '반도'의 엔딩에는 희망이 있다. 연상호 감독이 '반도'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다.

연 감독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장르를 처음 봤을 때의 제 심정을 생각해봤다. '매드맥스2'를 봤을 때 굉장히 어렸지만 좋은 느낌들이 있었다. 제가 살아온 세상들이 그렇게 다이나믹하지 않았는데 그 내용이 이해가 가더라. '인간이 저렇게까지 되겠구나' 싶었다. 신선했고, 인간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다양하게 보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장르물의 강점이다. 약간 황당한 설정처럼 보이지만 아주 어린 친구들도 '사람은 사실 저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우화 같은 힘이다"고 말했다.

"이건 대중 영화에요. 그래서 이왕이면 보편적인 엔딩을 원했어요.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엔딩이 아니라, 당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되야 하지 않겠어?'라는 이야기요. 제가 과거에 사회적 영화를 했을 때와는 관객층이 달라졌잖아요. '부산행' 했을 때 친구 아들들한테 인기가 많았어요. 이후에 ''서울역' 보러 가도 돼?'라고 묻길래 그건 안 된다고 했죠.(웃음) '서울역' 만들 땐 보편적인 영화로 만들지 않았으니까요. 사회적인 측면이 강했고요. 보편적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면 당위 중심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어 연 감독은 "'반도' 속 좀비는 사실 아주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 4년 만에 반도로 돌아간 정석의 시점으로 보자. 4년 간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아이들에겐 반도의 삶이 일상이다. 좀비가 위협적이기보다는 그 공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위협이 더 커지지 않았나 싶다"고 전했다.

다만 오리지널 좀비물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아쉬울 수 있는 변화다. 특히 '부산행' 이후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 '#살아있다' 등 여러 좀비물이 탄생했기에 좀비물에 대한 관객들의 기준치도 달라졌다. 그러나 연 감독은 "'부산행' 이후로 좀비물이 많이 나왔다고 까다로워진 건 아니다. 오히려 '부산행' 때 까다로웠다. 이전까지 좀비는 마이너물이었다. 또 마이너한 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더 딥하게 들어가는 게 있다. '부산행'이 대중적으로 잘 돼서 기준점이 되어버린 건 있지만 사실 '부산행'도 처음엔 말이 많았다. 좀비가 왜 이렇게 빠르냐 등의 이야기들이었다. 좀비물을 좋아하는 저로서도 기준이 있었다. '부산행'을 할 때도 이미 전 세계에 좀비물이 많았다. 뛰는 좀비가 클래식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저도 클래식한 부분에 발을 딛고 작업한다고 생각했다. 조지 로메오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고 밝혔다.

연상호 감독은 서양의 괴수로만 여겨졌던 좀비를 한국화하며 대중문화의 장르적 저변을 넓힌 인물임과 동시에 '돼지의 왕', '사이비', '창', '서울역'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통해 사회의 이면을 신랄하게 비판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든 대중의 시그널을 읽으려 노력하게 됐다고 밝힌 연 감독은 "'염력'의 흥행 실패 때문에 생각이 달라진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부산행' 때부터 대중의 니즈를 읽으려 했다. 자본적인 부분도 있고, 관객들을 만족시켜야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저는 개인의 취향과 두 명의 가상 관객을 세워놓고 영화를 다룬다. '염력'은 제 개인적인 취향이 더 많이 들어갔던 작품이다. 저는 창작자이나 독자이기도 하다. 제 취향의 작품을 보는 것과, 만드는 것 중에 뭐가 더 쾌감이 있느냐고 물으면 그렇게 다르지 않다. 만들어온 작품들이 제 취향이 아니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취향은 여러 가지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본다. 작업을 한 게 9년째인데 그간 쌓인 이미지들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이토준지를 좋아하지만 그들을 통해서 제가 형성된 건 아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연 감독은 '반도'를 극장 나들이처럼 즐겨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반도'는 친구, 부모님과 함께 가서 보면 재미있는 나들이가 될 거다.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이 좋은 이벤트이길 바란다. 축제처럼 즐겨주시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반도'는 오는 15일 개봉한다.

[사진 = NEW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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