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8' 한국형 '블랙미러' 탄생 기대…"시각적 스펙터클보다 철학적 사유" [MD현장](종합)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웅장한 블록버스터와 초대형 예산의 전유물로만 느껴졌던 SF 장르. 'SF8'이 이 공식을 깨기 위해 나섰다. 상상력의 저변을 넓혀 일상으로 침투했다. 한국형 '블랙미러' 탄생에 기대감이 높다.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드라마 크로스오버 프로젝트 웨이브 'SF8' 제작보고회가 열려 민규동 감독을 비롯해 노덕, 김의석, 안국진, 오기환, 이윤정, 장철수, 한가람 감독과 배우 이유영, 이연희, 예수정, 이시영, 이동휘, 김보라, 최성은, 하준, 장유상, 이다윗, 신은수, 유이, 최시원, 하니(안희연) 등이 참석했다. 행사는 1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SF8'(에스 에프 에잇)은 MBC와 한국영화감독조합(DGK) 웨이브)가 손잡고 수필름이 제작하는 한국형 사이언스 픽션. 영화와 드라마의 크로스오버 프로젝트다. DGK 대표이기도 한 민규동 감독은 이날 "감독님들이 새로운 도전과 다양한 영화에 욕망이 굉장히 크다"며 "평소 SF 장르는 크고, 어렵고, 독점적인 장르로 여겨졌는데 저희 마음 속에선 늘 욕망이 있었다. 이번 기회에 감독들이 모여서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극장 개봉이 주는 큰 자본의 압박과 어려움과 다른 새로운 플랫폼에서 원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원하는 배우들과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관객들과 만나자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민 감독은 "처음엔 무모하다고 말리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감독님들이 다들 행복해했다. 주변 영화인들에게 전파돼 궁금증을 품게 하고 더 쉽게 이런 도전들을 받아들일 수 있길 바란다. 또 극장과 감상 환경의 변화가 왔다. 감독들도 두려워하고 있다. 스스로 다양한 종류의 영화 방식을 열 준비가 돼있다. 누군가가 영감을 받길 바란다. 다음 시즌으로 이어질 수 있길 지켜보고 있다"고 설렘을 드러냈다.

예산규모와 관련한 물음엔 "전체 제작비가 작은 상업영화 한 편에도 못 미치는 작은 예산이었다. 촬영은 거의 10회차 이내로 마쳤다. 동시에 같은 날 서비스가 되니까 데드라인을 지켜서 급하게 달려오기도 했다. SF이기 때문에 지금과 다른 시공간 재현이 필요했다. 감독님들에게 고충이 많았을 거다. 어려운 조건 안에서 새로운 비주얼을 찾아내는 게 이번 게임의 규칙이었다. 하지만 묘한 행복함을 느끼며 행복하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기술 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된 근미래 풍경을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영화와 드라마를 크로스오버했다는 지점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미러'를 떠올리게 하는 'SF8'이다.

이와 관련해 민 감독은 "50분 전후라는 러닝타임 안에서 단편도 아닌 장편도 아닌 미드폼 형태와 익숙하게 경험하지 못하는 서사 구조라는 지점에서는 영감을 받았다. 8개의 원작들로 교류하고 싶었던 건 SF 문학이었다. 저희는 작품마다 감독님들도 다르다. '블랙미러'는 작가가 거의 한 사람이 같은 세계관을 이어가서 이리저리 붙인다. 화려하게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일상에 SF를 보여주는 건 비슷할 수 있지만 우리는 감독들이 다 다르고 원작에서 화두를 던질 수 있게 차별점을 잘 뒀다. 취향에 맞게 골라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의석, 노덕, 민규동, 안국진, 오기환, 이윤정, 장철수, 한가람 감독 등이 'SF8' 메가폰을 잡았다. 각각 한국판 오리지널 SF 앤솔러지 시리즈를 표방하며 근미래의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로봇, 게임, 판타지, 호러, 초능력, 재난 등 다양한 소재로 8편의 작품을 완성했다.

▲ '간호중'(감독 민규동)

'간호중'은 돌봄노동을 대체한 로봇의 세계를 그려낸다. 요양병원에 10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환자와 지칠 대로 지친 보호자, 그 둘을 보살피던 간병로봇이 자신의 돌봄 대상 중 누구를 살려야 할지 고뇌에 빠진다. 이유영은 간병로봇과 정인 캐릭터, 1인 2역을 연기하고 예수정은 간병로봇으로 인해 신념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사비나 수녀를 연기한다.

영화 '허스토리'에서도 예수정, 이유영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민 감독은 두 사람에 대해 "예수정 선배님은 굉장히 원칙적이고 중심이 잡혀있다. 세계관에 남다른 영역이 있음을 느꼈다. 이번 영화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진 인물로 초대해서 더 강하게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이유영은 눈동자가 독특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이 영화 안에서 보통 사람과 AI 역할을 동시에 해낸다. 평상시에 보는 면과, 신비스럽게 보이는 점을 함께 표현하고 싶었다. 어려운 1인 2역을 소화해냈다"고 말했다.

▲ '만신'(감독 노덕)

'만신'은 높은 적중률을 자랑하는 인공지능 운세 서비스 '만신'을 신격화하고 맹신하는 사회에서 개발자를 추격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동휘와 이연희가 출연해 박진감 넘치는 액션 스릴러 장르물을 예고했다. 노덕 감독은 "과학이 생활 전반을 발전시키는 것도 있지만 미스터리를 푸는 것도 지향점이라고 본다. 풀리지 않은 운세, 사후세계, 영혼 등이 많이 있다. 실제로 과학적인 접근을 하고 밝혀내려고 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크게 멀지 않은 소재라고 생각했다"고 생각을 전했다.

이연희, 이동휘 캐스팅에 대해선 "평소 이연희의 러블리한 모습이 주도적으로 많이 보여졌다고 생각했다. 캐스팅을 진행할 때 형사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었는데, 필모그래피를 보니 보여졌던 것보다 이연희라는 사람은 카리스마 있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또 "남자 캐릭터는 순수하게 그리고 싶었다. 콤비 플레이로 나오는데 선호(이연희) 캐릭터의 강함을 중화시켜주고, 폭력적으로 풀지 않는 순수한 모습의 남자 배우를 떠올렸다. 이동휘가 생각이 났다"고 밝혔다.

▲ '블링크'(감독 한가람)

이시영과 하준이 출연한 '블링크'는 인간인 고참 형사와 AI인 신입형사가 함께 살인 사건 수사에 나서는 작품이다. 한가람 감독은 "미래 경찰이기 때문에 지금 경찰이 가지고 있지 않은 기술들을 많이 사용한다. SF 드라나와 영화를 많이 참고했다. 버디물을 형식을 갖추고 있어서 비슷한 작품들도 많이 참고했다"고 전했다. 이시영과 하준은 입을 모아 "SF 장르라 더욱 창의적이게 작업했고 신선함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 '인간 증명'(감독 김의석)

아들과 결합된 안드로이드가 아들의 영혼을 죽였다고 의심하는 엄마의 이야기 '인간증명'에는 배우 문소리, 장유상이 출연한다. 아들의 영혼을 죽였다고 의심받는 사이보그화 인간 영인으로 분해 문소리와 호흡을 맞춘 장유상은 "문소리 선배님을 워낙 존경해서 무섭기도 하고 긴장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선배님께서 너무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하게 촬영했다. 선배님이 연기하시는 걸 보면서 저도 울컥하는 순간들이 많았고 소름끼치기도 했다. 정말 잘하시더라. 값진 경험이었다"고 특별한 순간을 꼽기도 했다.

▲ '증강콩깍지'(감독 오기환)

VR 애플리케이션에서 서로의 얼굴을 속이고 만난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증강콩깍지'에는 유이, 최시원이 출연해 가상현실이 보편화된 세상 속의 로맨틱 코미디를 선보인다. 유이와 최시원이 호흡을 맞췄다.

오기환 감독은 성형 수술 후 완벽한 외모를 얻게 되는 극중 캐릭터 설정을 언급하며 "최시원과 유이 씨. 제가 대한민국 최고의 미남미녀를 모셨다고 자부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에 유이는 "제가 이 역할에 캐스팅된 게 맞는지 몇 번이나 물으면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드렸다"라고 말해 웃음을 더했다.

▲ '우주인 조안'(감독 이윤정)

'우주인 조안'은 미세먼지를 주제로 쓴 장르 소설 단편집 '미세먼지'에 수록된 김효인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미세먼지로 뒤덮인 근미래, 청정복을 입는 평균수명 100세 'C(Clean)'와 청정복을 입지 않는 평균수명 30세 'N(No clean)'의 이야기를 다룬다. 김보라와 최성은이 주연을 맡았다.

이윤정 감독은 "재난 상황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젊은 세대의 고민이 현실적으로 담겨 있어 매력적이었다. 이걸 영화화하면서 시각적으로 두드러질 수 있기 위해 청정복을 설정했다. 청정복이라고 대표되는, 미세먼지를 막을 수 있는 기술이 특정한 경제계급에만 주어진다는 것이 부동산 이슈를 떠올릴 수도 있다고 본다. 생활과 밀접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SF 장르 안에서도 두 캐릭터의 드라마가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다. 또 SF 장르이다 보니 관객들의 편견으로부터 연출자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편견에 한 발짝 떨어져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장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감독 안국진)

김동식 작가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삼은 이 작품은 지구 멸망 일주일 전, 혜성 유도 폭탄 개발을 위해 초능력자들이 모인 이야기를 그린다. 신은수와 이다윗이 주연을 맡아 판타지 로맨스를 펼친다.

안 감독은 "원작 소설이 굉장히 재밌다. 로맨스와 초능력, 종말이 다 섞여있다. 많이 봐왔던 소재일 수도 있지만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지 못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었다. 작가님이 쓰신 상상력을 증폭시키려 많이 각색했다"고 밝혔다.

▲ '하얀 까마귀'(감독 장철수)

'하얀 까마귀'는 생방송 VR 게임쇼에 출연한 BJ 주노가 가상 현실 세계에 갇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그룹 EXID 출신 하니(안희연)와 신소율 등이 극을 이끈다.

VR 게임이 등장하는 것과 관련해 장철수 감독은 "게임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지만 모르는 분들도 많다. 그 분들 입장에서도 영화가 이해될 수 있게 만드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게임이 아니라, SF 및 공포 분위기 안에서 게임이 이뤄진다는 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게임 속에서 과거의 진실을 찾아가는 주노 캐릭터가 도전해야 할 과제였다. 과거 속에서 다가가는 건 진실이다. 진실만큼 무서운 게 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현장 말미, 민규동 감독은 한국형 SF 발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SF가 주는 편견 중 하나가 시각적으로 주는 스펙터클함이 있다. 하지만 시각적으로만 승부하는 영화만 있는 게 아니고 깊은 사유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 동양인의 얼굴과 과학적 요소가 붙었을 때 오는 이질감에 낯설어하실 수도 있다.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과학적 시도는 있을 거다. 이미 굉장한 제작비를 갖춘 서양의 작품과 비교하면 질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수용 가능한 재현이 이뤄질 수 있을 거라고 본다"며 "즐겁게 통과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SF8'은 오는 10일 웨이브에 독점 선공개되며 8월 중 MBC를 통해 방송된다.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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