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소녀' 이주영이 목소리를 내는 방법 [MD인터뷰](종합)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전 오늘만 사는 사람이에요." 솔직하고 꾸밈이 없다. 포장하려 애쓰지 않아도 단단한 소신과 굵은 심지가 엿보인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사람. 배우 이주영(29)이었다.

이주영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야구소녀'(감독 최윤태)와 관련해 인터뷰를 진행, 각종 이야기를 공개했다. '야구소녀'는 고교 야구팀의 유일한 여자이자 시속 130km 강속구로 '천재 야구소녀'라는 별명을 지닌 주수인(이주영)이 졸업을 앞두고 프로를 향한 도전과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은 여성 성장 드라마.

오는 18일 정식 개봉하게 된 '야구소녀'는 지난해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아 극장가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됐고 주인공 이주영은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립스타상을 받았다. 평단의 호평과 동시에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 화제성의 중심에는 이주영이 있었다. 그는 최고구속 130km, 볼 회전력의 강점으로 '천재 야구소녀'라는 별명을 얻으며 주목 받았지만 편견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기회조차 받지 못함에도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주수인을 연기했다. 여성 캐릭터가 이끌어가는 작품에 갈증을 느낄 때쯤 만난 시나리오였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던 이주영은 "부산에서부터 관심을 너무 많이 주셔서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전작 '메기'도 주연급이긴 했지만 구교환, 문소리 선배님 등과 앙상블로 진행됐다. 그러나 이 작품은 수인이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없을 정도다"면서도 "잘 나온 거 같아서 만족스럽다. 시나리오부터 내러티브가 탄탄했다. 주수인 캐릭터에 매력을 많이 느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10대를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떤 연령층이 봐도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소재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주수인도 중요하겠지만 엄마나 아빠, 동료 등과 관계가 잘 그려진다면 주수인 캐릭터도 더 살아날 거 같았다. 감독님의 첫 장편이었는데 글 자체가 너무 좋았다"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주수인에게서 자신과 닮은 점도 발견했다. 이주영은 "주수인의 주변인들은 모두 도전을 만류한다. 악의적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인은 한 번 정한 길을 돌아가려는 꾀를 부리지 않는다. 저 역시 연기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주변에서도 다른 길로 가보는 게 어떠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저도 수인이처럼 '연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고, 가봤던 길도 아니고, 이제 가려고 하는데 왜 다 안 된다고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수인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하는 일도 다르지만 비슷한 감정을 충분히 느꼈다"고 말했다.

극중 엄마(염혜란)와 크고 작은 갈등을 빚는 것에 대해선 "실제로도 전 무뚝뚝한 딸이다. 연기 시작하면서 혼자 서울에 살고 있다. 그냥 서로가 묵묵히 주변에 있어주는 가족의 양상이다. 매일 연락하고 이것저것 보고는 잘 하지 않는다. 그냥 좋은 소식 있으면 알려주는 정도다. 곁에 언제나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며 "가족애를 느끼는 작품들을 그래도 꽤 많이 했다. 충분히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건 또 그 때뿐인 거 같다.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은 금방 잊히는 거 같다. 그래서 계속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로는 야구 문외한이라고 고백하며 멋쩍은 웃음을 짓던 이주영은 "영화를 위해 한 달 정도 훈련을 했다.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걸 인지하고 들어가서 부담감이 있었다. 실제로 준혁 오빠와 진짜 프로 선수를 준비하는 남학생들과 함께 했다"며 "극중에서 처해있는 상황과 똑같았다. 남학생들과 겨뤄서 이기고 싶은 승부욕이 생기더라. 영화를 위해 준비하는 정도로 저 친구들과 비등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실례지만, 어쩔 수 없이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 주수인이 느꼈을 법한 감정이 이런 것일지 느꼈다. 어떤 부분이 모자란 건지, 신체적으로 모자란 건지, 열심히 하는 것인지 등을 고민했다. 그 자체로 이미 주수인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됐다"라고 전했다.

극중 가장 큰 쾌감과 감동을 안기는 트라이아웃 씬도 언급했다. 그는 "촬영이 마지막쯤이었다. 이 씬에서 수인의 미래가 판가름 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마음이 이상했다. 시나리오 봤을 때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촬영할 때 '잘해야 돼'라는 생각을 했다. 또 함께 하러온 선수들이 있는데, 초반엔 수인이를 무시하고 비웃는다. 하지만 마지막엔 수인이를 응원한다. 그 응원을 실제로 듣는데 되게 뭉클하더라.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이런 거였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을 가졌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많은 분들이 수인이보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셨을 거 같아요. 저도 수인이를 보면서 그 마음이 너무 판타지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세상 때를 탈 만큼 타서.(웃음) 그래서 감독님께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제 연기로 관객 분들을 설득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수인의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잖아요. '앞으로 갈 길도 모르면서 왜 안 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느리게 가도 괜찮다. 이길 수 있다' 등의 대사를 곱씹으며 이해하고 응원했어요."

이주영은 영화 '여행의 묘미'(2013), '생물'(2013), '전학생'(2015), '춘몽'(2016), '채씨 영화방'(2016), '꿈의 제인'(2017), '가까이'(2017), '어떤 알고리즘'(2017), '누에치던 방'(2018) 등 다수의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독보적인 마스크와 개성 있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2016),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 '오늘의 탐정'(2018) 등으로 브라운관에서도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대중성을 키웠다. 지난 1월에는 높은 화제성을 자랑한 '이태원 클라쓰'에서 트랜스젠더 마현이로 파격 열연을 펼치며 대세 중 대세로 떠올랐다.

장르 구분 없이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갔던 이주영. 그의 선택엔 공통점이 있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들에 줄곧 참여하며 강단 있게 소신을 밝혀왔다. 연기에 있어서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젠더 프리 이미지도 생겼다.

이에 이주영은 "'젠더 프리' 이미지는 의도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의도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냥 제가 선택했던 작품들의 결이 그랬다"며 "작품들을 선택하는 데 저만의 기준을 세운다. 작품성, 흥미로움 등에 기반해 작품을 골라왔다. 큰 상업영화가 아닐지라도 소수의 팬들에게 보여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느낀다. 단편을 찍어도 영화제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장편을 찍어도 개봉을 못할 수도 있다. 노력들에 보답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많은데 너무 운이 좋게도 작품성 있는 작품들을 만나게 됐다. 배우는 작품으로 이야기를 한다. 젠더프리적인 이미지를 얻게 된 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동일할 거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갈 수는 없다. 꾀를 부리면서 이미지를 만드는 것보다는 제가 해온 대로 가고 싶다. 또 다른 이미지가 축척될 수 있다"고 힘주어 전했다.

"제가 단편독립영화를 시작한 건 2012년이에요.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많은 게 달라졌어요. 소수자의 권리, 동물권, 여권 등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권리를 취약하게 다룬 시나리오는 이제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는 거 같아요. 모든 감독과 아티스트들은 이미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고, 이런 것들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특별히 그런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하기보다는 너무나 당연한 거죠. 저도 물론 관심이 있고 조심하려고 해요. 이제는 주변에서 제가 실수하는 것들을 잡아줄 수 있을 정도죠 서로 보완하면서 채워나갈 수 있는 양질의 변화가 이뤄지는 거 같아요."

'야구소녀'는 청춘 영화이지만 동시에 여성 영화다. 이주영도 이를 분명히 했다. 그는 "광범위한 주제를 담고 있고, 표면적으로 보면 여성이 현실을 깨고 나가는 영화다. 사실은 그냥 재밌게 볼 수 있는 오락영화"라면서도 "여성이 중심이 돼 이끌고 나간다. 여자선수라도 안 될 건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주제를 빼고 저희 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을 거 같다. 최진태(이준혁)가 주는 도움들로 프로가 된다면, 수인이의 주체적인 면이 바래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부분을 특별히 더 신경 썼다. 다행히 타의로 결정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안심했다"고 말했다.

"저희 영화는 광범위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모든 연령층들이 봐도, 각자 하나의 캐릭터에는 이입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어요. 편한 마음으로 극장에 오실 수 있을 거예요. 그 정도의 애정으로 봐주시면 더할 나위가 없을 거 같아요. 부담이 없지는 않아요. 주인공 격으로 나서는 것도 많이 해본 경험이 아니고요. 그래도 지금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서, 영화를 사랑하면서 홍보를 하고 있어요. 제가 이 영화에 가지고 있는 사심을 떠나서, 지금 시대에 필요한 영화이지 않을까요? 힘을 줄 수 있는 영화에요. 솔직히 이 영화가 잘 되면 배우로서 좋겠지만 제게 콩고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웃음) 하지만 진심으로 이 영화를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이주영의 꿈을 물었다. 그는 "저는 늘 오늘만 사는 사람이라 거창한 건 없다. 연기를 하고 있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뭔가를 이뤄나가고 싶은 것보다 지금 즐겁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치로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영향력이라도 행사하고,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다. 오늘 잘 사는 것. 이런 꿈을 꾼다"라고 태연하게 말하며 웃었다.

오는 18일 개봉.

[사진 = 싸이더스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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