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소녀' 고집이 불통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이예은의 안테나]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타협하고 포기하는 게 용기가 된 세상. 보이지 않는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허황된 꿈을 꾸는 '이상주의자'가 됐다. 많은 이들은 그들의 꿈을 파울볼로 취급하며, 실리를 강조한다. 하지만 꿈꾸는 자들은 허공이 아닌 타자를 향해 언제나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있었다는 것, 영화 '야구소녀'의 외침이다.

1996년 규약이 바뀌면서 여성도 프로야구단의 선수로 뛸 수 있게 됐다. 그 뿐이다. '천재 야구소녀'로 추앙받던 주수인(이주영)은 '소녀'로 머무르는 데 그친다. 편견을 거두지 못한 남학생들은 그가 언제 야구를 관둘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여성 선수는 늘 논외로 뒀던 프로 구단은 조소만 띄운다. 그럼에도 수인은 묵묵하다. 여자 탈의실이 없어 화장실 한 칸을 빌려 써도, 트라이아웃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도, 남학생들과 벌어지는 신체적 차이에 굴욕을 맛 봐도, 부정적 언어가 쏟아져도. "전 해보지도 않고 포기 안 한다"며 휘둘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보다 내 안의 믿음이 더 큰 소녀다.

번번이 벽에 부딪혀도 열망을 꺾지 않는 수인의 모습은 자칫 치기 어린 고집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수인의 감정을 따라가던 기자마저도 의심했다. 어느새 비관적인 주변인이 돼 '할 만큼 했어', '저게 가능한 일일까?'라며 안타까움을 품었다. 그러나 수인의 표정이 달라져있음을 깨달았다. 고개를 숙인 채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수인이 희망에 찬 웃음을 번져내고 있었다. 오만한 재단이었다. 본인도 규정하지 않은 한계를, 타인이 너무도 손쉽게 단정 짓고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풍파를 경험한다. 천재지변과도 같은 대단한 역경이 아니다. 사람들의 불신이다. 빠른 시간 내에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불안을 형성하고, 저마다의 경험을 무기로 단념을 강요한다. 욕망은 독선으로 취급하니 개인은 버틸 요량이 없다.

'야구소녀'는 한번쯤 이러한 과정을 밟아본 이들에게 위로를 안긴다. 위대한 성취를 이루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굳센 의지와 견고한 자아로 주변인들을 설득시키고, 느리지만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주수인의 모습을 보며 가슴에 미묘한 파동이 인다. 여타 스포츠 영화와 같은 호화로운 쾌감은 없지만 균열이 생기는 유리천장에 기대감이 부푼다.

영화는 좋은 주변인이 되는 법도 제시한다. 포기를 종용했던 최코치(이준혁)는 수많은 야구공에 묻은 수인의 피를 보고 동행을 결심한다. 마냥 불구덩이로 뛰어들지 않고,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는다. "포기하는 건 창피한 게 아니야"라며 수인의 글러브를 태우던 엄마(염혜란)도 마음을 달리해 수인이 일궈내는 해방에 함께 한다. 사회가 그어놓은 선에 가로막힐 때, 불투명한 미래에 흔들릴 때, 주변인의 역할은 공을 빼앗는 게 아니라 제대로 던지는 법을 알려주고 믿어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타협과 포기를 '그릇된 행동'으로 치부하는가. 아니다. 또 다른 갈래일 뿐임을 명확히 한다. 다만 무모하다고 평가받았던 이 세상의 수많은 주수인들을 위한 변호다. 미련한 게 아니라 선명한 꿈을 향해 달려갈 뿐이라고, 틀린 게 아니라 느릴 뿐이라고 기운차게 소리친다. "느려도 이길 수 있어."

[사진 = 싸이더스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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