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규정 불가"…'사라진 시간' 정진영x조진웅이 완성한 기묘한 이야기 [종합]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배우 정진영이 미스터리도, 스릴러도, 코미디도 아닌 기묘한 장르를 탄생시켰다. 흥미로운 시도다.

9일 오후 서울시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사라진 시간'(감독 정진영) 언론시사회가 열려 정진영 감독을 비롯해 배우 조진웅, 배수빈, 정해균이 참석했다.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정진영이 첫 연출을 맡은 작품. 연기 경력 33년을 자랑하는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새로운 영역에 도전, 오랜 꿈을 이뤘다. 신선한 소재, 끝없는 상상력으로 완성된 이 영화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리하는 재미를 선사함과 동시에 삶에 대한 고민을 안긴다. 정진영 감독이 메시지를 삽입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 흔적이 가득하다.

정진영은 "이후에 제가 또 연출을 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한 편의 영화라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지 고민했다. '나는 뭐지?',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내가 있는데 다른 사람이 규정하는 나와 왜 충돌할까', '그 사람들은 얼마나 외로울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시놉시스는 그냥 갑자기 썼다"며 "이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홍보팀도 힘들었을 거 같다. 장르를 물어보길래 '하나의 장르로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정해야 했고, 미스터리로 정했다. 사실 이 영화는 하나의 장르로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호러처럼 느껴지더니 코미디도 있고, 멜로도 있고, 형사물, 판타지, 그리고 선문답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선문답을 던지기 위해 이야기를 재밌게 구성하고 가져가려고 노력했다. 만약 장르를 묻는다면 '슬픈 코미디'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서 갈등하는 연약한 인간의 외로움, 슬픈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장르로 이야기하면 오해가 생긴다"라고 강조했다.

특유의 연기력과 강렬한 존재감으로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난' 조진웅은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사라진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필사의 추적을 펼치는 형사 형구 역을 맡았다. 정진영 감독의 섭외 1순위였다던 그는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의 심경을 세심하게 표현해내며 극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조진웅은 "시나리오는 정말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더라. 하나의 명제를 두고 뒷받침하는 건 아닌 거 같다. 가슴 속으로 진하게 밀려드는 무언가가 있다. 너무 집중 안 하셔도 될 거 같고, 그냥 흐름을 쫓아가고 자연스럽게 쳐다보면 소화가 될 것 같다. 재해석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이 영화가 처음이다. 생각할 거리들이 많다. 사실 시나리오 보면서 '여길 왜 가?' 싶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싶었는데 굳이 설명할 이유가 있을까"라며 "미묘한 지점이 정말 많다. 이 세상에 말이 되는 게 있나. 코로나19는 뭐 말이 되나. 하지만 이러면서 산다. 저는 휑한 길을 걸어가는 제 모습을 보며 상당히 미묘했다. 영화를 이제 막 봐서 언제 소화할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좋게 다가왔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정진영과의 호흡에 대해 "현역 배우이자 감독이다. 일단 소통이 잘 된다. 제가 어디가 가려운지 잘 안다. 작품을 관통하는 씬에 도달하기까지 소통이 잘 된다. 말씀도 잘 못하신다. 그래서 뭔지 모르는데 알 것 같더라. 굉장히 유리했다. 제가 만약 감독이 되더라도 이런 소통 부분은 잘 가지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신뢰를 밝혔다.

정해균은 수혁(배수빈)과 이영(차수연) 부부의 비밀을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의뭉스러운 마을 주민 해균 역으로 출연해 영화에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는 "저는 뭔지도 모르고 하겠다고 했다. 시나리오 잘 읽지도 않고 하겠다고 했다. 그러다 후회 많이 했다. 지금도 헷갈린다. 그 때 첫 질문이 '뭐가 진짜에요?'라고 물었는데 '나는 다 실제라고 생각해'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그냥 '아 예'하고 했다. 배우들 모두가 쫑파티 때까지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본명인 정해균으로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그는 "제가 제 이름을 가지고 연기를 하니까 좀 이상하더라. 맨 처음에는 극복이 안 됐다"라고 말해 큰 웃음을 안겼다. 이에 대해 정진영 감독은 "사실 맨 처음에 다른 인물로 썼는데, 안 맞는 느낌이었다. 굳이 다른 인물을 할 이유가 없다. 정해균 배우가 가진 이중적인 면모가 있다. 선과 악이 겹쳐져있다. 그냥 그 자체로 해균이다 싶어서 '해균이를 해라'라고 했다. 사실 제가 배우 출신이다 보니까 후배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주는 게 망설여졌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야 하는 그런 것들이 싫었다. 많은 분들이 '할게'라고 했는데 제가 거절했다. 이 영화에 너무 유명한 배우들이 곳곳에 나오면 이상하지 않나. 그래서 낯선 배우들을 모시려고 했다. 다들 흔쾌히 해줘서 고맙다. 큰 빚을 졌다"고 말했다.

배수빈은 아내 이영과 함께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온 다정다감한 교사로, 아내를 끝까지 지켜주는 캐릭터다. 배우로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한 고민이 치열했다던 그는 "배우로서 어떻게 걷기 보다는, 계속 걸어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던 와중에 시나리오를 받았다.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지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일 수도 있고, 모두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공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진영 감독님께서 꿈꿔왔던 꿈속에 제가 하나의 일부분으로 결과물에 있을 수 있음에 영광이고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이날 긴장감을 숨기지 못하던 정진영은 "영화를 찍으면서 굉장히 행복했다. 힘이 펄펄 났고 싱글벙글 웃음이 났다. 어려운 건 후반 작업이었다. 의외로 잘 안 되는 부분들이 있더라. 후반 작업에 대한 걸 확실히 모르고 찍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 같다. 제가 뭘 알고 시작한 게 아니다. 알았으면 시작을 안 했을 거 같다. 이런 자리가 참으로 무서운 자리인 줄 알았더라면, 겁먹은 채 시작을 안 했을 거다. 그래서 '네가 잘한 일 중에 하나다'라고 칭찬해주고 싶다"고 말하며 기대를 당부했다.

오는 18일 개봉한다.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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