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립', 그러나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이승록의 나침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사랑의 신' 에로스는 연인 프시케가 자신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려고 하자 '사랑을 의심하지 말라'고 했지만, 프시케는 그 금기를 깨고 말았다.

이건 각기 다른 세계의 소녀와 소년이 겪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의 소녀와 소년의 사랑은 숙명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맞닥뜨린 소녀와 소년이 첫눈에 서로가 서로에게 100%인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란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둘은 100%의 상대를 만났음에도, 그 확신을 스스로 의심하며 자신들의 운명을 시험해보기로 한다.

하루키의 이 짧은 이야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실체 없는 존재는 완벽한 상대를 만난 순간에도 얼마나 불확실하게 작용하는지 알려준다.

영화 '플립(Flipped)'의 소녀 줄리 베이커(매들린 캐롤)는 이웃집 소년 브라이스 로스키(캘런 맥오리피)를 보고, 첫눈에 '100%의 사랑'에 빠진다.

첫사랑. 줄리는 브라이스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수박향까지 사랑하고, 브라이스를 위해 신선한 달걀을 한 바구니 가득 선물하는 선의도 아끼지 않았다. 어떤 근거도 없이, 브라이스가 자신의 첫 키스 상대가 될 거라던 줄리의 믿음은 마치 '사랑의 신'이 줄리에게 내린 신탁(神託)과도 같았다.

첫사랑은 한 인간의 취향을 형성하는 데에서 나아가 상대에 대한 일종의 신앙적인 굳건하고 맹목적인 믿음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비록 사실, 소년이 줄리의 "킁킁" 대며 냄새 맡는 행동을 소름끼쳐 하고, 줄리가 준 달걀을 몰래 가져다 버린다는 것을 정작 줄리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소년이 소녀를 몰래 혐오하는 사이, 줄리는 브라이스가 보잘것없다고 여기던 나무에 홀로 올라 노을 지는 세상을 음미하며 점차 나무보다 높이 성장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줄리는 '부분'이 아닌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소녀 줄리는 어쩌면 자신이 첫눈에 사랑하게 된 브라이스가 실은 세상을 편협하게 바라보는 비겁한 소년일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 실체 없는 사랑이란 감정은 믿음이 사라진 순간, 신앙이 그러한 것처럼, 순식간에 뿌리 뽑힌 나무처럼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프시케가 에로스를 눈으로 확인하려 한 것도, '4월의…' 소녀와 소년이 100%의 운명을 시험하려 든 것도, 줄리가 브라이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반문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하지만 '플립'의 소녀와 소년의 첫사랑은 숙명적으로 끝내 엇갈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사랑의 확신'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소녀 줄리가 아닌 바로 소년 브라이스의 확신이었다.

그토록 소녀를 혐오하던 소년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의 가슴 안에서 들끓던 뜨거운 감정이 질투나 시기, 증오나 미움이 아닌 동경과 설렘, 호감과 갈망으로 가득 찬 감정이란 것을 깨닫는다. 그 실체를 맞닥뜨린 순간 소년은 사랑을 확신한다.

브라이스가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자아이를 외면하고 줄리를 쫓아가자 그의 친구가 달려와 "넌 줄리를 싫어하잖아!" 다그쳤는데, 이때 브라이스가 화를 내며 외친 대답이 그 확신의 증거였다. "닥쳐! 넌 이해 못해!"

'플립'과 '4월의…' 각기 다른 두 세계 밖엔 우리의 세계가 기다린다. 확신과 의심으로 뒤엉킨 사랑이 충만한 세계다.

다행인 건, 줄리와 함께 그 보잘것없는 높다란 나무에 올라갔다 온 우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넌 머리카락에서 수박향이 나는 걔를 대체 왜 좋아해?"라고 물어도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세계.

"넌 이해 못해. 걔는 내 100퍼센트의 사람이라고."

[사진 = 영화 '플립' 스틸, 포스터]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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