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라랜드'…나의 사랑이, 나의 자랑이었다 [이승록의 나침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라이언 고슬링의 마지막 표정에서 슬픔을 보았다면 '라라랜드'는 '사랑'의 영화일 테고, 미소를 보았다면 '라라랜드'는 '꿈'의 영화였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라라랜드'는 재즈였을지 모른다. 어떤 악기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미아(엠마 스톤)의 황홀한 첫만남부터 가여운 이별까지 '사랑'을 연주하고, 어떤 악기는 세바스찬과 미아의 좌절과 환희가 교차하는 '꿈'을 연주한 까닭이다.

혹은 아마도, 모든 악기가 앞서거니뒤서거니 어우러져 매 무대가 즉흥적이고 새로운 역사인 재즈처럼, '라라랜드'는 '사랑'과 '꿈'이 합주하여 하나가 되는 거룩하고 위대한 재즈였을지 모른다.

"난 재능이 없나 봐."

'라라랜드'는 우리가 '꿈'을 좇을 때, '사랑'이 어떤 존재가 되어줄 수 있는지를 노래한다.

'꿈의 나라(la la land)'에 살며 방황하는 재즈 뮤지션 세바스찬과 배우를 꿈꾸는 카페 직원 미아는 우연히 도로 한복판에서 만나 같은 길을 황홀하게 달려나가지만, 결국 도로의 끝에서 서로 다른 목표점을 향해 운전대를 돌리고 가엽게 이별한다.

그러나 미아가 마지막 오디션 장면에서 노래하며 찬양했듯, 두 사람이 함께한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사랑의 불꽃'을 서로의 가슴에 새겼다.

"아니, 너는 재능이 있어."

그 '사랑의 불꽃'은 두 사람이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할리우드 스튜디오 사이를 걸을 때, 미아가 자신의 꿈을 조심스럽게 꺼내자 세바스찬은 루이 암스트롱 얘기를 하며 "역사를 새로 쓰라"고 미아를 부추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미아의 가슴에 처음 불씨가 튄 찰나였다.

세바스찬이 성공을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 때, 미아는 "그 밴드에서 하는 음악이 좋아?"라고 묻더니, 진정으로 좋아하는 재즈바를 열라며 "재즈에 대한 열정이 크니까 사람들이 올 거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열정에 끌리니까,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키니까!"라고 했다. 미아가 자신의 가슴에서 그 불꽃을 꺼내 바짝 말라버린 세바스찬의 가슴 속 열정에 던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오디션 제의가 들어왔을 때, 정작 미아는 자신을 의심하며 "난 재능이 없나 봐"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리지만, 세바스찬은 단호하게 "있어!"라고 외친다.

바로 이 장면이 처음 세바스찬이 미아에게 일으킨 '사랑의 불씨'가, 미아의 내면에서 '꿈의 불꽃'으로 키워져 세바스찬에게 던져지더니, 다시 세바스찬이 그 불꽃으로 미아의 가슴 속 열정까지 화르륵 번지게 만든 순간이었다.

"네가 있어, 내가 있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 '깊이에의 강요'에는 한 재능 있는 젊은 여성 미술가가 어떤 평론가로부터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끝내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말살하고 삶을 마감하는 내용이 나온다.

한 사람의 재능이 그 짧은 말 한마디에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격려와 응원 그리고 믿음을 주는 사랑하는 이의 짧은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재능을 발현시키고 잠재력을 키워 꿈에 당도하게 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침내 영화 '라라랜드'는 두 사람의 이별을 우리에게 통보하며, 그럼에도 미아는 최고의 배우, 세바스찬은 재즈바의 주인이 되었다고 알린다.

다만, 재즈바에서 마주한 미아와 세브스찬의 표정에서 우리는 단순히 '사랑을 잃고, 꿈을 얻었다'는 결론을 읽을 수도 있겠으나, 반짝이는 '셉스(Seb's)' 네온사인을 상기하며 '사랑이 있어, 꿈을 이뤘다'는 결론을 읽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라라랜드'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그럼 세바스찬과 미아의 '사랑'과 '꿈'을 모두 지켜본 우린 이제 '사랑이란', 모든 관객이 등을 돌려도, 아무도 그 무대를 지켜보지 않더라도, 그 누구도 연주에 귀기울여주지 않더라도, '널 자랑으로' 여기겠다는 것, 비록 곁에서 나란히 걸어갈 수 없더라도, '날 자랑으로' 여긴다는 말을 기억하며 계속 꿈에게 나아가는 것이라고 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혹은 어쩌면, 대답 대신 차가운 센(Seine) 강에 빠지더라도 어딘가에는 날 자랑스러워하는 영원한 나의 편이 있다는 약속을 믿으며 그 불꽃을 내면에 간직하겠다고 다짐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의 사랑이, 나의 자랑이었다"는 약속 말이다.

[사진 = '라라랜드' 스틸]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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