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 무지개 너머 파랑새를 꿈꿨던 여자 [이예은의 안테나]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는 파랑새들이 날아다녀요. 왜 나라고 할 수 없을까요?"

주디 갈랜드는 영화 제작사 MGM의 손을 잡고 '오즈의 마법사'(1939)의 도로시 역을 열연해 열일곱의 나이에 최고 스타가 됐다. 맑은 목소리로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르는 이 미국 소녀는 황홀경을 안겼다. 당시 전쟁으로 지쳤던 미국인들에게 '소녀'는 구원의 단비이자, 최상급의 품질을 가진 상품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불멸의 소녀, 언제나 우리의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랑스러운 소녀, 어떠한 일에도 굴복하지 않고 희망을 노래할 것과 같았던 소녀가 주디 갈랜드였다.

하지만 주디 갈랜드의 인생은 오즈를 찾아 나선 도로시가 꿈꿨던 무지갯빛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기 좋은' 소녀가 되기 위해선 처절하게 다이어트를 해야 했고, MGM의 혹독한 시스템 아래 자유를 빼앗겼다. 수십 알의 각성제와 수면제에 의지하고, 수십 개피의 담배로 몸매를 관리할 수밖에 없었던 주디 갈랜드는 알코올 없이 삶을 연명하기 힘들 정도까지 이르렀다.

평범한 소녀라는 가면을 쓴 소녀의 실상은 뒤틀렸고, 불안정했다. 결국 47세의 나이, 마지막 공연 6개월 후 화장실에서 약물 중독으로 숨을 거둔다. 영화는 이런 주디 갈랜드의 마지막 런던 콘서트를 담는다. 단 5주 간의 여정이었지만 인생 전반에 걸치며 안고 살아온 내면의 불안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관객은 보는 내내 주디의 복잡다단한 인생과 울적한 감정에 동화돼 짙은 우울감에 빠진다.

"사실은 아픔을 가진 비운의 스타였다"라는 단순한 텍스트가 아닌, 고통스러워하는 주디의 모습을 마주하는 건 꽤나 힘든 일이었다. 극중 MGM 창업자 루이스 B 메이어(리처드 코더리)는 끊임없이 주디를 압박하는데, 교묘해서 더욱 아프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면서도 "하지만 너에겐 목소리가 있어. 네가 선택해. 이 스튜디오를 나가서 평범한 삶을 누릴지, 이 곳에서 계속 노래를 할지"라고 다그친다.

외부에서는 주디를 칭송하기에 바쁜데, 소녀를 탄생시킨 사람은 능력을 폄하할 뿐이다.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심리와 상황을 조작해 스스로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고 지배력을 내어주는 행위)이다. 이렇다 보니 주디는 온전치 못한 성장을 거듭하고 억압 속에서 자신을 옥죄이기에 바쁘다. 매 순간이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그럼에도, 주디에겐 열망이 있었다. 무대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공포에 젖어 혼자의 힘으론 공연장에도 들어서지 못했던 그이지만 무대에 오르는 순간 완벽한 엔터테이너 주디 갈랜드가 된다. 무대를 거침없이 활보하고 혹사당한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의 무대 매너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이런 주디를 보며 공연 매니저 로잘린 와일더(제시 버클리)는 "자신도 어쩔 수가 없나 보죠"라고 말하며 웃는다. 좋아하는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보다는 무대 구경을 좋아했던 소녀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거닐 수 있던 순간이다.

다만 이렇게 해서 이룬 꿈과 열망을 진정한 행복이라 일컬을 수 있는지, 가치 실현이라 여길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전설이 되려면 외로워야 하고, 할퀴어진 영혼의 상처도 감안해야 하는 걸까. 이 가운데 주디는 일종의 투사였다. 망가질 대로 망가졌지만 그럼에도, 지켜야 했던 건 지키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그래서 주디 갈랜드의 인생을 두고 단순히 불행했다고 떠들며 함부로 연민할 수도, 재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의 곁에 좋은 사람이 있었다면, 나란히 걸어가 줄 어른이 있었다면, 도로시의 친구들이 그에게도 있었다면, 하는 아릿한 마음이 새겨진다.

주디는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르는 관객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외친다. "나를 잊지 않을 거죠?" 주디 갈랜드는 양철 나무꾼, 허수아비와 같은 친구들과 자유롭게 하늘을 활보하는 파랑새로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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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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