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월 이야기'…기적에도 시작은 있다 [이승록의 나침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이름이 뭐였죠?"

이름을 묻는다는 건, 모든 '관계의 시작'일텐데. 그 이름을 되물으며 재차 확인한다는 건, 당신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는 '기억의 시작'일 것이다.

따라서 수줍은 대학생 우즈키(마츠 다카코)가 낚시 동아리 회장의 이름을 그때까지 외우지 못했던 건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 없는 관계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반면 우즈키가 비를 뚫고 '그 선배'의 서점으로 되돌아가 '그 선배'가 직접 알려준 적도 없는 이름을 먼저 외치며 "야마자키 선배! 우산 하나 빌릴 수 있을까요?"라고 숨가빠 했던 건, 오래도록 혼자 간직해 온 '기억의 소중함'이었다.

이와이 ??지 감독이 1998년 만든 영화 '4월 이야기'는 20년 넘게 지났으나, 지금까지도 매년 4월의 시작과 매해 봄의 출발을 떠올리게 해주는 수작이다.

한 시간을 겨우 넘어서는 짧은 영화임에도, 그 안에는 어떤 시작이 주는 설렘과 긴장, 두렵지만 두근거리는 감정의 기운이 벚꽃처럼 만개한다.

그녀가 용기를 내기로 한 이유.

부모를 떠나 도시에서 맞이한 첫 독립은 우즈키에게 어딘가 어설프고 어찌할 바 모를 정도로 낯설 뿐이다.

하지만 작은 방 안에 쌓인 온갖 짐들이 차곡차곡 정리되며 서서히 '나의 공간'은 만들어지고, 경계심 가득한 이웃의 초인종을 눌러 카레를 같이 나눠먹자고, 거절을 무릅쓴 채 말을 건넸을 때 우즈키만의 '나의 공간'은 한 단계 확장될 수 있었다.

처음 들어선 대학에선, 낯선 이들 앞에서 홋카이도 출신이라고 소개한 뒤 벚꽃색 스웨터를 놀림 받지만, 그 스웨터를 슬쩍 벗더라도 허리춤에 단단히 여민 것처럼, 우즈키는 왠지 이상한 의도로 접근해 온 루미와도 친구가 되고 관심이 없는 낚시 동아리도 탈퇴하지 않고 머무르며, 설레지만 두려운 시작을 피하지 않고 맞닥뜨려 성숙해지기로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우즈키가 이루고자 한 기적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선 '성숙한 용기'가 필요했음을 알고 있어서였다.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 기적'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러나 기적에도 시작은 있는 것이다.

늘 자신의 속내는 숨긴 채 "괜찮아요"라고만 말하고, 고등학생 시절 끝내 고백하지도 못했지만, 우즈키에게 '용기'를 쥐어준 사람. 홀로 동경해 온 선배를 만나기 위해 무턱대고 대학 진학을 결심할 정도로 우즈키 안에서 커져나간 순정의 '열기'가 바로 기적의 시작이었다.

영화는 단지 4월의 이야기만 보여줄 뿐 그 이후 어떤 5월과 6월, 또 어떤 9월과 12월이 찾아왔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우즈키의 '열기'가 끝내 어떤 꽃을 피워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만 '4월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기적을 시작해보라고 부추긴다.

"성적이 안 좋은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기적이라고 하셨다. 어차피 기적이라고 부른다면, 난 그걸 사랑의 기적이라 부르고 싶다."

누군가의 이름을 묻고, 그 이름을 외우고, 그 사람의 기억이 우즈키의 말처럼 '내 마음 속의 벽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그림처럼 남아있는 것'. 그게 사랑이고, 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우리 모두가 '기적의 신입생'이라고,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웃는 우즈키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 영화 '4월 이야기' 포스터, 스틸]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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