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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린, '유리가면'을 쓰고 배우가 된 여자 [이승록의 나침반]
20-03-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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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내가 욕심 가진다고 해도 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류혜린은 '이름'보다는, '얼굴'과 '캐릭터' 그리고 '연기'가 대중에 더 잘 알려진 배우다.

영화 '써니'의 쟁반대가리였고, '족구왕'에선 고학번 선배 형국(박호산)의 전 여자친구이자 교정기 낀 고운이었으며, '김과장'에선 피라루쿠로 주목 받은 빙희진이었다. '더 게임: 0시를 향하여'에선 태평(옥택연)의 비서 겸 변호사 이연화였다.

모두 '류혜린'이다.

이 모든 것들을 연기한 류혜린을 만나 대화를 나눈 후, 사실 류혜린은 특별한 '가면'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매우 정밀하고 섬세하되 무척이나 단단해서 그 뒤의 진짜 얼굴을 섣불리 예상도 못할 그런 '가면'이었다.

"이연화란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했냐고요? 그건 제 비밀이에요, 하하. 실은 왜 연화가 하필이면 태평 옆에 남아 있었을까 생각했죠. 태평도 분명 연화의 죽음을 봤을 텐데 말이에요. 하지만 어쩌면 태평이 본 연화의 마지막은 편안한 죽음이었으니까, 아마 그래서 옆에 남겨둔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류혜린이 연기해 온 캐릭터들과 실제로 눈 앞에 있는 류혜린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처럼 느껴졌다.

작품에서 본 것처럼 발랄하거나 엉뚱하지도 않았고, 저돌적으로 아무 말이나 늘어놓지도 않았다. 차분한 베이지 재킷 차림으로 앉아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대답했다. 생각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도 하듯 적당한 표현을 고르느라 잠시 대답에 호흡을 두기도 했다. 사려 깊었고 온화했다.

"어릴 때 '유리가면'을 보고 처음 배우가 되고 싶어졌어요. '유리가면'에서 소심하고 가난한 데다가 남들 앞에 서면 늘 숨던 주인공이 연기를 하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더라고요. 전 그 만화책을 보고 연극을 처음 알았던 거예요. 그 후 고등학교 때 연극부에 들어가면서 연기에 빠져들게 되었어요."



그곳에 류혜린이 있었다.

스무 살 때부터 연극 무대에서 쌓은 연기력 덕분에 류혜린은 맡은 배역마다 매끄럽게 연기해내며 작아도 분명한 존재감을 남겼다. 어떤 대사든 류혜린의 입을 거치는 순간 또렷한 발음과 발성으로 전달되며, 마치 '이곳에 류혜린이 있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들렸다. 정작 류혜린은 발성이든 발음이든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연기에 대한 '의지'"라고 했지만 말이다.

"배우가 제 업(業)이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이 성격에, 이 외모에 안될 거야'라고 생각했죠. 한번은 제가 출연한 작품을 보고 연락을 주셔서 미팅을 갔는데, 생각하셨던 거랑 제가 다른 느낌이라 '부끄러워하는거냐'며 혼났던 적도 있어요. TV 드라마로 넘어오면서는 카메라 울렁증도 있었고요. 어디를 쳐다봐야 하는지 아무도 안 가르쳐줬거든요."

하지만 연기를 향한 '의지'는 스스로를 믿는 순간 비로소 류혜린의 안에서 발현됐다.

제주도에서 겪었던 오토바이 사고가 일종의 계기였다. 맡은 신을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오토바이 연습을 하다 사고가 났는데, 골반이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었고 작품에서도 하차했다.

"그때 느꼈어요. 내가 너무 잘하려고 '욕심부린 것들'을 많이 내려놔야겠다고요. 인생은 정말 알 수 없구나 싶었죠.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이 있구나. 그런 것에 매달려서 나 자신을 의심하지 말자. 내 탓으로 돌리려고 하지 말자.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내가 욕심 가진다고 해도 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의지'는 외부가 아닌 내면에 있었던 것이다.

류혜린은 그런 의지를 품고 묵묵히 앞으로 걸어가며 주어진 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지나간 과거를 곱씹지도, 알 수 없는 미래를 불안해하지도 않기로 한 것이다. 그저 스스로를 신뢰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연기를 해나갔다. 무대 위에서, 카메라 앞에서 쓸 '유리 가면'을 차분하고 신중하게 만들면서 말이다.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던 순간이었어요. 어떤 초인적인 힘이 느껴졌어요. 너무나도 떨렸는데, 무대에 나간 순간 저절로 연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내가 목소리가 굉장히 큰 아이구나' 하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어렸을 때는 한번도 내본 적 없는 목소리였거든요."



가면을 벗은 류혜린이 앞에 앉아 있다.

쟁반대가리보다 차분하게, 빙희진보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연화보다 부드럽게 웃으면서. 이 순간, 류혜린이 앞으로 또 어떤 가면을 만들지는 나도 모르고 류혜린도 알 수 없다.

다만 류혜린은 가면을 만든다. 그저 묵묵히 언제든 찾아올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매우 정밀하고 섬세하되 무척이나 단단해서 결코 깨지지 않을 가면을 만든다.

[사진 = 네오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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