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음악 경계 허문 루시드폴 "매개체는 반려견 보현,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MD인터뷰](종합)

[마이데일리 = 양유진 기자]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은 2014년 제주에 새 터전을 마련하고 인생 2막을 열었다. 이른 새벽 밭으로 향하는 '농부'의 삶, 하루에 두 번 반려견 보현과 산책하는 '반려인'의 삶을 살면서도, 해가 뜨면 온전히 음악에 몰두한다. 2년에 한 번씩 앨범 발매를 규칙 삼고 스스로를 채찍질할 만큼 루시드폴에게 음악은 삶의 일부분이 됐다.

포토 에세이를 겸한 정규 9집 '너와 나' 발매를 앞두고 서울 강남구 안테나에서 만난 루시드폴은 "365일 음악 프로세스가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12월에 음반이 나오면 한두 달 정도는 쉬겠지만 계속 다른 음악도 듣고, 악기를 사서 곡도 익히고, 외부에 출장 나가서 자료도 가지고 오면 1년이 훌쩍 가요. 오히려 시간이 모자라죠."

루시드폴은 16일 오후 발매되는 '너와 나'로 2년 만에 복귀한다. 앨범에는 1998년 데뷔 이래 가장 파격적인 시도가 담겼다. "보현이 내는 소리와 리듬으로 트랙을 채웠다"는 것. 소리 파형을 추출, 변주하는 과정을 거쳐 '쿵쿵', '탁탁' 등 보현이 문을 긁는 소리, 그릇 두드리는 소리가 어우러졌다.

"사진으로는 모습을 기록할 수 있겠지만 소리를 채집해서 여러 방식으로 기록해내면 마치 소리의 DNA를 뽑아서 영원히 남겨 놓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반려동물이 감상하기 위한 존재로만 있는 게 아니라 반려동물과 같은 위치에서 작품을 만든다는 의미예요."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부침도 겪었다. 다소 실험적인 시도가 통할지 미지수였을 뿐더러 굳어진 틀을 깨기 쉽지 않았을 터. 이에 루시드폴은 "'이게 진짜 음반이 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진행했다"고 털어놨다. 처음 접하는 스타일에 회의감도 느꼈지만, 여름 무렵 확신이 들었다고. "화가로 치면 먹 하나로 평생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주황색도 쓰고 싶고, 레몬색도 쓰고 싶은 것처럼 내 팔레트 위에 있는 색깔을 늘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농사를 짓다 손가락을 크게 다쳐 수술이 불가피했지만 이는 되려 기회가 됐다. 기타를 잡는 것조차 벅찼던 루시드폴은 "겁도 났던 시기"를 보냈다. 그간 어쿠스틱 악기로 음악을 구성했기 때문에 변화를 꾀해야 했다. 그러나 시야를 열고 음악에 다가가니 그제서야 소리의 정의에서 해방됐다. 이후 테일러 뒤프리의 엠비언트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루시드폴은 작업실 '고요연구소'에서 실험 노트를 써 내려갔다. 그는 "자아를 흐트러뜨리려면 기타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 그러면서 평소에 듣지 않던 음악을 찾아서 듣다 보니 엠비언트에 관심이 생겼다"고 밝혔다.

선공개곡 '콜라비 콘체르토'는 앨범을 관통하는 핵심 트랙이다. 소리와 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곡은 보현이 콜라비 씹는 소리를 채집해서 템포와 음의 높낮이에 변주를 줬다. 덕분에 협주만큼 풍성한 사운드가 탄생됐다. 루시드폴은 "보현이 채소를 먹을 때 굉장히 다양한 소리가 난다. 단단한 채소를 먹는 소리는 굉장히 음악적으로 들린다"고 했다. "보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게 됐어요."

안테나 식구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듣는 재미까지 더했다. SBS 서바이벌 'K팝스타' 시즌5에서 우승한 차이(CHAI)가 가창한 '두근두근'에는 그루비한 리듬과 키보드 사운드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정승환의 보컬에 루시드폴의 코러스가 가미된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도 눈여겨볼 만하다. 해석자 정승환이 눈밭을 달리는 벅찬 보현의 마음을 대변했다. "이 눈 속을 너와 달리다 보면 하늘을 날고 있는 것만 같아 좋아/너와 함께라면 정말 어디라도 좋아/우린 언제까지나 같은 마음으로 함께 있을 거야/마지막 캐롤 소리 들리는 날까지 함께 놀자" 등 반려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뭉클한 노랫말과 경쾌한 멜로디는 중독적인 겨울 시즌송의 탄생을 알린다.

마지막으로 루시드폴에게 음악을 어떻게 들으면 좋겠냐고 묻자 "1번부터 끝까지 쭉 들어주면 좋겠다"는 시원한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엔 콘텐츠가 너무 많아요. 누가 그런 표현을 쓰더라고요. '사탕 가게에 들어간 아이들 같다'고요. 뭐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는 거죠. 히든트랙까지 13곡인데 여유 있게 들어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시면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참 고마울 것 같아요."

한편 루시드폴은 오는 28~2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 콘서트홀에서 9집 발매 공연 '눈 오는 날의 동화'를 연다.

[사진 = 안테나 제공]

양유진 기자 youjinya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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