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버티고 살았다"…'아침마당' 이경애, 눈물로 전한 인생사+사모곡 [종합]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이경애가 가슴 아픈 인생사를 전했다.

22일 오전 방송된 KBS 1TV ‘아침마당’ 코너 ‘화요초대석’에 이경애가 출연했다.

이날 이경애는 “속 심지부터 단단하게 올라오는 힘을 드리고자 오늘 나왔다”며 “어떤 분들은 ‘힘들었던 이야기 좀 그만해. 가슴 아파’라고 그러신다. 그럼 ‘못 들으신 분들 위해서 끝까지 이야기할 거예요’라고 하는 이유가 요즘 젊은 사람들 너무 힘들지 않나. 그리고 SNS 등 많은 공격들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연을 할 때 그런 의무감을 가지고 한다”고 밝혔다.

“어릴 때 사람들한테 상처를 진짜 많이 받았다. 첫째가 부모, 둘째가 우리 부모의 형제들, 셋째는 제가 속해있는 일하는 곳에서. 모든 사람한테 상처를 진짜 많이 받았다”는 이경애.

그는 “제가 중학교를 못 가고 6학년 때 졸업하고 나서 1년을 공장에 다닌 적이 있었다. 한 달에 6천원을 받기로 하고 갔다. 남자 동생을 데리고 같이 공장에 가서 심부름 하는 거였다. 애가 너무 울어서 15일 만에 그만두고 나왔다. 보름치를 줘야 하지 않나. 그런데 안 줬다. 그때 3천원이면 지금 나한테는 생명 같은 돈인데 어떻게 이 돈을 떼어먹을 수 있을까 충격이 되게 컸다”고 털어놨다.

이어 “엄마 도와주려고 제가 학용품을 못 사니 알바를 다녔다. 수세미, 커피 이런 걸 받아서 팔면 천원에 팔면 3백원을 줬다. 그걸 청량리 근처에서 받아서 집까지 걸어가면서 팔았다. 그런데 아파트에서 걸렸다. 잡상인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는데 그냥 들어갔다. 4층에서 체포가 됐다. 경비하시는 분에게 목이 끌려갔다. 물건도 다 뺏겼다. 그 당시 제가 조그마했다. 그 어른이 애를 개 끌듯이 끌고 갔다. 그때 끌려가면서 ‘내가 왜 끌려가야되지?’ 그런 게 있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경애는 “그때 어른들의 그 무자비함. 손을 들고 4시간을 벌을 섰다. 집에 가라고 해서 오는데 너무 억울했다. 동생이랑 둘이 오면서 ‘우리가 여기서 지면 우리 인생은 없어’라고 이야기했다”며 “그때 여자 동생한테 나중에 성공해서 잘 돼서 이 이야기를 추억 삼아 이야기하자 얘기했던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이런 이경애는 셋째 딸. 그는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셨다. 4학년 때 엄마가 알뜰히 살아 개인 주택을 산 걸 아버지가 놀음으로 집을 날렸다. 그때 아버지 월급이 다 차압되고, 단칸방 5만원짜리 월세를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촬영차 다시 가본 집은 주차장에서 차 한 대를 댈 수 있는 정도였다고.

그는 “그때는 그것도 감사했다. 절 남의 집에 보내려는 걸 잠결에 들었다. 그때 안 보내고 키워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경애는 자신의 삶이 어머니를 위했던 삶과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신을 위한 삶으로 나뉜다고 말했다.

이경애는 “저희 어머니는 외모가 작으셨다. 키가 150cm 정도밖에 안 되셨다. 늘 머리 위에는 (팔 것들을) 이고 계셨다”며 “나중에 돌아가실 때 다 됐을 때는 목부터 척추까지 다 눌려서 달라붙었다”고 말해 먹먹함을 자아냈다. 이런 어머니를 위해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는 가슴 아픈 순간에 대해서도 고백했다. 어머니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 어머니를 끌어내리며 “제발 살아달라. 내가 나중에 호강시켜줄 테니 살아달라”고 부탁했다는 이경애.

이어 “우리 셋이 엄마 없으면 너무 힘든 삶이니 차라리 같이 가자고 내가 이야기를 했다”며 “엄마가 절 때리면서 포기를 하더라. 차마 자식 셋을 어떻게 못 하고 살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 뒤로도 어머니가 총 5번을 목숨을 버리려 했다고.

이경애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견뎌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하며 “어느 순간 보면 ‘그때 그거 별거 아니었네’ 한다. 저희 엄마도 그러셨다. 저한테 ‘고맙다. 지금 지나 보니까 별거 아니야. 다 지나가네’ 그렇게 이야기하셨다”고 말했다.

이경애는 아버지를 이해한다고도 했다. “아빠를 미워한 건 개그맨 될 때까지”라고 밝힌 이경애는 “지금 나이 들어서 보니까 다 이해가 된다”고 밝혔다.

그는 “아버지가 해외에 사는 걸 많이 하셨다. 배 타고 다니면서. 그러다 가정을 이뤄 집안에 갇혀 있으니까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그런데 이 삶을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술을 많이 드신 것 같다. 그리고 일본 같은 데 가면 슬롯머신이 많이 있을 때였다. 경험을 해봤을 거 아니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니까 경험 삼아 했다가 걸려들어서 집이 날아간 것”이라며 “지금 생각하면 우리 아빠가 참 갑갑했겠구나 싶다”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불과 열흘 차이로 부모님 두 분을 모두 떠나보냈다. 이경애는 “그때 힘들었다. 한 달에 1억씩도 벌어드렸는데 아버지가 주식 투자를 하셨다. 지금 없어진 은행에 주식을 몰빵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과상자에 흰 종이만 빽빽하게 있었다. 그걸 저한테 ‘미안하다. 은행은 원래 부도라는 게 없는데’ 이러면서 넘겨줬다. 몇 년 힘들게 번 걸 다 날렸다. 아버지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상처가 됐었나 보다. 약을 많이 드시고 하더니 얼마 있다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간으로 와서 간경화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경애는 “그때 제 인생을 사실 접었다. 자식으로서 엄마를 위해서 산다고 생각한 삶의 종지부가 찍혔다. 전화를 아침에 할 사람이 없었다. 뭘 먹어도 왜 먹는지 이유도 없었다. 엄마를 향해서 살려고 했던 인생이 끝나니까 내 인생이 없더라. 방황도 참 많이 했다. 술 먹고 인생을 끝내볼까 계획도 세워보고 저질러 보려고 노력도 했다. 결론은 잘 버티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별거 아니었더라. 그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부모님이 가시고부터 20년 됐는데 너무 후딱 가서 ‘별거 아니었네 20년. 그때 내가 잘못 선택하지 않아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지금 어려운 일 있어도 별거 아니다. 금방 지나가더라”라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를 전했다.

[사진 = KBS 1TV 방송 캡처]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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