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기생충’, 계급추락의 공포[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봉준호 감독은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컨퍼런스에서 “‘기생충’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두 영화에서 외부 침입자는 중산층 또는 상류층 가정의 행복을 산산조각 낸다. 하녀(이은심)와 기택(송강호) 가족은 신분 또는 계급 상승의 욕망을 품고 타인의 집에 들어왔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한가. 그들을 기다린 것은 아찔한 하강이다. 한국사회에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방직공장 음악 교사 동식(김진규)은 아내 정심(주증녀)이 친정에 간 사이 하녀(이은심)와 관계를 맺는다. 하녀가 임신하자 가정은 파탄에 빠진다. 정심은 하녀를 설득해 낙태를 시키고, 하녀는 복수를 위해 아들(안성기)에게 쥐약을 먹인다. 아들이 쥐약을 먹고 계단으로 굴러 떨어져 죽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러나 정심은 눈 앞에서 아들이 죽었는데도, 하녀에게 복수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내린다.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남편과 하녀의 불륜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면, 남편이 해고 당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앞섰다. 남편이 직장에서 쫓겨나면, 먹고 살 일이 막막해져 다리가 불편한 딸을 포함한 세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따라서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하녀와 불편한 동거를 계속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 정심은 아들의 복수를 위해 살인자를 처벌하는 것보다 계급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돈(계급)은 피보다 진하다.

이 판단은 거의 ‘본능’에 가까워 보인다. 죽은 아들을 끌어안은 정심은 계단 위에 군림하고 있는 하녀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지 않는다. 그에겐 아들에 대한 복수보다 ‘생존’이 더 중요했다. ‘일단 계급을 유지하고 살아남자, 복수는 훗날에 도모하자’는게 정심의 생각이다. 하루 종일 재봉틀을 돌리며 한 푼 두 푼 모아 겨우 이층집을 마련해 상층부로 올라왔는데, 어떻게 밑바닥 하층부로 떨어질 수 있겠는가.

1960년 ‘계급추락의 공포’는 2019년 ‘기생충’에서 다시 한번 반복된다. 백수 기택(송강호) 가족은 위장취업으로 동익(이선균) 집에 들어가는데 성공한다. 아버지 기택은 운전기사, 어머니 충숙(장혜진)은 가정부, 아들 기우(최우식)는 과외선생, 딸 기정(박소담)은 미술선생으로 동익 집에서 살아간다(충숙이라는 이름은 ‘기생충’의 충 자에서 따왔겠지만, 김기영 감독의 ‘충녀’에서도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평범한 중산층에서 사업실패로 밑바닥까지 떨어진 기택 가족에게 계급 상승은 지상과제다. 추락은 한번으로 족하다. 지하남 근세(박명훈)의 부인이자 전 가정부 문광(이정은)이 “같은 불우이웃끼리”라면서 계급적 연대를 요청했을 때, 충숙은 단칼에 거절한다. 어떻게 보면 ‘기생충’은 ‘계급추락의 공포’를 경험한 기택 가족이 두 번 다시 하층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물론 그들의 분투는 실패로 끝난다.

1960년과 2019년은 다른 세상인가. 계급상승의 열망은 여전히 강렬하고, 추락에 대한 두려움 역시 갈수록 공포스럽다. 밑바닥에 떨어지면 다시 올라가기 힘들다. 59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한국인에게 내재된 하강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1997년 IMF 이후 세대간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불안 DNA는 한국사회에 깊숙하게 박혔다. ‘하녀’와 ‘기생충’을 함께 감상하면, 계급추락의 공포가 한국인을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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