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조커’, 인간에 대한 예의[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조커’의 토드 필립스 감독은 최근 한국 기자단과 화상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고 싶다”고 했다. 만약 그가 ‘기생충’을 봤다면 두 영화가 양극화의 비슷한 배경을 다룬 사실을 알면 동서양의 경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걸 알게될 것이다. 지난 5월 칸에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지난 9월 베니스에서 ‘조커’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상은 양극화에 대한 불만으로 폭발 직전이다.

‘기생충’은, ‘설국열차’ ‘플란다스의 개’ 등 봉준호 감독 작품이 대개 그러하듯, 계급영화다. 동익(이선균), 기택(송강호), 근세(박명훈)의 계급구조는 견고하다. 여기서 신분상승을 꿈꾸는 인물은 기택인데, ‘선을 넘지 말라’는 동익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 선은 넘기 힘들다. 상층민은 하층민을 ‘냄새’로 구별하며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게 보호막을 친다. 하층민에게 냄새는 곧 모멸감이다.

동익에게 기택은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운전기사일 뿐이다. 그의 회사명이 ‘어나더 브릭(Another Brick)’인 데서 짐작할 수 있듯, 그에게 하층민은 마음 내키는대로 갈아치을 수 있는 벽돌에 불과하다. 타인을 인품이 아니라 냄새로 구분하는 그의 인간관은 결국 파국을 초래한다. ‘정서적인 원자폭탄’으로 불리는 모멸감이 쌓여갈 때, 하층민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지 ‘기생충’은 비극으로 보여준다.

‘조커’의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청소년에게, 지하철의 직장인에게, 동료들에게 무시 당한다. 이들 뿐이랴. 사회복지사마저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다. 존경하는 코미디언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 니로)은 그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기생충’의 동익을 포함해, 이들에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 어머니는 아서 플렉을 ‘해피’라고 부른다. 웃음으로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던 아서 플렉은 사회적 냉대 속에 점차 조커로 변해간다.

아무도 아서 플렉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았다. 단 한명의 동료가 그의 삶을 이해했다. 조커는 “네가 나를 가장 잘 대해줬어”라고 말한다. 그는 살아남았다.

‘기생충’의 냄새든, ‘조커’의 질환(그는 자주 웃는 증상이 있다)이든 약자를 보듬어주지 못하는 사회는 병들기 쉽다. 양극화는 계급구조를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도 앗아갔다. ‘기생충’과 ‘조커’는 예의 없는 사회가 불러오는 비극을 아프게 성찰하는 작품이다.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워너브러더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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