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태규 "산업재해 민낯 그린 '닥터탐정'…이 드라마는 달랐다" [MD인터뷰](종합)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배우 봉태규에게 '닥터탐정'은 특별했다.

봉태규는 10일 오전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최근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닥터탐정'(극본 송윤희 연출 박준우) 종영 기념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해 드라마 비화를 비롯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5일 막을 내린 '닥터탐정'은 산업현장의 사회 부조리를 통쾌하게 해결하는 직업환경전문의들의 활약을 담은 사회고발 메디컬 수사극.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연출해왔던 박준우 PD와 산업의학전문의 출신 송윤희 작가가 의기투합해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는 기대에 부응하며 의미 있는 사회고발극을 탄생시켰다.

이 가운데, 도중은 역의 박진희와 빼어난 콤비 호흡을 선보인 봉태규는 UDC(미확진 질환센터) 직원이자 '날라리' 천재 의사 허민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는 불량한 겉모습과 달리 따뜻한 감성으로 사회 부조리에 맞서는 캐릭터의 다채로운 면모를 유연하게 펼쳐내며 드라마의 울림을 더했다.

이날 취재진과 만난 봉태규는 "허민기는 처음에 '날라리'라는 설정밖에 없었다. 작가님이 실제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시다. 그 분이 봐왔던 '날라리'가 제가 생각한 것과 차이가 있더라. 저는 일단 체면을 없애는 것에 중점을 뒀다. 사회적으로 의사가 가진 위치가 있지 않나. 권위적이거나. 저는 그런 체면을 없애고 허민기는 의사라는 직업을 빼고 캐릭터를 설정했다"라며 "재벌을 만나든, 누구를 만나든 똑같은 태도를 취하는 거다. 그 톤을 유지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애드리브를 즉흥적으로 한 적은 없고 대본이 나오면 감독님과 준비를 많이 했다. 많은 부분을 저에게 맡겨주셨다"라고 캐릭터를 위한 노력을 전했다.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코믹은 물론, 감정의 진폭을 크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극중 메탄올 때문에 눈이 먼 피해자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감정을 터뜨렸죠. 우리 드라마가 나아가야하는 방향이었어요. 그런 문제는 기사화가 잘 되지 않거든요. 그런 일에 있어서 분노하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리얼하게 보여드리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감정을 폭발시켰어요."

이러한 노력에도 시청률에 있어서는 3.4%, 3.9%(닐슨코리아 전국가구 기준/이하 동일)라는 아쉬운 기록으로 퇴장했지만, '닥터탐정'은 단순한 수치로만 평가할 수 없는 수작이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건, 메탄올 중독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실제 사건들을 에피소드로 선보이며 결코 잊어서도, 반복되어서도 안 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남겼다. 더불어 매주 에필로그를 통해 실제 피해자들의 아픔을 재조명, 진심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위로했다.

이에 봉태규는 "초반에는 (시청률이) 나쁘지 않았는데 중간에 선택의 기로가 있었다. 보통 사건이 발생하면 중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해결하지 않나. 저희가 선택한 건, 피해자 위주였다. 주요 캐릭터들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행동을 좇는 장치로 머문다. 저희도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익숙하지 않았다. 피해자 이야기로 가다 보면 상업적인 재미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라면서도 "그래도 우리 작품이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한번쯤은 드라마적인 장치로 피해자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중심이 되고 그 주인공들이 장치로 사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진심이 좋았다. 저희 모든 배우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동의를 해줘서 보람됐다"라고 진심을 꺼내놓았다.

"극중 하랑이 엄마가 아들의 일을 계기로 투사가 되어 싸우고, 박진희 누나가 그 옆을 지켜주는 걸로 끝이 나요. 눈물이 나더라고요. 사실 상업적인 걸 표방하는 드라마면 그 장면에서 더 속 시원한 걸 보여주겠지만 저희는 굉장히 사실적으로 끝났어요. 이 드라마는 달랐어요. 공중파 방송에서 이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그려내는 드라마가 있을까요? 나중에 제 아이들과 이 이야기를 한다면 굉장히 자랑스러울 것 같아요. 굉장히 뿌듯했고 의미 있는 작품이었어요."

무엇보다 제작진의 섬세함은 기획 단계부터 엿볼 수 있었다. 단순 사건 나열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아닌, 은폐된 산업 재해를 밝혀내는 UDC(미확진 질환센터)라는 가상의 센터를 세우며 근본적인 원인을 추적해 사회의 책임을 상기시켰다. 사고 역시 리얼하게 묘사해내며 경각심을 일깨웠다.

봉태규는 "감독님이 다큐멘터리를 하셨던 분이다. 산업재해, 용산참사 현장에서도 취재를 하셨다. 실제 그 분들을 만나면 감정의 기승전결이 없다더라. 항상 감정이 어느 정도 수위 위에 올라와있다. 얼마나 더 터뜨리느냐 혹은 덜 보이느냐의 차이라고 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많은 걸 보여드리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촬영 현장이 녹록치 않았고 정말 다 쥐어짜내서 찍었어요. 촬영 허가 시간도 굉장히 짧았고요. 스크린도어 사고 에피소드는 날릴 수도 있었어요. 장소 협조가 쉽지 않았거든요. 모두들 지하철 사건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기관으로 들어가서 저희 대본을 보여주면 모두 거절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국을 다 다녔어요. 어떻게 이 작품을 완성했는지 지켜봤기 때문에 다른 작품과는 달리 사명감이 느껴져요. 나와 함께 하는 동료가 얼마나 애썼는지를 지켜보게 됐죠. 제작진보다는 같은 동료였어요. 이렇게 밀착해서 본 건 처음이에요."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한 박진희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앞서 드라마 '리턴'에서 만난 두 사람이지만 맞붙는 장면이 적었고, 봉태규는 "스쳐지나갔던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이번 재회는 더욱 반가웠다. 그는 "너무 성실하고,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는 배우다. 그럼 제가 한 눈을 팔 거나 할 수 없다. 상대 배우가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하지 않는 제가 확 티가 난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제게 작용됐다. 워낙 배려를 잘해주신다"라고 신뢰를 드러냈다.

"저희 드라마는 굉장히 드물게 여자 배우가 1번 메인에 있어요. (박)진희 누나는 주인공이 보여줘야 하는 정말 좋은 태도를 보여주셨어요.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에 늘 열려있어요. 좋은 게 있다면 자신의 대사를 덜어내면서도 다른 배우에게 양보했죠. 제게 큰 자산으로 남았어요."

지난 2001년 임상수 감독의 영화 '눈물'로 데뷔, 개성 있는 외모와 생활 밀착형 연기로 이목을 끈 봉태규는 시트콤 '논스톱4'로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에 출연하며 맹활약했다. 이후 '썬데이 서울', '방과후 옥상', '가족의 탄생', '두 얼굴의 여친' 등으로 스크린에서 종횡무진했다. 지난해에는 드라마 '리턴'으로 역대급 악역 연기를 선보이며 흥행을 견인, 배우 봉태규의 진가를 재입증했다.

'리턴'은 봉태규에게 수많은 찬사를 안겼지만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탓에 부담감으로 남기도 했다. 봉태규는 "처음에는 부담감이 있었다. 그래서 과거 신동엽 형이 해준 말을 떠올렸다. 당시 제가 고민이 많았을 때였는데, 형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너에게 관심이 없다'라고 하시더라. 그런데 정말 관심이 없더라. 제게 굉장히 와닿았다. 이번에도 그렇다. 굉장히 예민하게 선택하고 여러 작품을 거절하기도 했다. 사실 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봉태규는 '리턴'이다'라고 할까. 별로 관심 없는 것 같다. 굳이 나 혼자 이럴 필요가 있나 싶어서 많은 걸 내려놨다"라고 너스레를 떨어 폭소케 했다.

"(아내) 하시시박 작가님은 좋아했어요. '리턴' 때 김학범 캐릭터한테는 '쓰레기'라고 했었는데.(웃음) 이번 캐릭터는 어쨌든 의사잖아요. 그래서 저의 생경한 모습 보는 걸 좋아했어요. 그리고 배우 봉태규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자연인 봉태규로서도 의미 있는 작품이 된 것 같다고 굉장히 뿌듯해했죠. 장모님, 장인어른도 좋아해주셨어요. 이번 작품은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이지니까요. 내용도 의미가 있어서 굉장히 좋아하셨죠."

올해로 데뷔 20주년. 봉태규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봉태규는 "슬펐다"라는 의외의 답변을 내놔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리턴'까지만 해도 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을 안 했는데, 이번엔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끝나자마자 운동부터 시작했다. 내년이 마흔이다. 하루하루가 다르다"라고 말했다.

이어 "데뷔 20주년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느끼는 건 없다. 한 직업을 20년씩이나 할 수 있다는 것에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 어쨌든 저는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지 않나. 다행히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같은 직업을 20년 간 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더 성실하게 일을 해야겠구나 싶더라. 사실 제가 생각보다 현장에서 살가운 스타일이 아니다. 연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다. 이제는 여유롭게, 살갑게 대하고 잘해야겠다. 나이가 들었나보다. 오래 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더 크다"라고 덧붙였다.

"제가 데뷔 당시 인터뷰에서 '배우는 취미로 한다'라고 했었어요. 직업이라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거 같아서 재밌게 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배우라는 게 내 직업이라고 완벽히 인지 중이다. 마음가짐이 달라진 거 같아요. 영화도 이제 해야죠. 이야기하고 있는 게 있어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을 거예요."

마지막까지 봉태규는 '닥터탐정'이 가진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우리 모두가 노동자다. 일을 하다가 누가 죽고 이러한 사건들을 쉽게 지나가는 것 같다. 이런 일이 당연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을 해주시면 좋겠다. 특수한 경우가 맞물리지 않으면 기사가 굉장히 작게 나는데,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저희 드라마에서 다룬 사건들도 다 얼마 되지 않았다"라며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사진 = iMe KOREA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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