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의 축제이야기 39]함양 연암 문화제, 조선시대 문화혁신 기운 품은 알토란 잔치

학문하는 사람의 도리를 강조한 선각자 연암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조선 시대 진보적 인사이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문사(文士)였다. 할아버지 박필균은 정2품 지돈녕부사까지 지낸 인물로 무척 청렴했다고 전해진다. 박지원의 할아버지 박필균은 슬하에 3남1녀를 두었는데 박지원의 아버지 박사유가 장남이다. 박지원의 아버지는 벼슬을 하지 않아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웠다. 청렴한 할아버지와 백면서생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박지원은 벼슬에 욕심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16세 때 이보천의 딸과 혼인을 했는데, 이보천은 세종의 별자(別子) 계양군의 후손이었다. 혼인을 한 후 장인의 동생인 이양천 밑에서 경학, 역사, 농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배웠다. 이익의 '경세치용' 사상에도 큰 감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이십대 이전에 실학의 실체를 굳혀간 게 아닌가 싶다. 조선 후기 박지원, 박제가 등 북학파를 중심으로 발현된 실학의 요체는 예의범절도 중요하지만 먹고 사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 당시 실학자들은 농민들이 잘살 수 있도록 토지 제도를 바로잡고, 과학적인 농사 기술을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나라가 발전하려면 상공업을 장려하고 우리 것에 대한 연구에 힘쓰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이 중심에 선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연암 박지원이다. 벼슬을 하기보다는 야인(野人)의 삶을 택했던 박지원은 과거에 뜻이 없었다. 그런데 1770년 벗들이 등을 떠밀어 재미 삼아 초시에 응시했다가 사마시 초장과 중장에서 모두 장원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 박지원은 조정에 들어갈 수 있는 회시에 응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을 어느 정도 시험해 본 그는 각박한 벼슬살이가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백동수, 이서구, 이덕무 등 절친과 함께 전국 팔도를 돌며 백성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 이때 박지원의 머릿속에는 온통 학문하는 사람의 도리, 그가 생각하는 학문하는 사람의 도리는 ‘가난한 백성을 구하는 것’ 그래서 나온 책들이 양반의 무위도식을 질타하는 <허생전> <양반전>등이다.

55세에 안의 현감으로 부임

학자에 따라서 의견은 분분하지만 정조는 연암 박지원을 무척 아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과거를 거치지 않은 박지원과 같은 음관(蔭官)이 홍문관 대제학 같은 직위를 맡을 수 없었음에도 기록에 의하면 정조는 문임(文任)을 주겠다는 제안한다. <열하일기>를 쓴 죗값으로 반성문을 쓰기만 한다면 이라는 조건은 붙었지만 파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정조의 신임을 얻고 있던 박지원이 경남 함양 안의 현감으로 부임한 때는 그의 나이 55세 때. 임금의 명령으로 마지못해 수락했던 자리였지만, 박지원은 기왕하는 거 잘 해보겠다 다짐하며 안의로 내려간다. 안의 현감으로 부임한 그는 제일 먼저 첩첩히 쌓인 투서를 불태운다. 그리고 전례를 들먹이지 말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줄 것을 천명한다.

쌓여있는 문서들을 꼼꼼히 다 확인하고, 관리들이 사사로인 쓴 곡식들을 다시 채우게 하고, 도둑의 뒤를 봐주는 관리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직접 장에 나가 그 도둑과 일당들을 잡기도 한다. 또 경상감사가 요청한 크고 작은 사건을 해결해주는데 무려 100건이 넘는다. 안의 현감으로 있으면서 한 관기(官妓)를 알게 되어 이름까지 지어주지만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박지원은 안의현감으로 재직하던 때인 1793년 <열녀 함양박씨전>을 집필한다. 열녀 함양박씨전은 열녀를 칭송하자는 소설이 아니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한 여인의 뼈저린 고독과 슬픔을 삽화를 곁들여 상세하게 담아 냄으로써 수절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완곡하게 폭로하고, 과부의 개가를 금지시킨 사회제도를 비판했다. 박지원이기에 가능했던 시대 비판, 어쩌면 안의 현감을 지냈기에 이뤄낸 성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연암 물레방아

연암 박지원을 젊은 시절 청나라에서 보고 온 문물 중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하는 것을 함양 안의에서 과감하게 재현해 내는데 대표적인 것이 물레방아다. 경상남도 함양은 기후가 좋아 쌀과 보리의 이모작이 가능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방앗간이 부족해 백성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청나라에서 봤던 물레방아를 제작한다. 물레방아 덕분에 농업생산성이 높아지자 그 다음에는 토호세력을 설득해 수리관개 시설을 보완한다. 그 덕분에 안의현의 민생은 차차 안정을 찾아갔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취하는 실학사상과 사람이 먼저인 민본 사상을 행정에 적용했던 연암 박지원. 노는 땅이 아깝다 생각해 안의백성과 힘을 합해 과수원을 만들고 능력과 재주가 있는 사람이면 양반과 상민을 차별하지 않고 기꺼이 함께했던 진정한 목민관. 연암 박지원이 안의현감으로 재직한 시기는 불과 5년 남짓이지만 그가 남긴 문화적 자산은 오늘까지 이어져 경남 함양의 <연암문화제>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올해 벌써 16회를 맞는 함양 연암 문화제

올 해로 16회째를 맞는 함양 연암문화제는 안의현감으로 봉직하면서 애민사상과 실학정신을구현한 연암 박지원의 애민사상과 실학 정신을 재조명하는 잔치다. 더불어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이 <연암문화제>를 통해 다양한 공감의장을 펼치고 소통하는 자리다.

지난 2003년 시작된 <연암문화제>는 연암의 학술적인 측면을 조명하는 것이 주요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가 9회 때부터 지금의 축제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지난 14회 때부터 지역 축제로서의 면모가 구축됐다. 지역 축제는 지역주민만의 잔치가 아니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과 지역주민이 서로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화합의 장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초창기 함양의 연암 문화제는 학술대회에 가까웠다. 차린 반찬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먹으려 드는 사람이 적어 연암문화제를 하느냐 마느냐의 소리도 간혹 들렸다. 명맥을 이어오던 함양 연암문화제는 9회 때부터 달라졌다. 연암 박지원 선생이 안의현감으로 부임했을 때는 재현하는 사또 행렬이 도입되고, 연암선생과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가 구현되었다. 지난 14회 때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만여명 가까운 역대 최대 관람객을 불러들였다.

안의면 오리숲 및 시가지 일원에서 연암부임행차, 안전기원제, 연암별빛콘서트, 각종 체험프로그램, 학술대회, 전시회 등 예년에 비해 보다 풍성하고 다채롭게 진행돼 여름 휴가를 온 관광객 발길을 잡기에 충분했다.

또 연암실학 학술대회도 실했다. 학술대회에는 뿔뱀의 저자 표성흠 선생, 한국한문학의권위자 인하대 정학성 명예교수, 한국술문화연수소 허시명소장이 참여해 2시간여 동안 다양한 장르로 연암 박지원에 대해 접근을 시도해 큰 박수를 받았다.

당시 박지원선생의 안의현감 시절을 소설화한 표성흠 작가는 연암의 인간미와 강직한 현감생활, 노령에도 지치지 않고 물레방아 등 실사구시를 펼치며 애민사상을 실천했음을 강조해 관심을 끌었다.

오후 6시 열린 연암부임행차에서는 취타대 40명, 호위대 및 포졸 등 40명 농악대 32명 등 총 122명이 시가행진을 진행해 전에 없는 장관을 연출했다.

한 관광객은 “여름휴가를 시원한 계곡에서 보내려고 안의면에 왔는데 멋진 행사를 접해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연암부임행차 행렬을 처음 봤는데 취타대 연주에 맞춰 진행되는 행차는 정말 대단했다”는 소감으로 축제관계자를 즐겁게 만들었다.

또 축포를 올리며 막을 올린 <연암 별빛 콘서트>도 열기가 후끈했다. 국민 안내양으로 어르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가수 김정연이 MC로 등장 시원한 진행 실력을 뽐냈다. 가수 김정연, 현미, 김국환, 미스 미스터가 출연해 <연암 별빛 콘서트>가 절정을 이루는 가운데 행사장 곳곳에 마련된 체험프로그램은 가족단위 관광객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7080추억여행, 물고기잡기, 캘리그라피, 한지거울만들기 등을 하면서 추억을 쌓은 관광객 가슴에 경남 함양 안의면은 평생 잊지 못할 공간이 되었을 터.

올해 제16회 함양 연암 문화제는 8월 30일부터 개최된다. 오후 6시 안의면에서 사또 부임 행차가 시작되고, 사또 행렬은 오리숲까지 장장 1km 정도 이어진다.

특설무대에서 안전기원제를 지낸 후, 함양군 서춘수 군수의 개막식 축사를 시작으로 함양 연암 문화제의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개막식 진행은 찰진 입담을 자랑하는 국민안내양 가수 김정연이 맡는다. 올 해 16회 연암문화제에서 또 어떤 즐거움을 맛보게 될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 된다.

기세 좋은 땅. 함양(咸陽)

경상남도 함양 땅은 누구나 한번은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유별난 고장이다. 경상남도 서북단 덕유산, 지리산 등 30여 개가 넘는 명산들로 둘러싸인 함양은 ‘빛이 가득한 고장’이란 이름답게 기세가 좋다. 함양 기운 센 땅에는 건강한 산물이 사시사철 나고, 사람들은 명산에 기대어 살고 있다. 조선시대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에는 함양이 ‘산수굴(山水窟)’이라고 나와 있다. 산이 높고 물이 많은 골짜기가 여럿 있어 붙여진 이름.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 성품도 산수골을 닮은 모양. 예로부터 ‘뼈대 있는’ 고장을 말할 때면 ‘좌안동, 우함양’이라고 했다. 지곡면 개평리에는 우함양의 기틀을 마련한 일두 정여창의 고택이 있다. 그리고 함양에는 정자(亭子)가 유난히 많아 영남 정자문화의 보고(寶庫)라고 불린다. 물 맑은 계곡 옆에는 어김없이 정자가 있는데, 올여름 막바지 휴가를 함양 정자에서 보내고, 8월30일 시작되는 <함양 연암문화제>까지 경험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듯 싶다.

필자 소개

함양 산삼축제 총감독

보성다향대축제 총감독

마포나루새우젓축제 총감독

남해 보물섬마늘축제 총감독

양구배꼽축제 총감독 ... 外 다수 역임

서울정원박람회

사랑의 행복콘서트 가요제

김제 효(孝) 콘서트

김정연의 효(孝).행복 콘서트 .. 外 다수 연출

축제관련 TV토론. 라디오 출연. 포럼 패널. 강연 활동

KBS. TV 조선. MBN 등 토크쇼 출연

(現)2019관악강감찬축제 총감독

(現)한국축제문화진흥협회 위원장

(現)파주시 정책 자문위원 (문화경제분야)

[사진 제공 = 한국축제문화진흥협회]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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