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현 "벚꽃보다 '그녀의 사생활'…덕질에 대한 생각 바뀌었죠" [MD인터뷰](종합)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얄밉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는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 '은기새끼'다.

187cm 키에 떡 벌어진 어깨에 유도 체육관 관장. 듬직하게만 보였던 친구였는데, 남사친은 남사친이었다. 배우 안보현은 케이블채널 tvN 수목드라마 '그녀의 사생활'(극본 김혜영 연출 홍종찬)에서 박민영(성덕미 역)의 오랜 친구이자 그를 짝사랑하는 남은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지난달 30일 종영한 '그녀의 사생활'은 직장에선 완벽한 큐레이터지만 알고 보면 아이돌 덕후인 성덕미(박민영)가 까칠한 상사 라이언(김재욱)를 만나며 벌어지는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 그 중 철없이 "밥 줘!"를 주구장창 외치는 남은기(안보현)는 얄미운 행동만 쏙쏙 골라서 하는 성덕미의 원수 같은 친구다.

그럼에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성덕미의 곁을 지키며 든든한 버팀목을 자처하는가 하면, 성덕미의 부모님에게는 싹싹한 아들 노릇을 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가득했다. 다만 남매처럼 지내온 성덕미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직진 공세를 펼친 탓에 드라마의 메인 커플, 라이언(김재욱)과 성덕미의 사랑을 방해하는 미운 '은기새끼'(극중 박민영이 안보현을 부르는 별명)가 됐다.

안보현도 남은기에 대한 원망의 반응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몰랐다. 친구들이 캡처해서 보내주더라. 은기 욕이 가득했다. 사실 저도 걱정했던 부분들이고, 시청자 분들도 역시 그런 부분들을 지적해주셨다. 그냥 은기가 불쌍했다"라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

"난해하긴 했죠. 제가 은기라면 어땠을지 계속 생각했어요. 저라도 은기처럼 하지 않았을까요. 가족 같은 관계인데 고백을 선뜻 할 수도 없고, 또 마음에만 담아둘 수도 없고요. 조심스러웠어요. 틀에서 벗어나지 않게 대사톤도 수정하고 감독님과 계속해서 소통했죠. 무식해 보일 수 있는 모습도 유하게 바꾸려고 했고요. 라이언과 덕미 커플을 응원하시는 볼 때는 당연히 저를 미워할 수밖에 없어요.(웃음) 저도 속상했죠. 그래도 분명 현실적인 남사친 캐릭터였다고 생각해요."

대신 남은기도 극 말미에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 극중 성덕미의 '덕질' 라이벌이자, 부하직원이기도 한 신디(김보라)였다. 당초 라이언을 짝사랑하던 다인(홍서영)과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됐으나 마지막회에서 뒤집혔다.

이에 대해 안보현은 "원래 홍서영 씨와 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김보라와 대면한 장면을 보고 김미경 선배님이 케미를 칭찬해주셨다. 저 역시 감독님께 장문의 메시지로 아이디어를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마지막회에서 두 사람이 이어진 열린 결말로 나왔더라. 너무 재미있었다. 특히 마지막 촬영에 추가된 유도 체육관 장면은 급하게 애드리브로 채웠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왔다. 만족스럽다"라고 설명했다.

"지질했던 은기라서 욕을 많이 먹었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연기하는 은기에게 해피엔딩을 주고 싶어서 열심히 발버둥 쳤죠. 제가 간절히 원했던 게 통했는지, 마지막쯤에는 시청자 분들이 좋게 봐주신 거 같아요. 해피엔딩을 은기에게 선물한 거 같아서 기뻤어요. 은기를 위해서 살도 찌우고 벌크업도 했었는데, 다시 4kg를 뺐어요. 그럼에도 아직 '은기새끼'한테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여운이 가득해요."

또한 안보현은 "주변에서도 반응이 온다. 역할이 커지다 보니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저를 오래 지켜봐온 팬 분들이 아주 뿌듯해하신다. 길을 가다가도 '은기새끼'라며 알아보시더라. 지금 저희 어머니 배경도 제가 박민영 누나랑 찍은 사진이다. '츤데레' 가족인데, 홍보대사급으로 활약해주셨다"라고 밝혀 폭소를 자아냈다.

영혼의 절친으로 등장했던 박민영, 박진주(선주 역)와의 호흡은 어땠을까. 관련 질문을 하자 안보현은 연신 박민영을 놓고 '로코퀸님'이라고 표현해 큰 웃음을 안겼다. 그는 "현장 분위기가 좋고 자유롭다 보니 애드리브가 워낙 많았다. 제가 굳이 하지 않아도 '로코퀸'님이 숙달된 애드리브도 잘 이끌어주셨다. 저는 오히려 어떻게 받아칠지 몰라서 긴장 상태였는데, 그냥 이끌려가듯 하게 되더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진주와는 동갑이라 시너지 효과가 있었고, 따로 만나서 대본 리딩도 많이 했어요. 캐릭터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됐죠. (박)민영 누나는 저를 보자마자 '우린 친구니까 존댓말하거나 누나라고 하면 안 된다'라고 하셨어요. 마음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다행이었죠. 여자들이 좋아할 법한 멘트들도 많이 조언해줬어요. 자연스럽게 셋이 붙는 장면들이 탄탄해졌고, 현장이 그리워요."

성덕미에 이어 신디까지, 본의 아니게 '덕질'하는 사람이 이상형이 되어버린 남은기다. 실제 연인이 두 사람과 같이 열혈한 '덕후'라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안보현은 "상관없다"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사실 이 드라마를 하기 전까지는 '덕질'을 이해 못했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금전적으로 소비하고, 그걸로 기분이 좋아진다는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죠. 많은 남자 분들도 저 같은 편견을 가지고 계실 거 같아요. 감독님도 그러셨대요. 하지만 이제는 180도 생각이 달라졌어요. 어떠한 사람 혹은 어떠한 것으로 인해 행복하고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게 '덕질'이란 걸 알았어요. 생각해보면 저도 사람에 대한 '덕질'은 아니지만 캠핑이나 바이크를 '덕질'하고 있던 거 같아요. 드라마에서 라이언이 덕미의 '덕질'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데, 저도 닮고 싶었어요."

부산 출신의 안보현의 이력은 화려하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19살까지 복싱 선수로 활동하다 직업군인을 꿈꿨다. 군대가 체질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쳤고, 우연치 않게 모델학과를 알게 됐다. 호기심 끝에 큰 고민 없이 진학했지만 무대 위에 오른 자신을 향한 시선 집중은 묘한 희열감과 쾌감을 선물했다고. 그렇게 시작한 모델 활동은 안보현에게 배우라는 꿈을 갖게 했다.

"모델학과 진학 직전 1박 2일 오리엔테이션을 가졌는데, 잘생기고 예쁜 친구들이 다 모였더라고요. '이 사람들이 내 친구라고?' 싶은 마음에 신기했어요. 링 위에 올라 받는 집중과 패션쇼 무대 위에 서서 받는 주목은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또 저희 학교에 이민기 선배님이 계셨고 조한선, 이민기, 조인성, 이천희 등 여러 선배님들이 모델을 시작으로 배우가 됐어요. 그걸 보면서 저도 이 일을 발판 삼아 연기자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사실 저는 연극영화과, 연기학원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다만 선배들이 발자취를 남기셨으니, 그걸 따라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꾸준히 연기의 문을 두드린 결과, 안보현은 지난 2016년 영화 '히야'로 공식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최고의 연인'(2015), '태양의 후예'(2016), '별별 며느리'(2017), '숨바꼭질'(2018), '독고 리와인드'(2018), 영화 '막다른 골목의 추억'(2019) 등 쉬지 않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이지만 비교적 늦은 28살 데뷔는 원치 않는 조급함을 안기기도 했다.

안보현은 "어릴 때는 저만 아는 시기 질투가 있었다. '저 분은 서울 사람이겠지', '레슨을 받았겠지' 싶은 열등감이었다. 열등감이 있을 때는 어떤 기회를 놓치게 되면 굉장히 조급했다. 세상이 무너진 것 마냥 제 자신을 한탄했다.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크다 보니 '더 빨리 시작하면 좋았을 걸'하는 마음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됐다"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저보다도 어린 남주혁 같은 분들이 너무 잘 되고 있잖아요. 좋은 자극제가 돼요. 서로를 응원하게 되고요. 덕분에 모델 출신 연기자가 가진 편견이 깨졌죠. 저도 그런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또 계속해서 작품을 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운이 좋아요. 조바심은 이제 없어요. 감사함, 설렘이 더 크죠."

미니시리즈의 힘이 대단하다며 소탈하게 웃던 안보현은 다음 행보에 대한 기분 좋은 욕심을 내비쳤다. 그는 "늘 가져가고자 하는 마음이 초심이다. '말하는 대로'라는 말을 좋아한다. 다행히도 말하는 대로 다 이뤄지고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다. 늦게 시작했지만 색이 빠르게 칠해지고 있어서 만족한다"라고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남은기를 연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올해는 벚꽃놀이도 못 갔는데 더 따뜻하게 보낸 거 같아요. 현장이 제일 즐거웠어요. 대본을 외워야 하는 압박감이 그리울 정도에요. '그녀의 사생활'을 못 보셨던 분들은 재방송, IPTV로라도 꼭 봐주시면 좋겠어요.(웃음) 앞으로 저는 다른 캐릭터로 뵐 수 있게 열심히 준비할게요. '걔가 걔였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성장할 거예요."

[사진 = FN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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