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의 축제이야기 22]나주 영산포 홍어축제, 숙성된 맛의 대향연

지금이 제철인 삭힌 홍어 맛

삭힌 홍어는 미식가들이 최애(最愛)하는 음식 중 하나다. 소금에 염장(鹽藏)하지 않고 눈과 바람을 맞으면서 발효. 숙성된 삭힌 홍어는 전라도, 그 중에서 나주 영산포산이 최고다. 삭힌 홍어는 여러 단계를 거쳐 비소로 상에 올려진다. 냉장고가 나오기 전에는 겨울바람을 맞혀 숙성 시켰는데 지금은 과학이 홍어를 숙성시킨다. 실온에서 어느 정도 숙성시켰다가 냉장 숙성을 하고, 다시 냉동고에 넣어 영하에서 숙성 시킨다. 그런 냉장고에서 적정 시간을 보낸 다음 손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 4단계 숙성 과정을 거쳐야 삭힌 홍어 특유의 톡! 쏘는 맛이 나고 육질이 쫄깃하다.

삭힌 홍어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계절은 11월부터 그 이듬해 3~4월까지. 그러니까 지금이 삭힌 홍어 맛을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제철이다. 11월말부터 이듬해 3~4월경까지 잡히는 홍어가 제일 맛이 있는 이유는 이 시기에 수정을 하고 산란하기 때문. 영양분이 풍부하고 육질이 가장 쫄깃해지는 때다. 겨울철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홍어는 겨울 찬바람을 견뎌야 제 맛이 난다. 겨울철 낮은 온도에서 10~15일쯤 숙성시킬 때 맛이 가장 좋은데 나주 영산포 홍어가 바로 그런 홍어다. 한 번도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나주 영산포가 만든 삭힌 홍어의 맛, 지금이 그 맛을 맛보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산포 홍어

나주 영산포 삭힌 홍어는 600년 역사를 자랑한다. 역사가 긴 만큼 여러가지 설(設)이 전해 내려오는데 그 중 하나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피해서 육지로 이주한 흑산도 주민이 삭힌 홍어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고려 말은 왜구의 침입이 잦았고 일본과 가까운 흑산도의 피해가 심했다. 왜구가 쳐들어 올 때면 흑산도 주민들이 생선을 잡아 배에 싣고 육지로 피했는데 5일 또는 보름 이상 걸려 지금의 영산포에 도착했다. 그러다보니 생선이 모두 부패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다른 생선과는 달리 푹 삭은 홍어는 먹어도 뒤탈이 없고, 먹을수록 독특한 풍미가 느껴져 즐겨먹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나주가 본관으로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정약전은 다산의 동생이다. '자산어보(玆山魚譜)'는 한반도에서 잡히는 생산과 해조류를 집대성한 방대한 저서다. 어류 종류는 물론이고 먹는 법과 효능을 자세히 서술해 놓았는데 '나주 사람들은 홍어를 삭혀서 먹는다. 홍어를 먹으면 장이 깨끗해지고 술독을 해독하는데 큰 효험을 볼 수 있다'고 기록돼 있을 만큼 영산포 홍어는 그 유래가 깊다.

남도지방에서는 “날씨가 추울 때는 홍어생각, 따뜻할 때는 굴비생각”이란 말을 하는데 지금은 홍어가 사계절 음식이 됐다. 하지만 지금 먹으면 더 몸에 좋다. 도다리 쑥국을 봄의 보양식으로 꼽지만 어린 보리 싹을 넣어 끓인 홍어탕은 비할 바가 아니다. 홍어는 100g당 단백질 함유량이 약 19g, 지방함유량은 전체 성분의 0.5%로 저지방 고단백 식품. 다이어트에도 최고 좋은 음식이다. 또 관절염, 류머티즘에 좋은 황산콘드로이친이 많이 함유돼 있다. 황산콘드로이친은 연골의 주성분으로 뼈와 뼈 사이에서 기계의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여자들의 골다공증 예방과 산후조리에도 좋은 음식이다

특히 홍어는 숙성되는 과정에서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와 물질이 생겨난다. 소화 흡수가 잘 되는 펩티드라는 물질은 기본이고 홍어에 듬뿍 들어 있는 콜라겐은 소화, 흡수가 잘 되는 젤라틴으로 바뀐다. 이렇게 귀한 홍어를 맛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바로 영산포 홍어 축제!

15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산포 홍어 축제

전라도의 대표 음식 ‘숙성 홍어’의 대향연이 전남 나주시(강인규 시장) 영산포에서 펼쳐졌다. 지난 4월 12일에서 14일까지 사흘간 '제15회 영산포홍어축제'가 열렸다. 영산강 푸른 물결과 노란 유채꽃이 만발한 영산강 둔치공원 일대를 배경으로 삭힌 홍의 맛 대 향연이 펼쳐졌는데 지역축제 전문가 김종원의 눈에도 준비를 잘 한 것이 한눈에 보였다. 축제 시작을 알리는 개막 퍼포먼스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축제 첫날 개막식 30분 전에 주민들이 영산포 선착장에 도착한 황포돛배에서 홍어를 옮기는 '흑산도 홍어 배 입항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지난 해 까지만 해도 영산강 보 때문에 황포돛대 띄우는데 어려움이 있어 다야 선착장으로 이전·운영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보가 개방되면서 영산강 물길이 흐르고 황포돛배도 제 자리를 찾았다. 홍어의 거리에 위치한 영산포 선착장으로 재이전한 덕분에 축제장을 찾은 관람들이 삭힌 홍어를 즐기고 영산강 일대 유람할 수 있었다. 김민주 영산포홍어축제추진위원장도 "봄날의 나른함과 지루함을 확 날려버릴 수 있는 이번 축제에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꼭 방문해 즐겨주시길 바란다"고 했는데 축제위원장의 소망대로 많은 관람객들이 영산포 홍어거리를 찾았다.

영산포 홍어거리 김지순 사장

영산포 홍어거리에서 김지순 사장의 맛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한 때 맛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전국 맛집 탐험을 한 적이 있는데 영산포 홍어거리에서 놀라운 맛을 발견했다. 금성수산 김지순 사장을 만나 삭힌 홍어를 맛봤는데 응어리진 가슴이 뻥 뚫리는 것을 느꼈다. 칭찬에 인색하고 쓴 소리를 잘하기로 소문난 김종원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그녀의 홍어 인생이 궁금했다. 김지순 사장 손에서 탄생한 삭힌 홍어는 ‘톡! 쏘는 맛과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김지순 사장은 이런 맛을 내기까지 60년이 걸렸다고 한다.

발효. 숙성의 백미는 바람과 햇볕, 시간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미묘한 한 끗 차이가 홍어 맛을 좌우한다는 김지순 사장이 이 맛을 내는 데 무려 6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영산포 홍어 거리에서 가장 오래 된 가게! ‘톡! 쏘는 맛과 쫄깃한 식감을 한번 맛 보면 영영 잊을 수 없어 다시 찾게 된다는 명성은 저절로 따라 온 게 아니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은 누구나 다 어려웠다. 그 궁핍한 시절에 식당을 하시던 부모님 덕에 다른 또래에 비해 부유하게 자랐다. 그러나 김지순 사장의 유복한 어린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7살이 되던 해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재산이 몰수되고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고 말았다. 지독한 가난에 서 벗어나려고 어머니는 생활 전선에 뛰어 들었고, 이 때 시작한 것이 작은 국밥집이었다. 국밥과 홍어를 같이 팔곤 했는데 손맛이 좋아 문전성시를 이뤘는데 지금의 가게가 바로 김지순 사장의 어머니가 하던 식당. 가업을 물려받은 덕분에 영산포에서 제일 오래 된 홍어 집, 전국에서 제일 맛인 홍어라는 명성을 얻었다. 지독한 가난과 배고픔을 겪어 봤기에 자식들만큼은 고생 시키지 않겠다며 억척스럽게 홍어를 삭혔고 그 세월이 벌써 60년이 넘었다.

차원이 다른 김지순 사장의 홍어 맛은 전국 각지의 식객을 불러 모은다. 20년이 넘은 단골손님들은 물론이고, 처음 온 손님들도 다른 집과는 다른 특별한 맛이 있다고 말한다. 축제 기간이 아니어도 미식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영산포 홍어거리. 이리 봐도 홍어가게요 저리 봐도 홍어 판매점인데 홍어 맛 좀 안다는 사람들 발길이 닿는 곳이 금성수산이다.

영산포 홍어 축제에 더하고 싶은 2%

미식가들은 삭힌 홍어를 “답답한 세상을 뚫어주고 위로하는 맛”이라고 말한다. 영산포 홍어 축제의 가치와 의미는 답답한 세상을 뚫어주고 위로하는 맛에 있다. 올 해로 15년째인 영산포 홍어 축제엔 이런 의미를 담은 콘텐츠가 많았다. 홍어 황포돛배 입항에서부터 홍어 장사대회 '나주시민가요제', '나주시립 국악단 & 합창단 공연', '영산포 선창 콘서트', '초대가수 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져 볼거리가 충만했다. 또 '홍어 예쁘게 썰기', '홍어 시식 왕 선발', '홍어 탑 쌓기', '홍어 깜짝 경매' 등 관광객이 참여하는 다채로운 체험거리도 많았다. 여기에 홍어축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먹을 거리도 특별했다. 막걸리를 곁들인 홍탁, 홍어회, 찜, 홍어앳국 등 숙성 홍어를 소재로 한 다양한 먹거리가 관람객을 맞아 삼박자를 고루 갖춘 오감만족 축제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남도의 낭창낭창한 정(情)과 한(恨)을 소재로 한 콘텐츠로 삭힌 홍어를 문화로 승화시키는 콘텐츠도 하나 있었던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또 숙성된 홍어 맛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특화된 홍어콘텐츠가 더해졌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내년 4월 제16회 영산포 홍어축제가 얼마나 더 크게 흥할 지 벌써부터 큰 기대가 된다.

필자 소개

김종원 축제칼럼니스트는 지역축제의 귀재로 알려져 있다. 지역 축제를 성공시켜 문화관광 활성화와 지역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축제콘텐츠대상 (연출상) 외 많은 상(賞)을 수상했다. 또한 지역 축제 총감독 으로 ‘마포나루새우젓축제’ ‘양구배꼽축제’ ‘지리산함양 곶감축제’ ‘남해 보물섬 마늘 축제’등 10여개 지역 축제의 지휘봉을 잡았다. 또 <2019관악강감찬축제> 총감독 공개모집에 최종 선발되어 축제를 총괄 진행하고 있다.

- (現) 한국축제문화진흥협회 위원장

- (現) 제이스토리미디어 대표

- (現) 파주시 정책자문위원 (경제문화분과)

- 대한민국축제콘텐츠대상 (연출상 수상) 외 다수 수상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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