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수도 파주시 홍보대사 김정연, “시정 깃발 들고 손흥민처럼 뛰겠다”(인터뷰)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4월 15일 가수 김정연이 파주시 최종환 시장으로부터 홍보대사 위촉패를 받았다. 2018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뒤 평화의 상징이 된 파주시의 민간 홍보대사가 된 가수 김정연은 자타가 공인하는 어르신들의 뽀로로. 매주 국민 안내양으로 변신 전국을 누비는 가운데 중책을 맡게 된 가수 김정연을 파주시청 회의실에서 만났다.

► 홍보대사로 발탁 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닐 텐데 특별한 소감이 드는 이유는?

국민 안내양으로 10년 넘게 어르신들의 딸로 살다보니 많은 지역에서 민간 홍보 대사 직함을 주었다. 지자체의 얼굴 마담이 되는 것도 즐겁지만 어르신들과 더 자주 만날 수 있어 위촉을 하면 대부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번 파주시 홍보대사도 국민 안내양의 친근한 이미지 덕분에 발탁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파주시 홍보대사는 특별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잘 아시다시피 지난 해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만남은 장면 장면이 세계적인 핫 이슈가 되었고 두 분이 나눈 대화는 세계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였다.

세계가 주목하는 파주시는 임진각국민관광지(臨津閣國民觀光地)는 임진각 본관과 평화누리공원, 평화의 종, 망배단 등이 있는 대한민국 대표 평화관광지다. 그런 만큼 앞으로 파주시가 해야 할 일들이 많을 것이라고 본다. 15일 최종환 파주시장이 위촉장을 전달하면서 “이번에 위촉된 파주시 홍보대사들이 파주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파주의 다양한 시정 활동을 홍보해 한반도 평화수도 파주의 좋은 이미지가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는 당부를 했다. 저를 파주시의 홍보대사로 발탁해주신 파주시 관계자분들과 최종환 시장님이 계획하고 계신 시정(市政)이 파주 시민께 잘 전달하는 전령사 역할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도록 공부를 많이 할 것이다. 아울러 평화수도 파주가 품고 있는 자랑꺼리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머리로 생각하고 발로 뛰면서 혼신을 다할 각오가 되어 있다.

► 요즘 파주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들이 많다고 들었다

홍보대사 위촉장을 받기 전에 파주시에 대한 공부를 좀 했다.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임진각과 평화누리공원, 망배단 등 취재를 참 많이 했다. 파주의 소식을 전할 때 마다 실향민의 아픔과 통일염원이 담았다. 실향민의 애환이 서린 파주는 DMZ와 맞물려 있어 전쟁의 상처를 말할 때 꼭 찾곤 했는데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후로는 평화의 상징이 되었고, 이와 관련한 문화행사도 부쩍 많아졌다. 아울러서 파주 장단콩 축제, 개성파주 인삼 축제등 특산물 축제도 예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규모가 커져가고 있다. 홍보대사의 역할은 파주시의 이런 일정들을 전국에 알리고 시민의 호응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일이다.

홍보대사 위촉장을 받기 전인 4월13일 홍보대사로의 일정을 소화했다. 파주시민 축구단(단장 김상국)이 2019 K3리그 대장정을 시작했다. 홈 경기로 개막전을 장식했는데 제가 식전 행사 무대에 올라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제가 뭐라고 파주 시민들이 그렇게나 열띤 박수를 쳐주셨는지 무대를 내려 온 후에도 감동이 밀려 왔다.

그리고 5월 가정의 달에는 파주메인스타디움에 ‘김정연의 효 행복 콘서트’가 열린다. 이 콘서트는 김정연의 브랜드다. 지난해까지 영등포 아트홀에서 콘서트를 했는데 이번에는 파주에서 개최한다. 제가 살아 온 굴곡 진 인생에 노래를 담아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신나게 하루를 즐긴다. 대한민국 모든 아버지 어머니께 바치는 김정연의 카네이션이라고 보시면 된다.

► 시골 길 따라 전국팔도 누빈지가 10년이 넘었다. 김정연에게 시골버스의 의미는?

KBS1TV <6시 내 고향> ‘시골길 따라 인생길 따라’ 굽이굽이 전국을 누비는 시골버스는 제 인생버스다. 안내양 복장을 하고 시골버스를 타면 많은 분들이 박수를 치면서 맞아주신다.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어린꼬마부터 어린이, 청소년 청장년과 제 또래의 중년,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린 어르신들까지 만나뵙는데 그분들 이야기 속에 삶의 지혜가 있다. 내가 살아 보지 못한 인생 이야기를 전하면서 많이 배운다. 가슴 찡한 사연, 신바람 나는 사연 등등 살아온 내력은 제 각각이지만 인생이 묻는 대답은 몇 가지로 귀결 되는데 인생을 잘 사는 법이 결코 어려운 게 아니다. 인생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 건강, 그 다음이 인간 됨됨이, 그리고 마지막이 돈이더라.

2010년 1월 19일 경북 성주에서 0번 버스를 타는 것으로 버스 안내양을 시작했다. 당시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 그 해 3월 9일 강원도 영월 군내버스를 타면서 정규 편성을 했다. ‘시골길 따라 인생길 따라’라는 코너 이름도 그때 생겼다. 그렇게 해서 10년이 넘게 시골 버스를 탔는데 아직 안 가본 곳이 있다. DMZ 안에 있는 군사보호시설 지역 빼고는 전국 시골 버스는 다 타봤다. 지금 남북 화합 무드가 무르익어가는 만큼 이 지역 군내 버스를 타고 방송할 날도 머지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은근히 든다. 전국 85개 시·군내버스를 탑승해 최단기간 버스 탑승 거리가 가장 많은 연예인으로 한국기록원에 등재돼 있는 만큼 버스 안내양으로 북한 동포를 만나는 최초의 연예인으로 기록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 가수 김정연 하면 도전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또 무엇에 인생을 걸고 싶은지?

그러고 보니 제 인생이 ‘거꾸로 삶’인 듯 싶다. 늘 새로운 일을 찾아 헤매는 것이 마치 조용필이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추억이지만 도전을 시도했던 그 당시는 눈물 반 한 숨 반이었다. 4년제 대학을 나와 평범한 회사에 취직해서 좋은 남자 만나 시집가길 바라는 부모님 뜻을 꺾고 1991년 민중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데뷔를 했다. 그러다가 1995년 노.찾.사 가수에서 느닷없이 방송인의 길로 접어들어 13년 간 라디오 진행을 했다. 그러다가 ‘세상의 아침’을 통해 TV 진행자로 데뷔했지만, 세 번 출연만에 퇴출됐다. 그때가 서른일곱 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면서 남편과 함께 여의도에서 삼계탕 집을 운영했는 조류독감 두 번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신용불량자로 컨테이너 박스가 삶의 터전이었다. 지독한 가난을 겪으면서 2008년에 중고 소나타를 판 돈으로 트로트 1집 ‘사랑하니까’를 내놓았다. 2015년 ‘세월네월’ ‘어머니’까지 4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2017년 3월에는 ‘뛰뛰빵빵 김정연의 인생버스’라는 책도 썼다. 최근에는 이야기와 노래를 접목한 토크쇼 형식의 강연도 한다.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버틸 수 있고, 버티면서 도전의 도전을 거듭하다 보니 오늘의 내가 된 것이다.

노래와 강연, 방송 진행. 무대 MC, 홍보대사 등이 나의 무늬가 되는 날줄이라면 늦둥이 아들 태현이와 남편은 씨줄이다. 날줄과 씨줄이 서로 김정연이라는 무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여기에 안주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도 제가 도전하고 싶은, 도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분야가 많다. 트로트 하면 김연자, 장윤정, 홍진영 등을 떠올리듯 토크쇼하면 김정연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리고 국민 안내양과 늦둥이 엄마 이미지에 딱 맞는 CF도 하고 싶다. 김정연이 앞으로 어떤 변신을 할 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오늘 이 인터뷰는 평화수도 파주시 홍보대사 김정연을 이야기 하는 자리다. 그런 만큼 파주시 이야기로 끝을 맺고 싶다. 파주시 최종환 시장님이 그리는 파주시의 큰 그림 초점은 늘 주민행복과 남북화합으로 귀결된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기 전, 임진강과 임진나루터가 한반도의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확인하고 다시 복원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또 서울과 가장 가까운 도시의 잇점을 최대한 활용해 ‘살고 싶은 파주, 머물고 싶은 파주’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다. 최종환 시장의 꿈이 파주 시민의 소망인 만큼 이 소망이 큰 결실을 맺도록 홍보대사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약속으로 이야기 끝을 맺고 싶다.

[사진 = 한국축제문화진흥협회]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