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록의 나침반] '몰카범' 정준영은 짐승이다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대학생 때 무척 좋아하던 애가 있었다.

수업 시간, 그 애가 교수님 몰래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떠들던 모습에 반했다. 우연히 강의실 뒤를 힐끗 봤다가 눈길이 닿았는데, 그 애가 웃는 게 햇살처럼 해사했다. 그 미소는 나만 봤고, 내 머릿속에만 남았다.

이젠 그 애 얼굴이 어렴풋하다. 사진 한 장 없는 탓이다. 혼자만 애탄 까닭에 "사진 한 장 찍자"는 말은커녕 근처만 가도 가슴이 뛰어 '들킬까' 초조했다. 몰래라도 사진에 담고 싶은 순간이 없었겠냐만은, 혹여나 그 애가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 싶어 마음도 못 먹었다.

다만 MT 같은 걸 갔다가, 그 애 옆에 서있던 날 본 어떤 애가 "둘이 사진 한 장 찍어라" 한 덕에 엉겁결에 어색한 미소로 남긴 사진이 하나 있었다.

그 사진이 황금보다 소중했다. 군대 가서도 수백 번을 봤다. 외로울 때 보고, 그리울 때 봤다. 누가 볼까 몰래 품에 숨겨 야간근무 설 때 혼자만 힐끔 훔쳐봤다. 그 사진에선 어색하던 그 애 미소도, 내 눈에는 강의실에서 본 그 미소와 겹치며 누구보다 화사했다.

어느 날 그 사진을 잃어버렸고, 그날 이후 그 애 미소는 영영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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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은 '몰카범'이다.

이성과 성관계를 나눈다는 말은 완곡하게 '사랑을 나눈다'고도 한다. 정준영은 자신과 사랑을 나눈 여성들을 직접 몰래 찍어 곳곳에 퍼뜨리고 낄낄거렸다. 정준영이 나눈 건 사랑일 리가 없다. 사랑한다면 그럴 수 없다.

참담하다. 누군가에겐 사랑일 수 있었던 게 알고 보니 '몰카범'이었고, 그 사랑이 누군지도 모를 타인의 '관음'이 되었다.

'몰카범' 정준영은 포승줄에 묶였다. 그 순간을 눈 앞에서 똑똑히 보았으나, 가여운 마음은 없었다. 포승줄이 제아무리 정준영을 옭아맬지언정, 피해 여성들을 옭아맨 고통보다 괴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정준영은 마치 포승줄에 묶여 잡혀온 '몰카범'이란 이름의 짐승 같았다. 사랑을 모르고, 욕망에 내맡겨 행동하는 건 인간이 아닌 까닭이다. 짐승이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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