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의 축제이야기 14]정월 대보름 대동제 지역축제의 원형, 구제역 여파로 줄어든 정월 대보름 놀이

갈수록 쪼그라드는 정월 대보름 축제

지난 2월19일은 민족 3대명절로 불리는 정월 대보름날이었다. 예전 같으면 설 못지않게 풍성한 날이 되었을 텐데 구제역이 최근 2년 만에 다시 발생하면서 전국 곳곳의 정월대보름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었다. 대보름 축제를 한 지역도 대폭 축소되어 그야말로 쪼그라든 정월 대보름이 되고 말았다. 필자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파주시도 구제역과 화재를 우려해 대보름 축제를 대폭 축소했다. 파주시 최종환 시장은 주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 시 차원의 대규모 대보름 축제를 열지 않는 대신 지역주민이 중심이 돼서 여는 정월대보름민속놀이는 장려했다. 그러면서 안전에 만전을 기하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지역 단체장 입장에선 전통적인 세시 풍속이 가장 많이 행해지는 정월 대보름을 지역주민과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겠지만 환경 요인이 뒷받침을 못해주니 안타까움이 컸으리라고 본다. 안성시를 비롯한 평택시, 이천시는 구제역 확산방지 차원에서 대규모 정월대보름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안성에 이어 구제역이 확진된 충주에서는 지역 예술단체인 ‘몰개’가 17일 남한강 목계강변에서 풍물 판굿과 달집태우기 등을 할 예정이었으나 백지화했다. 인근 충북 제천시 금성면 주민자치위원회도 19일 열기로 했던 대규모 달집태우기 행사준비를 중단했다. 강원도 속초시도 19일 엑스포상징탑 광장에서 열기로 했던 민속놀이 한마당을 취소했고, 동해시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경기도 파주문화원도 계획한 통일 연날리기까지 취소해 지역축제 총감독 경험이 있는 김종원의 입장에선 만감이 교차한다. 지난해에는 조류독감(AI) 탓에 대보름 행사를 취소했는데, 올해에는 구제역 여파가 문제다. 점차 급변하는 기후환경과 보건환경 속에서 정월 대보름 축제뿐만 아니라 지역축제의 생존 방안도 함께 모색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정월 대보름은 농사일 시작하는 날

필자의 고향은 전라남도 강진이다. 바다농사도 많고 논밭 농사도 푸짐한 전형적인 시골이라 일 년 365일 세시 풍속이 철철이 넘쳤다. 어렸을 때 추억을 떠올려 보면 설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근신하는 날이었다. 설빔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동네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고 차례를 지내는 게 전부였던 설과는 달리 정월 대보름은 역동적이었다. 설이 가족 단위 명절이라면 정월대보름은 온 마을 사람과 함께 즐기는 대동(大同)의 축제날이었다. 대보름날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더위팔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그 풍속도 되살려 봤으면 한다.

새벽 일찍 일어나 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친구를 만나면 재빨리 ‘니 더위 내 더위 맞 더위’라고 소리를 쳐 더위를 팔았고, 제일 처음 듣는 소리로 한 해의 운수를 점쳤다. 까치 소리를 들으면 행운이 오고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액운이 낀다고 해서 귀를 바짝 곤두세우곤 했다.

그리고 어른들은 정월 대보름날 그해 풍년이 들지 흉년이 들지 달을 보고 점을 쳤다. 대보름 달빛은 어둠, 질병, 재액을 밀어 내는 밝음의 상징이다. 둥근 대보름달이 휘엉청 떠오르면 달에게 한 해의 소원을 빌고, 한바탕 신나는 풍물로 마을의 단합을 다졌다. 그리고 달집을 태우고 쥐불놀이를 하면서 질병과 재앙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기원했다. 또 바닷가 마을에선 용신(龍神)에게 풍어와 안전을 비는 동제와 풍어제를 지냈다. 한 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고 모든 질병이나 액운을 막고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했는데 그 모든 절차가 축제고 놀이였다.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줄다리기, 다리밝기, 고싸움, 돌싸움, 쥐불놀이, 탈놀이, 별신굿 등을 펼치면서 개인의 이익이 아닌 집단의 이익을 추구했던 것을 생각하면 쪼그라든 요즘 정월 대보름 축제가 안타깝기만 하다. 허나 세상 모든 일이 위기 속에 기회가 있는 법, 지역 축제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전문가와 전통문화를 살리려고 애 쓰는 많은 이들의 지혜가 모인다면 정월대보름의 다양한 놀이 속에서 구제역이나 AI, 급격한 기후 변화에 영향 받지 않는 좋은 콘텐츠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민속놀이와 대동제의 백과사전

직업은 속일 수 없는 것인지 지역 축제에만 온통 마음이 쏠린다. 일종의 직업병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콘텐츠 찾기’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정월 대보름도 마찬가지다. 다시 복원해서 요즘 시대에 맞는 옷을 입혀보고 싶은 정월 대보름 민속놀이가 몇 가지 있다.

생각하고 있는 몇 가지 안(案)중에서 하나를 꼽는다면 ‘종로 흙 퍼가기’다. 서울시청이 한성부(漢城府)로 불렸던 조선 말기, 종로의 이름은 운종가(雲從街)였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고 해서 운종가라고 불렸는데 정월 대보름이 되면 인파가 장난 아니게 몰려들었다. 옛날에는 정월 대보름을 망일(望日), 그러니까 소원을 비는 날이라고 했다. 정월 대보름 전날인 음력 14일은 소망일(小望日)이라고 했는데 이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운종가의 흙을 파갔다. 저마다 자루를 들고 와 운종가의 흙을 파 갖고 간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돈 많은 사람들이 한 번씩은 밟고 갔을 흙을 퍼다 자기 집에 뿌려 놓으면 재복(財福)이 찾아 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네 개의 자루를 허리에 차고 와서 동서남북으로 뻗은 네 개의 길에서 한 삽씩 흙을 파서 각각 자루에 담아 집으로 돌아가서는 동서남북 네 구석에 흙을 뿌렸다. 동쪽에 흙을 뿌릴 때는 “금(金) 나라 금(金) 나라!” 외쳤고, 서쪽에 뿌리를 때는 은(銀)이 나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남쪽에 뿌리를 때는 동(銅)나라 했고, 북쪽에 뿌릴 때는 철(鐵)나라는 발원을 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흙을 퍼간 다음 날 운종가는 엉망이 되었고 한성부 직원들은 길을 메우느라 진땀을 뺐다. 정월 한달 한성부 직원들이 하는 일 중 가장 큰 일이 망일(望日) 대보름날이 지난 뒤 흙을 퍼다 파헤쳐진 길을 원상 복구 하는 것이었다. 이 풍속을 막을 길이 없자 한 때는 한성부 직원들이 나와 한 주먹씩만 가져가도록 계몽을 했다고 한다. 종로에 있는 육의전(六矣廛) 상인들까지도 이날을 기다렸다가 흙을 퍼갔다고 하니 부자가 되고 싶은 소망이 얼마나 컸을 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솔직히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시공(時空)을 초월한다. 어쩌면 요즘 더 많이 ‘부자의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이런 욕망을 복토 퍼가기..복물 퍼가기 등의 대보름 풍속에 접목시켜 축제 문화 놀이문화로 잘 승화시킨다면 훌륭한 축제콘텐츠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본다. 자세한 방안은 지면 관계상 서술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차후 정월 대보름 풍속을 잘 활용해서 21세기 대동제로 재탄생 시키고 싶다.

버리기 아까운 정(情)과 흥(興)의 실체

정월 대보름 풍속만 봐도 우리는 정(情)과 흥(興)이 넘칠 정도로 많이 갖고 있는 민족이다. 복조리를 사줌으로써 이웃도 돕고 복을 받았던 정(情)나눔의 문화도 이제는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풍물패들이 걸립(乞粒)을 해서 마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했던 흥 넘친 공동체 문화도 흐지부지 퇴색해 간다. 사실 한국인의 정은 ‘메이드 인 코리아’다. 우리가 정(情)이 많다는 말을 흔히 쓰는데 이 말을 정확하게 번역하는 서양의 단어가 없다. 어떤 사람은 사랑(LOVE)와 같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심장 혹은 마음(HEART)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어딘가 좀 싱겁고 허전하다.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지만 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 차곡차곡 쌓인다.

또 흥(興)은 어떤가? 우리 민족을 흥의 민족. 신명의 민족이라고 하는데 이런 우리의 자화상을 똑똑히 본 것이 2002년 월드컵 때가 아닌가 싶다. 시청 앞 광장은 물론이고 전국의 거리를 붉게 물들인 응원의 함성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대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1997년 들이 닥친 IMF 충격을 딛고 일어 선 원동력은 정(情)이었다. 금모으기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길고 긴 줄을 보고 해외언론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한민국은 반드시 살아난다”라고 했고 우리는 IMF 한파를 이겨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보면 IMF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경제가 어렵다고 한숨을 쉰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정(情)과 흥(興)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고, 노래가 있으면 어려운 일도 쉬워진다. 정(情)과 흥(興)을 버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역 축제 총감독 경험을 수 십 차례 해본 김종원이 자신하건데 우리 전통 문화 속에 깃든 정(情)과 흥(興)의 원형을 되살려 국민정서로 승화 시킨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훨씬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이 축제가 될 수 있도록 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멍석만 깔아주면 흥이 절로 돋아 인정을 나누는 우리의 본래 모습이 더 이상 퇴색되기 전에 불을 지펴야 한다.

필자 소개 (kcs6009@hanmail.net)

김종원 축제칼럼니스트는 지역축제의 귀재로 알려져 있다. 지역 축제를 성공시켜 문화관광 활성화와 지역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축제콘텐츠대상 (연출상) 외 많은 상(賞)을 수상했다. 또한 지역 축제 총감독 으로 ‘지리산 산청곶감 축제’를 비롯하여 ‘마포나루새우젓축제’ ‘양구배꼽축제’ ‘지리산함양 곶감축제’ 등의 지휘봉을 잡았다.

- (現) 한국축제문화진흥협회 위원장

- (現) 제이스토리미디어 대표

- (現) 파주시 정책자문위원 (경제문화분과)

- 대한민국축제콘텐츠대상 (연출상 수상) 외 다수 수상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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