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MD포커스]

[마이데일리 = 여동은 기자]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는 70~80년대를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그런데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라는 문구를 보면 '연좌제(?)'가 떠오른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부모의 직업이 자녀와 학생의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수도, 미쳤던 적도 있었다.

이 대사는 2001년 개봉한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에 나오는 명대사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는 교사역을 맡은 배우 김광규가 말썽을 일으킨 동수(장동건 역)와 준석(유오성 역)의 볼을 잡아 당기며 훈계를 하다가 나온 대사다. 김광규는 이 대사 하나로 '오랜 무명'에서 벗어났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는 과거 부모의 사회적 지위만을 갖고 학생 개개인을 평가하던 부조리한 교육자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대사다. 만약 장동건과 유오성의 아버지가 학교 이사장이나 지역 유지 등 소위 '금수저'였다면 나올 수 없었던 대사다.

최근 막노동꾼 딸의 절실한 고백이 세상을 울렸다.

임희정 전 아나운서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브런치'에 '저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임희정 전 아나운서는 "1948년생 아버지는 집안 형편 때문에 국민학교도 채 다니지 못했다. 일찍이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하는 노동을 했고 어른이 되자 건설현장 막노동을 했다. 그 일은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1952년생인 어머니는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8남매의 장녀였다. 삼시세끼 밥을 짓고 청소와 빨래를 하는 가사노동을 40년 넘게 하고 있다. 1984년생인 저는 대학원 공부까지 마쳤다"고 소개했다.

그는 "내가 개천에서 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정직하게 노동하고 열심히 삶을 일궈낸 부모를 보고 배우며 알게 모르게 체득된 삶에 대한 경이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나를 움직인 가장 큰 원동력은 부모였다"며 "물질적 지원보다 심적 사랑과 응원이 한 아이의 인생에 가장 큰 뒷받침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글은 잔잔한 감동으로 세상을 흔들었다. 네티즌들은 “존경스러운 부모님이네요” “그 부모에 그 딸이다” “멋지다” 등 응원을 보냈다.

연일 포털사이트 실검에 오르며 화제를 모으자 임 전 아나운서는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15일 “제 글에 감응하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 부모님의 생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최근에 쓴글이 많은 주목을 받아 많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고마워 (글을) 더 잘 써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도 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좋은 말씀 전해주신 많은 분들 가슴 깊이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며 좋은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편 임희정은 광주 MBC, 제주 MBC에서 아나운서로 근무하다 퇴사 후 현재 프리랜서로 경인방송 IFM DJ로 ‘임희정의 고백라디오’를 진행 중이다.

70~80년대는 그랬다. 매년 학년이 올라가면 학기초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가정형편 조사였다. 가족관계, 자가(自家) 또는 전세 여부, 자동차 보유 여부, 부모님 직업, 장래 희망을 조사했고, 가정 방문을 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에는 맞벌이 부부가 드문 때라서 아버지 직업이 어느 면에서 중요했다. 지방의 경우에는 대기업 등 큰 기업이 없어서 그럴듯한 직함으로 '부모님 직업란'을 채우기가 마땅치 않은 경우도 많았다. 가장 무난한게 두루뭉실 자영업, 회사원 등이었을 것이다.

부모 세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도 하지만 자녀들이 '부모님 직업란'을 쓸 때 조금이라도 더 고민(?) 없이 쓸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았다. 우리 자녀 세대는 '아버지의 무게'와 '축처진 어깨'를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도 부모 세대의 마음처럼 자녀들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을까. 이제는 부모의 직업으로 자녀를 또는 제자를 판단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집안'이나 '가문'을 많이 따진다. 특히 결혼할때.

최근 화제를 모았던 JTBC 드라마 'SKY캐슬'을 봐도 '3대에 걸친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 집안'을 만들기 위해 그토록 악행이 난무하지 않았던가. 그들만의 리그인 '상류층(upper class)'을 지키기 위해.

이제는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라는 문구는 역사속으로 사라질때도 됐고, 사라져야 한다.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평가받는 공정한 사회가 돼야 한다. '아버지 직업'으로 평가받는 시대는 지났다.

[사진 = 임희정 프로필, 영화 '친구' 스틸컷]

여동은 기자 deyuh@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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