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원 "'서울대' 이미지 넘어 더 많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MD인터뷰②]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배우 이시원(32)은 또래 배우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대학원 심리학 학위를 취득한 그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 중 엘리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연기를 향한 열망을 놓을 수 없었고, 그렇게 2012년 드라마 '대왕의 꿈'을 통해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이시원은 드라마 '신의 선물-14일', '미생', '닥터 프로스트', '달려라 장미', '아름다운 당신', '내 사위의 여자', '슈츠' 등에 출연하며 조금씩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그리고 20일 밤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토일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극본 송재정 연출 안길호)를 통해 연기 인생의 새로운 방점을 찍었다.

국내 최초 증강현실(AR: Augment Reality) 게임을 소재로 삼고 현빈, 박신혜의 로맨스 라인으로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느린 전개, 반복되는 스토리, 느슨한 개연성 문제로 아쉬운 점을 남기기도 했지만 서스펜스 장르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젖힌 공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가운데, 이시원은 극중 현빈(유진우 역)의 전 아내이자 차형석(박훈)의 현 아내 이수진 역으로 등장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세 사람 간에 벌어지는 갈등의 촉매제였다. 복잡한 감정선으로 비판을 사기도 했지만 이시원은 깊은 속내에 상처를 안고 있는 이수진을 처연하게 그려내며 연민을 끄집어냈다.

그 과정에서 이시원이라는 배우 본연의 모습에도 관심이 쏠렸는데,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대중의 흥미를 유발했다. 특히 tvN 퀴즈 예능 '문제적 남자'를 통해 선보인 명석함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에 이시원은 "사실 저는 그렇게 철두철미한 성격도 아니다. '문제적 남자' 속에서 나온 이미지는 운이 좋아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실제로 저를 직접 아는 지인들은 '너한테 저런 모습도 있었어?'라고 하더라. 저는 이수진 캐릭터와 달리 아주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다. 따뜻한 사람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아직 저를 보여드릴 기회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똑똑한 이미지로) 그렇게 봐주신 거 같아요.엘리트 이미지가 고착화될 거라는 것에도 부담감은 없어요. 서울대라는 타이틀은 제가 배우를 시작하기 전에 가졌던 하나의 스토리일 뿐이에요. 그건 제가 연기 활동을 해가면서 희석될 거라고 믿어요. 나중에 이시원이라는 배우의 앨범을 펼쳐봤을 때, 재미있는 한 장의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요?"

이시원이 연기자를 꿈꾸게 만든 계기에 혁신적인 사건은 없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없다. 다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영화를 보러 다니던 추억이 쌓이고 쌓여 꿈을 완성시켰다. 생각을 표현하는 걸 좋아했다는 그는 화가를 꿈꿨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커져, 서울대까지 진학하게 됐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무의식적으로 부모님의 길을 따라가게 됐어요. 사랑받고 싶었나 봐요.(웃음) 그렇다고 저희 부모님이 강요하신 건 절대 아니에요. 공부하라는 말조차 하신 적 없거든요. 그런데 저나 제 동생이나 저희도 모르게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켜드리고 싶었나 봐요.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로서는 참 마음 아픈 일일 거 같아요. 자식이 자신들을 위해 사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행복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연기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염려도 하셨죠. 제가 쭉 공부를 할 거라고 생각하셨으니까요. 그 때 제가 '엄마 아빠마저 설득시키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누굴 설득하며, 어떻게 살아가겠냐. 그렇게 나를 키우지 않지 않았냐'라고 주장했어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죠."

대학교 졸업에 이어 대학원 과정까지 모두 마친 이시원에게 일말의 아쉬움은 없냐고 묻자 "만약 제가 연기를 안 하고 살았다면 잠깐은 편했을 거다. 하지만 후회는 평생 하지 않았을까. 포기해서 편한 건 잠깐이지만 후회는 평생 간다. 매 순간에 집중한다면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게 되고 용기가 생긴다"라고 의연하게 답했다.

"어떻게 보면 늦었다고 하실 수도 있어요. 데뷔 초반에 오디션을 보러 가면 3, 40분 동안 연기는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어요. 27살이었던 제 프로필을 보시면서 '시집 가야지'라고 하는 분들도 많았고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 말대로 산다면 제 인생이 아니잖아요. 제가 원하는 길을 가야죠. 그래야 후회가 없고, 제가 만족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멋지게 살 수 있는 방법 아닐까요. 성공 여부를 떠나서 하고 싶은 건 하고 싶어요. 더 잘 하려고 노력도 해야 하고요."

이어 이시원은 "이제는 조금 더 따뜻한 감성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여드리고 싶다. 여러 수식어들이 싫은 건 아니지만 감성이 빠진 지성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두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능 혹은 작품으로라도 제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면을 보여드리고 싶다. 올해에는 따뜻한 감성을 오롯이 전달해드리고 싶다. 제 새해 소망이다"라고 말하며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을 약속했다.

"조바심 내지 않을 거예요. 욕심은 곧 탐욕이 되죠. 저도 얼른 잘 되고 싶은 마음은 있죠. 하지만 제 능력 밖의 일들이 필요하다는 걸 느껴요. 행운도 따라하고요. 능력을 과신하면 탐욕이 되고, 그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어요. 저도 제 자신이 아직은 작은 사람이란 걸 알아요. 열심히 기다리려고요. 씨앗 같은 사람으로요. 씨앗의 수명이 1000년 이상인 경우도 있대요. 발화하기 위해서는 온도, 습도, 바람 등 수많은 우연들이 맞아떨어질 때 가능하대요. 저한테도 언젠간 그런 행운이 오겠죠? 지금 성장 중인 제 모습을 보며 기다릴 거예요. 제 마음 속에 어린 봄을 품고 있을게요.(웃음)"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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