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현 "뮤지컬 데뷔 17년차, 여전히 무대는 무섭다" [MD인터뷰②]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뮤지컬 '엘리자벳'의 타이틀롤을 맡은 뮤지컬 배우 김소현은 실제로 보는 관객들이 탈진을 걱정할 정도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순수하고 자유로웠던 소녀 씨씨가 황제 프란츠 요제프를 만나 황후가 되고, 관습이라는 철창 아래서 피폐한 삶으로 달려가는 비극적인 과정을 무구한 모습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더 아릿하고 처절하다.

"극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그 감정을 조절하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창밖을 보면 안 되고 혼자 밤에 차를 타고 나가면 안 돼요. 빠져나오려고 계속 노력을 하는데 공연이 거듭될수록 늪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죠. 집에 오면 아무것도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만 있게 돼요. 그 때마다 (남편) 손준호 씨가 최면을 풀어줘요. 장기 공연은 또 자기와의 싸움이거든요. 너무 빠져도 안 되지만 너무 안 빠져도 안 돼요. 레벨을 잘 유지해야 하는 숙제죠."

실제 김소현은 매 커튼콜마다 눈물을 쏟거나 눈시울을 붉힌다. 이에 대해 그는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물이다. 기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다. 세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일생을 쏟아냈는데, 커튼콜이라고 '저 오늘 공연 잘했죠?'라는 마음으로 마냥 인사를 하는 게 쉽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만감이 교차해요. 관객 분들이 박수를 쳐주시는 건, 몇 시간 동안 했던 것에 대한 첫 대답이잖아요. 그게 배우로서는 제일 벅찬 순간이에요. 많은 뮤지컬배우들이 박수소리 때문에 중독처럼 하게 된다고 해요. 관객 분들은 모르실 거예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내가 살아 있는 느낌이에요. 특히 '엘리자벳'은 너무나 극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커튼콜 때는 그 마음이 절정에 다다르죠."

어느새 데뷔 17년 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으로 화려하게 데뷔, 이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지킬 앤 하이드', '대장금', '로미오 앤 줄리엣', '삼총사', '엘리자벳', '위키드', '마리앙투아네트', '팬텀', '모차르트', '명성황후' 등 내로라하는 굵직한 작품에서 주인공 역할을 도맡아온 김소현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무대가 무섭다.

김소현은 "관객의 온도가 여전히 고스란히 느껴지고 내 위치가 얼마나 큰 시선을 받고 있는지도 안다. 내가 실수를 하면 얼마나 큰 데미지가 있을지도 느낀다. 쌓인 경험이 노하우가 되기도 하지만 무서움이 더 커진다"라며 두려움이라는 솔직한 감정을 내비쳤다.

"분장실에 들어가면 모든 게 다 꺼지고 화려한 옷을 벗는데 그 때가 가장 힘든 거 같아요. 30년 차, 50년 차가 되더라도 똑같을 걸요. 모든 배우들이 같은 마음일 거예요. 무대가 무섭다는 건 연차가 쌓일수록 더 알게 돼요. 무대에 오르기 3, 4시간 전부터는 아무것도 안 먹고 물만 마셔요. 분장도 제가 직접 하는데, 그 시간이 제 스스로 다지는 시간이에요.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요. 저는 바로 캐릭터에 들어가는 게 쉽지가 않아서 시간이 꽤 걸려요. 여전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요."

매일 유지하고 있는 이러한 긴장이 관객들에게 성공적으로 닿았다. 10대부터 60대까지의 한 여인의 일생을 3시간 내에 표현해내야 하는 난이도 높은 연기임에도 불구, '완벽한 황후', '엘리자벳의 환생' 등의 다양한 호평이 쏟아졌다.

자칭 '유리멘탈'임에도 불구, 관객 리뷰들을 모두 찾아본다는 김소현은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엘리자벳을 직접 만나고 오신 듯'이라고 써주셨더라. 스킬과 노력 실력을 언급하는 게 아니라, 제가 표현한 엘리자벳이 진실 되게 느껴지셨다고 말씀을 해주신 거다. 사실 제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라고 말하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난 거죠. 인물을 이해하게 됐다는 평만큼 좋은 평은 없는 거 같아요. 공감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사실 관객 분들이야 말로 '엘리자벳'의 장인들이세요. 그런 분들의 후기를 들으면 좋은 마음이 들어요. 안 좋은 이야기더라도 도움이 돼요. 또 요즘에는 SNS가 굉장히 발달이 되어 있으니까 안 보려고 해도 안 볼 수가 없어요. 다이렉트 메시지로 보내주시기도 하고요. 저는 또 답장을 보내드리죠.(웃음) 모든 말들이 도움이 되고 자극이 돼요."

뮤지컬 배우라면 한번쯤 꿈꾸는 각종 대작에서 오랜 시간 맹활약해온 김소현은 자신에게 공을 돌리기보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운 좋게 한국 뮤지컬의 황금기 때 제가 데뷔를 했다. 그 덕에 좋은 역할들을 많이 맡아왔는데 그래서 후배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고 전했다.

"후배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히려 후배들이 '언니가 이렇게 오랫동안 해주시니까 자기들도 희망이 있다'고 해주더라고요. 너무 고마워요. 사실 무대에 서면서 다양한 걸 도전하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뮤지컬 '레베카'의 댄버스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그냥 이건 그저 제 생각이에요. 제가 되게 하고 싶다고 어필하는 거 같은데 그런 거 전혀 아니에요.(웃음) '레베카'의 이히 같은 역할은 많이 해봤으니까요. 새로운 걸 보여드리고 싶은 거죠."

김소현의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으면서도, 가장 지키기 어려운 '초심'이라는 열정의 본질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언제나 열심히 하고 싶다. 초심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지만 사실 지키기 가장 힘든 말이다. 데뷔했을 때의 순수함, 열정이 좋았다. 이 자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조금 퇴보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열정 많은 배우가 되고 싶다. 또 그런 사람으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진심을 다졌다,

한편, 김소현을 비롯해, 옥주현, 신영숙, 김준수, 빅스 레오, 박형식, 이지훈, 박강현, 강홍석, 윤소호, 최우혁 등이 출연하는 '엘리자벳'은 2019년 2월 10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한다.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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