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장기하와 얼굴들의 굿바이 앨범 'Mono'

[김성대의 음악노트]

별일 없이 사는 것이 성공의 척도처럼 보였던 장기하에게 별일이 일어난 건 밀레니엄 청년 백수의 눅눅한 처지를 B급 시트콤처럼 묘사한 ‘싸구려 커피’부터였다. 3년 뒤 “뭘 그렇게 놀래”냐며 거드름을 피울 때 그는 1년 전 혜성처럼 나타난 검정치마와 함께 어느덧 한국 인디록의 대명사가 돼있었다. 그가 이끈 장기하와 얼굴들(이하 ‘장얼’)은 이처럼 데뷔 때부터 대한민국 인디록의 미래로, 평단과 팬들이 동시에 인정한 한국 인디음악의 발견으로 간주됐다.

장얼은 ‘그건 니 생각이고’에서 ‘환상 속의 그대’로 샘플링 당한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밴드를 향한 거의 모든 관심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구조를 필연으로 가지는 팀이다. 장얼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장기하의 음악이었고 그들이 던진 메시지도 어디까지나 장기하의 평소 생각들이었다. 4집까지 내고 팀을 해체한 서태지와 아이들, 5집을 내고 각자 길을 찾아나선 장얼. 두 그룹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장얼 음악의 인기 비결은 웃기면서 후련한 우리말 가사와 랩에 가까운 플로우, 김창완과 배철수를 함께 녹인 창법, 록/트로트/펑크(Funk)/포크/뉴웨이브를 제 맘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비틀즈 같은 과거 음악들을 연구해 자신들 것으로 만들겠다는 끊임없는 음악가로서 욕심, 집념 덕분이었다. 익숙한 것들로 낯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그들 음악은 급기야 새 천 년의 산울림 대접을 받았고 대한민국 젊은 층은 그런 장얼을 자신들의 대변자, 시대의 대중문화 캐릭터로 기꺼이 맞아들였다.

다섯 번째 앨범은 그런 기존 장얼 방식대로 가되 좀 더 힘을 뺐고 대신 세련미는 더했다. ‘별거 아니라고’가 음반 문을 닫으며 전하는 감성 즉,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인 ‘혼자(Mono)’를 타이틀과 믹스 방식으로 함께 쓰며 앨범은 기본적으로 조촐한 윤기를 머금고 있는 것이다. 이는 2집부터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린 대중성보단 3집부터 꾸준히 오르막을 걸은 작품성에 밴드가 더 무게를 둔 끝에 나온 음악적 특징으로 보인다. 또 80년대 신스팝 그림자를 드리운 '나란히 나란히' 같은 곡을 듣고 있자면 아무래도 장기하는 신작을 통해 그동안 밴드가 추구해온 군더더기 없는 작, 편곡 방식의 끝을 시도해보리란 각오였던 듯 하다. 이는 장기하만이 엮어 나갈 수 있는 유쾌한 창법에 칩튠과 브라스를 먹인 첫곡 ‘그건 니 생각이고’에서 ‘거절할 거야’로 접어드는 사이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으로, 펑키한 ‘초심’과 대비되는 ‘아무도 필요 없다’의 멜로트론 녹음을 위해 일본까지 건너간 일은 그 의지를 대표하는 에피소드라 하겠다.

예고대로 이 작품은 장얼의 마지막 앨범이다. 해체 이유는 밴드로서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없을 것 같기 때문, 흔한 말로 ‘박수칠 때 떠나겠다’는 거였다. 이 말은 밴드를 이끌던 싱어송라이터 장기하가 앞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펼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곡 제목들이 다 예사롭지 않다. 가령 ‘그건 니 생각이고’는 밴드가 해체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까칠한 장기하식 답변처럼 들린다. 그는 다시 생각해보라는 그 조언들을 ‘거절할 거’라 말하고 ‘나와의 채팅’으로 미래를 써나가리라 다짐한다. 올라가면 내려와야 하는 등산의 이치를 밴드 해체의 철학으로 삼고(‘등산은 왜 할까’), ‘아무도 필요 없다’면서 ‘나 혼자’ 가겠다는 생각을 자신의 뜻으로 굳힌다. 초심 따윈 개나 줘버리라며(‘초심’), 그런 것 때문에 은근히 감당해야 하는 인디 음악가로서 위축, 시장에서 위치 따위 더는 개의치 않겠다고 장기하는 앨범 막바지에서 간접으로 밝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멤버 모두가 합의한 팀 와해 정도는 ‘별 거 아’닌 것일지 모른다.

10년 활동에 앨범 5장. 세월은 어느덧 2020년을 향하고 있다. 그 사이 한국 대중음악계는 장얼을 매개로 장르의 다양성에 기쁘게 노출됐다. 밴드의 이번 헤어짐이 영리하고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걸 증명해줄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장얼 5집은 그런 의미에서 '끝의 시작'이다. 달은 다시 차오른다. 가자!

[사진제공=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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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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