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일승 감독 수비농구 선언, 그 진정한 의미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수비농구의 재미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지난 10일 개막 미디어데이. 오리온 추일승 감독은 "수비농구의 재미"를 얘기했다. 그 누구보다 세계농구의 흐름변화를 민감하게 캐치하고, 2015-2016시즌 KBL판 스몰볼, 스페이스 농구로 챔피언결정전 우승컵을 따낸 추일승 감독의 입에서 수비농구라는 말이 나왔다.

FIBA는 최근 규칙을 개정했다. KBL도 곧바로 적용했다. 예를 들어 볼과 상관없는 지역에서의 파울을 U파울로 적용, 경기막판 반칙작전과 속공 저지를 원천 봉쇄했다. 또한, 경기종료 2분 전부터 프론트코트에서 공격을 할 때 공격제한시간을 14초로 지정했다.

자연스럽게 공격횟수가 늘어나고, 경기템포가 빨라졌다. 궁극적으로 공격적인 농구를 지향하고 다득점 경기를 유도하기 위한 규칙 개정이다. 한국농구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한다.

추일승 감독이 이걸 몰라서 수비농구를 얘기했을까. 지극히 오리온의 현실에 들어맞는 발언이었다. 다시 말해 수비농구를 하지 않으면 성적을 내기가 힘들다는 현실이 반영된 얘기다. 추 감독에게 18일 SK전을 앞두고 우문을 던졌더니 "(허)일영이도 빠지고 공격할 선수가 별로 없다"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오리온은 올 시즌에도 객관적인 멤버구성이 좋지 않다. 이승현과 장재석이 군 복무 중이다. 문태종은 현대모비스로 떠났다. 허일영은 부상으로 개점휴업. 최진수를 제외하면 다른 팀에서 주전으로 뛰기 쉽지 않은 멤버들이 주축을 이룬다. 그나마 베테랑 박상오, FA 최승욱 영입으로 지난 시즌보다 가용인원이 약간 늘어났다. 하지만, 개인기술로 점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국내선수가 사실상 전무하다.

당연히 수비를 강화하고, 거기에 따른 부수적 효과를 노리는 게 오리온 현실에 맞다. 쉽게 말해 현재 오리온 멤버들로는 5대5 농구를 하는 것보다 수비 성공과 상대 턴오버 유발에 의한 속공, 얼리오펜스를 추구하는 게 확률상 이득이다.

오리온은 2017-2018시즌에도 수비농구를 했다. 이승현과 장재석이 빠지고, 김동욱이 떠난 첫 시즌. 올 시즌보다 멤버구성이 더 좋지 않았고, 예상대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경기내용을 뜯어보면 그렇게 쉽게 무너진 경기가 많지 않았다.

하프코트 지역방어와 트랩, 스위치디펜스, 전면강압수비에 이은 지역방어까지. 폭 넓은 로테이션과 수비전으로 끈끈한 농구를 했다. 단지 객관적 멤버구성이 떨어질 뿐이었다. 추 감독에게 이 부분을 얘기하자 "수비를 강조하지 않는 감독이 어디 있나"라면서도 "수비농구라는 말을 대놓고 해야 선수들이 수비를 좀 더 신경 쓴다"라고 말했다. 즉, 미디어데이 발언은 선수들의 분발을 유도한, 전략적 발언이었다.

실제 경기력으로 증명한다. 현대모비스와 전력 차를 절감, 111점을 내줬다. 그러나 KGC, SK에 다양한 수비로 턴오버를 유발하고 주도권을 잡는 농구를 펼쳤다. 물론 두 외국선수 대릴 먼로, 제쿠안 루이스의 이타적 마인드, 팀 오펜스에 능한 장점은 분명히 있다. 수비농구에 최종 마침표를 찍는 자원들. 어쨌든 기본적 토대는 수비다.

시즌 초반이지만, 현장에선 오리온을 두고 '6강은 충분히 가능하다'라는 평가가 흘러나온다. 아직 다른 팀들의 전력이 완전하지 않은 점은 분명히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지난 시즌보다 수비 완성도가 좋아질 조짐이다.

일단 추 감독이 경기상황, 멤버구성, 상대 공격수 특성에 따라 수시로 수비전술을 바꾸고 변형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수비력이 좋은 최승욱을 영입했고, 이승현도 시즌 막판 돌아온다. 김진유, 김강선 등 희생정신이 강한 선수들도 있다. 수비전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환경이다.

추 감독은 지난 시즌부터 개개인에게 수비 마인드를 지속적으로 주입, 수비가 되지 않는 선수를 배제해왔다. 최진수는 "계속 수비를 강조한다. 힘 좋은 선수를 상대로 전쟁을 한다는 마음으로 임한다"라고 말했다.

리바운드 열세를 최소화하고 속공, 얼리오펜스, 세트오펜스 완성도를 끌어올리면 팀 조직력이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 된다. 이타적인 외국선수들을 데려와 수비전의 파생효과를 극대화한 것 역시 추 감독의 능력이다. 풍부한 네트워크를 활용, 팀 농구 이해도가 높은 외국선수들을 뽑는 게 주특기. 먼로, 루이스와 국내선수들의 연계플레이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

결국 오리온은 시즌 초반부터 가진 전력을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극대화, 좋은 출발을 했다. 그만큼 추 감독의 준비가 촘촘했다. SK전 직후 우회적으로 지난 시즌에 비해 올 시즌 준비가 알찼다고 평가했다.

그런 점에서 추 감독의 수비농구 선언은 오리온보다 멤버구성이 훨씬 좋은데 시즌 초반 삐걱거리는 몇몇 팀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어느 팀이든 시즌 초반에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오리온 역시 지난 시즌 단신 외국선수를 잇따라 교체하며 홍역을 치렀다.

하지만, 매 시즌 가진 전력에 비해 성적을 내지 못하고 6강에 들지 못하는 팀이 꼭 나왔다. 올 시즌 초반의 경우 주축들의 줄부상으로 삐걱거리는 SK는 예외로 하자. 오리온보다 멤버구성이 좋은데 느슨한 조직력, 불분명한 방향성으로 시즌 스타트가 좋지 않은 몇몇 팀들이 불안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물론 그 팀들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오리온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단 2~3경기로 쉽게 평가하는 것도 위험하다.

그렇다고 해도 추 감독의 미디어데이 수비농구 발언이 신선한 건 분명했다. 확실한 테마를 갖고, 제대로 준비해서 시즌 첫 경기부터 전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의 발언이 현대농구 트렌드를 역행한다고 치부해버린다면, 지극히 단순한 접근이다.

[추일승 감독과 최진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