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이젠 길을 잃지 마, 로빈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세상이 강요하는 길이 있다. 그 길이 행복의 문을 열 것이라고 부추긴다. 좋은 대학 나와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 돈을 벌어 자식을 낳아 키운 뒤 은퇴하는, 그야말로 ‘정해진 길’이다. 이 길을 걷기 위해 꿈을 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길에서 탈락하면 뒤처지고 낙오할 것이라는 암묵적 위협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가 ‘다른 길’을 찾으려는 욕망을 좌절시킨다. 세월의 무게는 갈수록 어깨를 짓누르고, 모두를 앞만 보고 달리게 만든다.

그렇게 정신없이 헉헉대며 질주하다보면 암초를 만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외풍에 끄떡없는 회사는 극소수다. 경기침체와 불황이 태풍처럼 밀려와 튼튼해 보였던 배를 난파시키기 일쑤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IMF 이후 ‘정년퇴직’은 언감생심이 된지 오래다.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의 크리스토퍼 로빈(이완 맥그리거)이 딱 그런 신세다. 회사는 매출 하락에 문닫기 일보직전이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임박했다.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경영진은 로빈에게 해결책을 요구하고, 그는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난제 앞에서 쩔쩔 맨다.

어릴 적 곰돌이 푸와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로빈은 어른이 되면서 빨간풍선을 잃어 버렸다. 동심은 온데간데 없이 오로지 매출을 올려야 생존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변했다. ‘다시 만난’ 곰돌이 푸는 로빈을 위해 한 가지 지혜를 들려준다.

“아무 것도 안 하다 보면 대단한 뭔가를 하게 되지.”

이게 무슨 선문답같은 소리인가. 자본주의는 무엇이라도 하라고 다그치는 체제다. 그런 시스템에서 아무 것도 하지 말라니. 푸의 조언을 이해하지 못했던 로빈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 말의 참뜻을 깨닫는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고, 버려야만 얻을 수 있는 삶의 이치에 눈을 번쩍 뜬다.

로빈의 아내도 삶의 통찰을 전한다. 그는 남편에게 “지금이 인생이야, 크리스토퍼 로빈. 이번 주말이 당신 인생이고 인생은 현재 진행형이야”라고 말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 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삶을 청산하라는 주문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을 살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지 말라는 것.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충분한 휴식을 즐기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곧바로 실행하는 현재의 경험이 쌓이고 쌓여 미래의 자신을 만든다.

위기를 극복한 로빈에게 곰돌이 푸는 “이젠 길을 잃지 마”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길’이 있었다. 누구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시스템에 갇히는 순간 그 길을 버리고 ‘안정된 길’을 찾으려고 발버둥 친다. 남이 말하는대로, 사회가 시키는대로 사는 삶은 의미가 없고, 나의 길은 나만이 정할 수 있다는게 곰돌이 푸의 가르침이다.

만약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곰돌이 푸를 만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가 당신에게 삶의 지혜가 담긴 빨간풍선을 선물할 것이다.

[사진 제공 = 디즈니]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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