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도 無" 김태리·한지민·남지현, 시대 불문 '불꽃 여주' [추석특집]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내 삶도, 내 사랑도 내가 선택해"

'백마 탄 왕자님', '신데렐라 스토리'...더 이상 무의미한 이야기다. 스크린보다 여러 제약이 많은 국내 드라마에서는 자주적인 능동성을 지닌 여성 캐릭터의 활약이 미비한 감이 있었다. 특히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속 '여주'(여자 주인공)는 청순가련형 캔디가 다수였다.

그러나 최근 영역을 막론하고 성평등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여성 캐릭터들 또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동시에 장르물이 유행처럼 즐비하면서 각종 전문직의 여성 캐릭터가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입증하고 존재감을 확립시키는 추세가 늘어났고, 로맨틱 코미디 속 여주 역시 남주(남자 주인공)의 보살핌을 넘어 자유로이 감정과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즉, 여성의 판타지를 채워줄 수 있는 대상이 남성이 아닌, 동경 등의 감정으로 이입이 가능한 같은 여성 캐릭터들이 맹활약하고 있는 가운데,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을 짚어봤다.

▲ '미스터 션샤인' 김태리. 화초 속 공주님 아닌, 총을 든 의병.

김태리는 극중 조선 최고 명문가의 애기씨 고애신 역을 맡았다. 고애신은 고귀한 영애라 한성 바닥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지만, 고애신의 본질은 시대상을 거스르고 있었다. 책과 자수 대신 총을 들었고 사대부들의 타협하는 목소리 대신 조선의 절규를 들었다. 그렇게 총을 들고 복면을 쓰고 지붕 위를 날아다녔다. 상냥한 애기씨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대장부의 기개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 시대 사대부 여식이라면 기피한다는 학당 영어를 배우는 데에 있어서도 거침이 없었다. 물론, 좋아하는 남자를 위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조선 밖의 세계를 탐구하고 싶은 욕구로 비롯됐다. 사랑마저 자신이 택했다. 집안끼리 약속된 희성(변요한)과의 정혼을 깨고 검은 머리의 미국인과의 '러브'를 선언했다. 편히 지아비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라는 할아버지 고사홍(이호재)의 말을 거역하고 스스로 나무가 되겠다는 의지다.

애신 역시 다가올 풍파를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고애신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 아래에서 소신을 지켜낸다. "꽃으로만 살아도 된다. 내 기억 속 사대부 여인들은 다들 그리 산다"는 유진 초이(이병헌)의 말에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라고 대답하는 애신의 말이 곧 그의 아이덴티티다. 결코 시들지 않는 강인한 투지를 드러내는 여성이다. 사회적인 규범마저 전복시킨, 고고한 자주성이다.

▲ '아는 와이프' 한지민, 운명에 맞서 싸우는 개척자

한지민이 분한 서우진 역은 초반 육아에 찌든 워킹맘이었다. 엄마는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는데 남편 차주혁(지성)은 여전히 철이 없고, 가사 분담에 서툴며 자기 욕망이 우선인 아이 같은 남자니 버팀목이 될 리 만무했다. 이때, 주혁의 타임슬립 선택으로 우진은 더욱 객체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졸지에 타인이 그의 인생을 뒤바꿔놓았고 그 남자는 첫 사랑을 찾아 떠났단다.

하지만 이런 수동적인 위치를 전복시킨 주인공은 결국 우진이었다.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독립적인 주체가 된 서우진은 뛰어난 능력으로 직장에서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이었고, 적당한 처세술, 여유로이 자신의 취미와 운동을 즐길 줄 아는 여성이었다. 사랑에 있어서도 꿋꿋했다.

주혁을 향한 사랑을 각성한 우진은 자신의 방식대로, 솔직하게 직진했고 함께 찾아올 파장보다 자신의 선택에 집중했다. 이어 주혁이 과거를 바꾼 사실을 고백한 뒤 겁이 나 달아나자 도리어 그의 목덜미를 잡아 모든 걸 바로잡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주혁이 밀어내고 도망갈수록, 우진은 당기고 따라붙으며 정면 돌파했다. 그 덕에 수동적인 움직임에 그쳤던 주혁은 마음의 빗장을 열고 다시 사랑을 시작했다. 우진이 맞서 싸워 쟁취한 운명이었다.

▲ '백일의 낭군님' 남지현, 하늘같은 지아비? NO 하늘같은 홍심이!

조선 최고령 원녀 홍심(남지현). 열여섯이면 시집을 가는 사회 풍조로 원녀는 죄인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지만 홍심은 부끄러워하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는다. 도리어 당당히 혼인을 안 한 게 무슨 죄냐며 대응하고 "혼인해서 해결되면 내가 신이네!"라는 넉살로 넘기는 배포를 가진 당찬 여성이다. 험상궂은 사내 둘도 홍심 앞에선 기를 못 펼 수준이다.

불가피한 사건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원득(도경수)과 결혼한 홍심은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딪혔지만 이내 원득을 완벽히 휘어잡는다. 그 시대 지아비는 하늘처럼 모셔야 하는 존재이지만 홍심은 본성을 꿋꿋이 지키고 지아비를 땅에 꿇게까지 만드는 조선판 걸크러시 신여성 캐릭터.

사실 원득의 정체는 조선의 왕세자다. 기억은 애매하게 소실되고 궁내에서의 태도와 습관만 남아 있어 연신 사고만 치고 다닌다. 이른바 '고구마 답답이', '민폐 캐릭터'가 남자 주인공에게 넘어간 셈이다. 그 탓에 온갖 수습은 홍심이 하고 다니지만 빳빳하게 제 할 말은 다 하는 면모로 고구마 속 '사이다' 한 모금을 선사하고 있어 극의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특히 빼어난 무예 실력을 가진 인물이라 설명돼, 향후 펼칠 활약에도 기대가 높아진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tvN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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