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산뜻발랄한 음악에 담긴 우울한 로맨스, 김사월 2집

[김성대의 음악노트]

김사월의 신보다. 제목은 ‘로맨스’. 이것은 연애라는 주제 속에 듣는 이를 가두어 그 복잡한 감정(관계)에 대해 한 번 진지하게 얘기해보자는 작가의 무표정한 제안이다. 사랑하는 게 너무 쉽다며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노래하는 ‘오렌지’는 그래서 이 앨범의 대표곡 정도가 되겠다. 쉽지만 어렵다니. 과연 김사월다운 역설이다.

언젠가 김사월은 2집에서 산뜻 발랄해지고 싶다 했었다. 또 이젠 그만 쓰고 싶지만 앞으로도 써나가게 될 우울한 이야기를 운명처럼 말했다.(인디포스트, 2017년 12월21일) 앨범 ‘로맨스’는 저 두 전제를 절반씩 머금고 있다. 음악은 산뜻 발랄하고 가사는 우울하다. 이건 약속 같은 예견이라, 기존 김사월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가사가 로맨스를 마냥 로맨틱하게만 포장할 리가 없다는 걸 잘 알 것이다. 그런 바람은 마치 이창동이 ‘조스’를 찍을 것이라는 기대감 내지는 알베르 카뮈가 ‘남쪽으로 튀어’를 썼다는 농담 같은 무모함에 가깝다.

김사월은 사랑을 예쁘게만 말하지 않는다. 한쪽에선 고백(‘로맨스’)하고 재촉(‘연인에게’)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무엇도 아닌 사랑(‘프라하’)의 숙명과 사랑에 실패한 뒤 죽지 못해 사는(‘죽어’) 고독한 자학을 얘기한다. 또 사랑을 하거나 받는 사람이 가진 절대적이고 하나뿐인 감정(‘누군가에게’)을 말하면서도 사랑이 없다면 그리움도 없고(‘그리워해봐’), 끝내 사랑은 영원할 수 없는 것(‘엉엉’)이라고 노래한다.

혹자는 사랑을 “자신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사월은 "환상과 고독을 함께 안겨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썼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사랑이란 서로 외로웠지만 옆에 있어주는 건 안 원했던 것(‘옆’)이거나 결국 헤어질 사람과 하는 것(‘우리’)일지 모른다. 사랑에 관한 이 모든 덜 상식적인 견해들은 김사월이 평소 가사를 쓰는 습관 즉, 안 될 게 없다는 생각과 싱싱한 감정, 그리고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들의 상황에 기댄 것들이다.

김사월의 소리 공간은 쓸쓸하면서도 풍요롭다. 그의 차분한 송라이팅은 그런 소리가 자랄 정원에 원칙처럼 뿌리는 미니멀리즘의 씨앗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어쿠스틱, 나일론, 일렉트릭 기타를 번갈아 뜯으며 창백한 이율배반의 소리 풍경을 재현했다. 여기서 김사월의 음악 단짝 김해원은 프로듀싱과 편곡, 녹음과 연주라는 임무 아래 고요히 동분서주하고 있고 차분하게 공간을 부수어나가는 류지현의 드럼과 앨범 초반에 슬픈 낭만을 드리운 박희진의 건반, ‘오렌지’의 보사노바 기타에 덧칠한 이기현의 플룻은 그 음악을 맑게 도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들은 천학주의 믹싱과 이재수의 마스터링을 통해 가장 합리적인 음질로 거듭났다.

김사월의 ‘로맨스’란 결국 사랑에 대한 찬양이기보다 그것을 향한 의심이었다. 사랑은 고작해야 일 년 전 캣 파워(Cat Power)를 함께 들으며 세계 일주를 얘기했던 사람의 부재이고, ‘키스’라는 달콤한 단어에 장전해둔 싸늘한 염세이다. 타루의 소심한 격정과 계피의 먹먹한 체념을 모두 흡수한 김사월의 목소리는 그 암울한 로맨스를 “산뜻 발랄해진” 음악에 실어 나와 당신의 마음을 무작정 휘저어놓는다.

[사진제공=김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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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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