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어느 가족’ 키키 키린의 마지막 한마디, “다들 고마웠어”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지난 15일 세상을 떠난 키키 키린은 연기 인생의 후반부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함께 했다. 2008년 ‘걸어도 걸어도’를 시작으로 2009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5년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6년 ‘태풍이 지나가고’, 2018년 ‘어느 가족’에 이르기까지 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 자신만의 ‘어머니 상’을 연기했다.

키키 키린의 어머니는 버티고 견뎌낸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슬픔을 인내하고, 아픔을 삭혀내며, 고통을 감내한다. 겉으로는 온화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맹렬한 몸부림을 친다. 내면에서 격렬히 몰아치는 감정을 겨우 다잡은 끝에 조용히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는 때론 날카로운 비수로 꽂히고, 때론 따뜻한 감동으로 스며든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그는 큰 아들을 사고로 잃는다. 장남은 소년 요시오를 구하려다 바다에 빠졌다. 어머니는 기일때마다 이제 청년으로 자란 요시오를 부른다. 죄책감을 느끼라고 일부러 초대하는 것이다. 이제 그만 부르라는 차남(아베 히로시)에게 나직하면서도 단호하게 답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벌을 받지는 않을 거야.”

이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키키 키린의 뒷모습과 옆모습을 비추며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고통을 세월을 어떻게 견뎌오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차가운 벌을 주면서 인생을 버텨낸다.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그는 철이 들지 않은 아들 료타(아베 히로시)와 하룻밤을 보낸다. 료타는 아내 쿄코(마키 요코)에게 이혼 당하고 아들 싱고(요시자와 타이요)도 한달에 한번만 만날 수 있는 처지다. 어머니는 변변치 못한 장남이 못내 안쓰럽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는다. 아들이 심은 귤나무에 꽃과 열매가 생기지 않지만, 그래도 아들이라 생각하고 여전히 물을 준다. 애벌레가 귤나무 잎을 먹고 자라 나비가 되듯이, 아들도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며느리와 재결합을 바라는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평생 누군가를 바다보다 더 깊이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넌 그런 적 있니? 없을 거야 보통 사람들은. 그래도 살아가는 거야. 날마다 즐겁게. 그럼. 그런 적 없어서 살아갈 수 있는 거야. 이렇게 하루하루를. 그래도 즐겁게.”

‘어느 가족’에선 핏줄이 다른 사람들과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 비록 좀도둑 가족이지만, 어느 정상적인 가족보다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나이를 먹어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연금이 꼭 필요한 가족을 위해 드러내지 않는다.

여름 해수욕장의 바닷물로 뛰어드는 가족을 보고 그는 이런 말을 남긴다.

“다들 고마웠어.”

‘걸어도 걸어도’ ‘태풍이 지나가고’ ‘어느 가족’에서 키키 키린이 등장하는 계절은 모두 여름이다. 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 무더운 계절을 보냈다. 가족과 어머니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걸어왔다. 이제 무더위가 물러난 가을에 짐을 내려놓고 하늘나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선 선선한 바람이 불 것이다.

[사진 제공 = 영화사 진진, 티캐스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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