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윤종빈 감독 ‘공작’, 생존에서 공존으로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부터 ‘군도:민란의 시대’(2014)에 이르기까지 윤종빈 감독은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타협하거나 또는 이에 맞서다 쓰러지는 사람들의 추락을 다뤘다. ‘생존하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세계관이라고 할까. 데뷔작 이후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회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던 그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요컨대, 그는 ‘생존에서 공존으로’ 방향을 모색 중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군대라는 정글에서 길들여지지 못한 한 인물의 비극을 담았다(윤종빈 감독이 그 세계에서 배우로 참여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비스티 보이즈’는 자본주의 밑바닥에서 돈의 욕망에 눈이 먼 청춘들의 비루한 일상을 그렸다. 호스트 바의 리더 재현(하정우)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는 인물이다.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의 전성시대’(2012)는 갱스터 장르를 통해 출세를 최우선으로 삼았던 아버지 세대의 서글픈 초상을 관찰했다. ‘군도:민란의 시대’(2014)는 복수극 플롯의 ‘웨스턴 활극’을 통해 지배계급에 유린당하는 민초들의 아픔을 조명했다.

네 편의 영화엔 “이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냉소적 체념이 묻어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군인,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호객행위로 살아가는 호스트, 비리와 부정부패로 살아가는 아버지, 민란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한 민초들은 견고한 시스템 앞에서 무력하고, 타협하고, 패배하는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공작’은 윤종빈 감독 필모그래피의 터닝포인트다. 이 영화는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실화 첩보극이다.

과거 그의 연출 스타일이라면, 북한 고위층에 잠입한 스파이 박석영(황정민)이 시대의 광풍에 맥없이 휩쓸려 결국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무너지는 순간을 포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좌절이 아니라 희망을, 배신이 아니라 신뢰를, 불신이 아니라 믿음을 다룬다. 박석영과 북한 대외경제위 처장 리명운(이성민)은 각각 안기부의 부당한 명령과 북한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면서도 각자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낸다(조국과 이념이 다른 사람이 서로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스파이 브릿지’가 떠오른다).

윤종빈 감독이 전하는 ‘공존’의 메시지는 2018년 현재 대다수 한국인이 바라는 꿈이다. ‘공작’은 종전 선언과 평화체제가 언급되고 남북 화해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무르익어 가는 시기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그의 바람처럼, 서로 도와 함께 존재할 수 있다면!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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